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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 “모든 의사를 ‘5분 대기조’로, 서울시 제정신인가?”

서울시가 또 다시 한번 일을 저질러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응급상황 발생 시 주변의 의사나 간호사, 재난 분야 교수, 전직 소방관, 중장비 등이 즉시 출동할 수 있도록 ‘통합자원관리시스템’을 구축, 운영한다는 계획을 지난 17일 밝힌 것이다.

민간 자원을 전산망에 입력한 뒤 신속한 주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을 요청해 인명이나 재산피해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서울시는 ‘통합자원관리시스템’을 올해 안에 구축해 내년부터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모든 의료인을 ‘5분 대기조’로 활용하겠다는 이야기를 얼핏 처음 접했을 때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설마 사실일까?”라는 의문과 함께 아마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제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어떻게 공무원도 아닌 민간인들을 마음대로 부리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이는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의료인은 마음 놓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지도 못하고 항상 대기해야 한다는 것인데, 서울시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민간인들에게 그런 의무를 강요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행정편의주의적’이자 ‘전체주의적인 발상’으로 마치 개인의 자유를 마음대로 억압하던 군사독재 시절이나 북한 독재정권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서울시는 “의료인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는 단서를 뒀다.

서울시의 말처럼 의료인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는다. 만약 옆집에 의사가 살고 있는데 이웃에 응급상황이 발생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 의사가 술을 많이 마시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출동하지 않았다면 이웃으로부터 ‘인정머리 없는 의사’로 찍혀 소외되고 말 것이다.

만약 고의로 출동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할 수는 없다. 개인의 자유영역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라도 국가가 이를 침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발생한 서울시 강남구보건소 사건처럼 서울시가 “응급상황에 출동 불응 시 별도의 점검을 받을 수 있다”고 의사들을 협박하는 어이없는 일이 또다시 재연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강남구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강남구의사회가 함께 개최하는 토론회에 강남구보건소가 이 지역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참여할 것을 독려하면서 “토론회 미 참여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향후 별도 점검할 예정이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발송해 민간인의 참석을 강제했다는 비판을 받은 사건을 말한다.

의료인의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함에 따른 정보 유출 위험성도 있고, 지금도 의사가 근무 시간 외에 응급의료에 나섰다가 도리어 고소를 당하는 등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와중에 마땅한 대책도 없이 의료인의 ‘재능기부’ 식으로 섣부른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선행은 국가가 언제든 마음대로 강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의료인도 대한민국 국민이자 서울시민으로서 마땅한 권리를 갖는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시가 스스럼없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가?

서울시 강남구 보건소의 ‘토론회 참석 강제 사건’이 발생한지 한달도 되지 않아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다.

이쯤 되면 서울시 관계자들이 과연 의료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언제든 자기들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는 노예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그런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만용을 계속해서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처럼 국가응급의료체계가 부실한 나라에서 응급상황 발생 시 주변의 민간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정부가 민간자원을 함부로 통제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공무원도 업무시간이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나 행정민원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자동차 정비사라면 길을 가다 자동차가 고장난 것을 목격하면 언제든지 고쳐줘야 하는가? 소방관이라면 근무시간이 아니라도 화제상황 발생 시 안전장비도 구비 못한 채 언제든지 뛰어들어야 하는가? 시민을 우습게 알아도 유분수다.

서울시는 정 민간자원 활용이 필요하다면 먼저 당사자인 의료계와 접촉해 의견을 청취했어야 했다. 정중히 협조를 요청하고 더 나은 방안이 없는지 충분히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식’으로 ‘통합자원관리시스템’ 운영 계획을 갑작스럽게 발표해버리면 비판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고려하지 않는가?

관치의료에 대한 의료계의 불만이 그렇잖아도 매우 큰 상황이다. 이번에 서울시가 보인 돌출 행보로 의사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서울시 관계자들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더 이상 지나친 만용을 부리지 말고 상식적으로 임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