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 당뇨처럼 대사 이상과 관련된 간 질환인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은 전 세계 성인 4명 중 1명이 앓고 있는 대표적인 만성 질환이다. 초기에는 자각 증상이 없어 방치되기 쉽지만, 간염과 간경변,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며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마다 병의 양상과 치료 반응이 다른 특성 탓에, 정밀하고 개별화된 치료 접근이 중요해지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운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 소화기내과 김원 교수, 서울의대 최무림 교수, 삼성서울병원 홍성은 박사 연구팀은 MASLD의 진행과 악화를 유발하는 유전적 변이를 세계 최초로 단일세포 수준에서 밝혀냈다고 27일 전했다.
특히 이번 연구는 기존 서구인 중심의 유전체 연구와 달리, 동아시아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환자 코호트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MASLD의 유전적 양상이 인종에 따라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시아인을 대표할 수 있는 정밀 분석은 드물었다.
연구진은 MASLD 환자와 건강 대조군의 간 조직을 단일세포 RNA 분석 기법으로 정밀하게 분석하고, 세포 상태에 따라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조절되는지를 개인 유전형과 연계해 규명했다.
연구진은 MASLD의 다양한 병기(단순 지방간, 경증 섬유화, 중증 섬유화 등)에 있는 환자 30명과 건강 대조군 24명의 간 조직을 분석해, 총 24만 개 이상의 간세포 정보를 확보했다. 기존 유전자 연구들이 조직 전체의 평균값만 반영하는 한계가 있었던 반면, 이번 연구는 환자 개개인의 세포 상태에 따른 유전적 조절 패턴까지 정밀하게 추적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연구팀은 약 3,500개의 유전자 발현 조절 변이(eQTL)를 규명하고, 이 중 세포의 상태에 따라 조절 방식이 달라지는 ‘상호작용형 eQTL(interacting-eQTL)’을 다수 발견했다. 특히 약 600개에 달하는 환자 특이적·세포 특이적 유전자 조절 모듈을 도출했으며, 이는 향후 환자 맞춤형 진단과 치료 타겟 개발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연구의 핵심 발견 중 하나는 특정 유전형(rs13395911)을 가진 환자에서 FOXO1 전사인자가 EFHD1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면서 MASLD의 악화에 관여한다는 사실이다.
간세포의 대사 기능 저하와 스트레스 반응, 지방 축적 등에 관여하는 이 유전자 조절 축은, 간세포 상태가 나빠질수록 유전자 조절 기능이 무너지고 병이 빠르게 진행된다는 기전을 보여줬다. 간 오가노이드 실험과 세포 모델을 통해 이 경로가 실제로 작동함도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최무림 교수는 “실험이란 현실을 단순화해 원인과 결과를 밝히는 과정이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이제는 현실의 복잡성을 반영한 실험도 가능해지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그러한 접근을 통해 만성질환의 복잡한 양상을 실제 환자 수준에서 재현하고, 환자 맞춤형 약물 타겟까지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김원 교수는 “임상의로서 환자마다 질병 경과와 치료 반응이 다른 현실을 늘 마주한다”며 “이번 연구는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세포 상태 기반의 생물학적 단서를 확인한 성과로, 향후 유전자 정보를 활용한 MASLD 맞춤 진단 및 약물 반응 예측 시스템 개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성은 박사는 “개인의 유전 변이, 세포 수준의 유전자 발현, 다양한 질환 단계에 있는 임상 정보를 통합해 정밀의학적 치료 타겟을 제시한 연구”라며 “유전학이 희귀질환뿐 아니라 만성 복합질환에서도 환자 맞춤형 치료법 개발에 유용하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술지인 Nature Genetics에 6월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