감염병 연구 활성화를 목적으로 감염병 검체 연구시 감염자의 서면동의를 면제하거나 연구의 과학성·윤리성을 검토하는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법안이 발의되자 이를 두고 의료계가 입법 저지에 나섰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과 ’병원체자원의 수집·관리 및 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병원체자원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생명윤리학회, 한국의료법학회, 한국의료윤리학회, 대한기관윤리심의기구협의회(이하 단체들)는 22일 공동성명을 통해 “감염병에 대한 연구 활성화를 위해 감염자의 검체 채취에 대한 동의 면제나 IRB 심의를 면제하는 것은 연구대상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헬싱키선언 등 국제적 지침과 국내 규정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헬싱키선언‘은 의학연구의 근본적인 목적이 새로운 지식의 창출이지만, 이러한 목적이 결코 연구대상자 개인의 권리와 이익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체들은 “헬싱키선언 등에 위배되어 시행된 연구의 결과는 국내외 의학학술지에 개제가 불가하기 때문에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료현장에서 활용될 수도 없다”며 “감염병 등에 의해 공중보건상 긴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시라도, 국가는 감염자를 포함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과학성·윤리성이 보장된 연구가 시행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단체들은 감염자가 감염병 관련 진료와 연구, 자신의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 의학적 연구 대상 여부 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후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연구자의 IRB 심의는 연구의 과학적·윤리적 부분에 대한 검토와 감염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
단체들은 “감염병에 의한 공중보건상 긴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윤리적 기준을 보장하는 신속한 심의가 가능하도록 정부는 공용위원회 운영, IRB의 공동운영 및 심사위탁이 실제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단체들은 또 감염병 위기상황이라도 감염자의 인권보호와 안전에 위배되는 법안이나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감염자의 보호를 위한 조치를 담당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단체들은 “연구 활성화라는 목적으로 감염자의 인권이 침해되고 윤리적·과학적인 검증이 안 된 연구의 수행은 국민의 신뢰를 잃을 뿐 아니라, 그 결과도 학술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감염병에 의한 공중보건상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감염병예방법 제9조와 시행령 제7조에 의한 감염관리위원회 및 감염병 연구기획 전문위원회에서 연구계획의 수립과 수행 및 대상자보호에 대한 조치에 책임이 있으며, 그 적절성에 대해서는 생명윤리법에 따른 공용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