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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포’로만 끝난 약사들의 투쟁선포식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피할 곳 없는 약사들의 모습은 예상외로 싱거웠다.

1993년 한약분쟁 이후 처음 정부를 향한 투쟁에 나선 약사들의 ‘약사법 개악 저지를 위한 투쟁선포식’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으나,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투쟁식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일찌감치 보건복지부 앞에서 대기해 있던 상여를 두고 경찰이 저지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상여 퍼포먼스는 ‘약사의 직능이 죽었다’, ‘국민의 건강이 죽었다’라는 표현을 추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약사회가 준비한 히든카드였으나, 집회 금지물품이라는 이유 등으로 포장된 비닐을 벗기지 못한 채 다시 배달된 트럭에 실려야 했다.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진수희 장관의 고발도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다. 대한약사회는 이날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을 이유로 진 장관의 고발장을 행사 후 접수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명확한 이유 없이 고발장 접수는 연기됐고, 진 장관을 고발하겠다고 외친 발언은 그저 ‘발언’으로 끝이 났다.

집회 막바지 시작된 복지부 앞 거리행진도 경찰의 저지에 막혀 30여분간의 실랑이 끝에 무산됐다. 경찰에 가로막힌 약사들은 자진해산하며 집회를 마무리 했다.

집회 중간 일부 약사들은 자리를 뜨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나마 집회중간에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 약대생들로 인해 집회 인원은 약 400명 가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간 약사 개개인을 취재하면서 혹은 약사들이 모인 행사자리에서 생존권을 호소하는 민초약사들의 목소리는 귀 기울일 만큼 절박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국민 건강권은 둘째 치고, 우선은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느냐하는 생계가 달린 문제”라고 토로하는 어느 약사의 한숨은 숱한 비판보다도 호소력 있게 들렸다.

‘밥그릇 싸움이다’, ‘약사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라며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그러나 이런 절박함의 목소리를 가장 크게 낼 수 있던 자리에서 약사들의 모습은 과연 개개인의 이야기보다 간절했었나 의문이 든다.

이날 약사가 몇 명이 모였는지, 몇 시간 동안 진행됐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을 설득하길 원한다면 투쟁선포식이 단지 ‘선포’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약사들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