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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짓눌린 의사와 히포크라테스 윤리, 그리고 이유 있는 항변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장


1989년 7월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에 ‘옥죄이고 있는 의사를 만나다(Meet Dr. Sqeezed)’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고자 로버트 브랜슨은 “오늘날 의사들은 환자와 보험자, 정부, 소비자단체들에게 둘러 싸여 점점 옥죄이고 있다”라는 비평으로 시작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의 의사들은 의료비와 의료의 질, 환자의 기대와 의료 전문가로서의 판단, 전문직의 자율성과 소비자 보호 사이의 피해갈수 없는 갈등을 겪고 있다. 의사들은 점차 포위 공격받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진단과 검사, 수술권유는 각종 기준에 의해 제한되고 뒤엎어진다”면서 보험자, 정부기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과 환자들이 자기의 이익이나 권리를 위해 의사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짓눌린 의사들은 이 시대에 자신의 권리가 있냐며 반발하고 있다.

각종 규제와 의료기관의 자체 제한규정, 보험의 한계, 의료사고의 위협과 환자의 압력으로 인해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요구하는 대로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좋은 의료를 할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관리의료체계(managed care)의 제약으로 인해 내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권리가 차단당하고 있다.

의사들이 진료할 장소와 방법까지 통제 당하고 의사로서의 진료할 권리가 손상 당하고 공격받고 있다.

급진적 평등주의자나 소비자 주권을 겉으로 내건 단체 들은 의사들의 항변이 나올 때마다 의사들의 주머니를 열어 보자고 프라이버시 공격까지도 서슴치 않고 있다.

현대 사회 하에서는 의사들은 각종 규제와 제도에 묶여 의사의 양심과 능력으로는 최선의 치료를 도저히 제공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제한된 상황에서 의사들에게 무한정의 희생과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다.

고대의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나 통용될 수 있었던 윤리를 들먹이며 의사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히포크라테스의 윤리는 단지 환자와 의사 사이의 단순한 관계에 적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 제3자(보험자와 정부, 소비자 단체)의 출현으로 그대로 적용시키기 불가능한 환경이 돼버렸다. 새로운 윤리적 해석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사협회 회장 세이드는 히포크라테스의 윤리를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다음과 같은 논변을 통해 큰 호응을 받았다.

세이드 회장은 “의사의 판단에 족쇄를 채우고 의업을 통제하려는 자들에게는 어느 의사라도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나는 내 삶과 내 정신에 대한 당신의 권리를 인정 할 수 없다. 그것은 나, 오직 나에게만 속한 것이다.” “의료는 권리도 특권도 아니다. 이것은 의사가 의료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의사는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자기의 생계를 의존한다. 의료는 하늘이 대가 없이 내려 준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생각과 수고에 의해 발생된 것이다.” “의사는 환자의 최고 이익을 위해 최선의 판단에 따라 진료하는 권리를 제한하고 통제하고 명령하려고 하는 제3자를 배제할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이 윤리적인 행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정당한 경제적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의사들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가 여러 가지 제도(지불제도, 심사기준)로 인해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환자를 위해 윤리적으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의사의 경제적 권리가 더 이상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위협은 의사들이 의사 본연의 윤리 정체성을 포기하고 사회 제도와 적당히 타협하도록 유혹 할 뿐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생명 존엄성까지도 조금씩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제도와 규제로 의사를 통제할 수는 있어도 생명을 구하려는 의사의 사명과 윤리마저 훼손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