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의료분쟁조정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하나된 산부인과 의사들이 의료분쟁조정법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했다.
최근 대한성형외과의사회와 대한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도 의료분쟁조정법을 불참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산부인과 의사들의 의료분쟁조정법 전면 거부에 더 큰 힘이 실려 향후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대한산부인과학회(이사장 김선행)와 대한분만병원협회(회장 강중구)는 26일 중앙대학교병원 동교홀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알리는 ‘의료분쟁조정법 전면 거부 선포식’을 열고, 독소조항 개정 없이는 의료분쟁조정절차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산과의사들은 선포식에서 결의문에서 “오는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신속 공정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오히려 의료분쟁을 조장하고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건의료인의 안정적 진료환경을 해치는 법률로는 국민의 건강권도 지켜질 수 없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산부인과 의사 일동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 법의 위헌적인 독소조항에 대한 합리적 개선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으면 의료분쟁조정절차에 일체 응할 수 없음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개선을 요구한 사항은 ▲의료기관 난동 등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조항 명시 ▲민사소송에 없는 강제출석 현지조사 폐지 ▲과실도 의사책임 무과실도 의사책임 무과실강제분담금 개선 ▲연좌제 책임 요양급여 원천징수하는 배상금 대불금제도 철폐 ▲의료분쟁조장ㆍ무분별 증거수집에 대한 대책 마련 ▲의료사고 과실감정 의료전문가가 시행 등 6개 항목이다.
특히 무과실 보상기금의 분담과 의료분쟁조정원의 비효율적인 구성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뽑았다.
산과 의사들은 무과실 보상기금 분담과 관련해 민법에서 정한 과실 책임의 원칙에 위배되는 데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의사의 과실이 없다고 인정된 사건에 대해서도 의사가 일정 부분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
신정호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정부는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금을 의료인과 정부가 분담하는 방안을 고수하고 있다”면서 “과실이 없어도 책임지라는 논리는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얘기"라고 지적했다.
강중구 분만병원협회 회장 또한 “무과실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도 없다”면서 “오히려 가까운 일본은 분만의 특수성을 인정해 의사가 과실이 있어도 국가가 책임을 져 의사가 최선의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암 산부인과학회 의료분쟁조정법 TFT 위원장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금과 관련해 복지부 담당자와 논의 중 복지부에서는 의료분쟁조정법을 거부하는 것을 피해달라는 의미에서 정부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금 80%까지 부담한다는 얘기가 나온걸로 알고 있다”면서 “정부에서 90%를 담한다고 해도 산과의사들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산과의사들의 자존심 문제”라면서 “전문가인 산과의사들이 비전문가에게 평가 받고 감정 받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산과의사들은 의료에 문외한인 비전문가가 의료사고 여부를 감정하도록 하는 의료분쟁조정원의 구성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의료분쟁조정원의 구성에서 의료인이 비율이 비의료인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
아울러 이들은 그동안 논의과정에서 의료계의 주장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은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신정호 사무총장은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수를 보면 2002년 270명에서 2011년에는 90명으로 줄었고, 분만병원도 2000년도 1570곳에서 지난해 911곳으로 줄었다”며 “산부인과 인프라가 날로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국 266개 시군구 중 분만이 불가능한 곳이 2010년 49곳에서 2011년 58곳으로 늘었다”면서 “이러한 문제는 산부인과가 어려워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응급한 순간에 시의적절한 진료가 이뤄지지 않아 산모와 신생아에게 피해가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료시스템 문제는 국가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정부는 그간의 논의과정에서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일방통행으로 제도 시행을 강행해 왔다”고 지적했다.
산과 의사들은 독소조항 개정 없이 법률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헌법소원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김암 위원장은 “오는 4월 시행되는 의료분쟁조정법은 시행령상 무사고 보상이 포함되지는 않으나 그 외 조항은 시행 된다”면서 “무과실 보상기금의 경우 1년 정도 유예기간이 있으나 독소조항이 포함된 채 법률이 시행된다면 의료인이 소신 진료를 할 수 있고, 국민들이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헌법소원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선포식에는 김선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남궁성은 학회 명예이사장, 나현 서울시의사회장, 윤창겸 경기도의사회장, 노환규 전의총 대표 김동석 의협 기획이사, 유화진 의협 법제이사, 강중구 분만병원협회 회장, 김숙희 학회 개원특임위원장, 박문일 모자보건학회 이사장, 조정남 이화여대 총동창회 회장, 손영수 학회 법제위원장, 김암 학회 의료분쟁 TFT 위원장, 이근영 학회 보험위원장, 민응기 학회 포괄수가 TFT 위원장, 이기철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 부회장을 비롯 최근 의료분쟁조정법 반대성명을 낸 성형외과의사회에서도 황규석 법제이사, 홍정근 홍보이사가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