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에 나타난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보면 ‘의사가 타병원에서 응급조치 받은 후 이송되어 온 뇌손상환자에 대하여 수술 후에 집중 치료할 중환자실의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타병원으로의 전원을 권유한 경우(대법원 1992.10.27 선고 92누9180)’ 등이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진료거부금지 의무의 현황과 과제’ 중 ‘판례상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에서 이 같이 소개했다.
의료법 제15조 제1항은 의료인에게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부과하면서도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동 조항이 존치하는 한 진료거부 논쟁의 핵심은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가에 있다.
의료법은 정당한 사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진료거부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다.
의료정책연구소는 “법원은 진료거부 당시 의료인 측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환자 측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기타 참고할만한 정황이 있었는지 등을 종합하여 진료거부금지 의무 위반을 판단하고 있는 듯 보인다.”면서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의 판례 6가지를 제시했다.
▲환자가 해당 병원에서 보험치료가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일반 환자로라도 치료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간 경우(서울지방법원 1993.1.15. 선고 92고합90,145 병합 판결) ▲전원 결정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을 뿐, 당해 병원에서 수술할 것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대법원 2000.9.8. 선고 99다48245 판결) ▲입원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퇴원을 요구한 경우(서울동부지방법원 2013.7.24 선고 2012가단67345 판결) ▲의료기관 폐업 과정에서 입원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전원 시킨 경우(창원지방법원 20149.26 선고 2013구합985 판결) ▲대기 중이던 환자들이 호승차량 이동시간에 맞춰 부내에 복귀하는 바람에 부득이 진료하지 못한 경우(헌법재판소 2018.8.30, 2018헌마 176 결정) 등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진료거부와 관련한 판례가 충분히 축적되지 않아 판례만으로는 정당한 사유를 유형화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특히 의료인에게 진료거부금지 위반죄가 인정된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는 현실적으로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극히 드물기도 하지만, 만약 진료를 거부당한 환자는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진료거부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라 생각된다.”고 했다.
“판례상 확인할 수 있는 진료거부의 문제는 환자가 전원 또는 퇴원 조치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경우, 의료기관의 폐업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등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결국 의료법상 진료거부금지 조항의 입법취지에 해당하는 무분별한 또는 부당한 진료거부는 현실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료정책연구소는 “즉 현재 진료거부금지 조항은 상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며, 퇴원 조치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행정력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오히려 진료거부 금지 조항을 악용하여 환자 측에서 의료인에게 마약류 의약품과 같은 부적절한 처방을 요구하거나, 의료기관에서 난동을 피우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