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수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최근 불고 있는 ‘미드 열풍’ 일 것이다. ‘無에서 有를’ 찾아내고, 사건 해결의 단서를 들춰내는, 그래서 미궁에 빠질 사건을 해결해 내는… 그런 역할을 기대하는 기자에게 가톨릭대 법의학교실 강신몽 교수는 손사래 먼저 친다.
“단적으로 말해서 ‘셜록 홈즈’가 되고픈 ‘치명적인 유혹’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의학자는 그저 ‘과학자’일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만 받아들여 과학적 데이터를 구축하는, 그래서 법이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그리고 수행하고 있는 일이다”
‘선정적’인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의 ‘유명한 사건’ 운운하는 ‘우문’에도 ‘현답’이 돌아왔다.
“모든 변사사건은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내게는 사회적 명성은 가진 이나 매스컴을 장식한 사건도 노숙자의 죽음과 다를 게 없다. 그런 관심사를 거론하는 자체가 사안에 차등을 두는 것 같아 싫다”.
강 교수는 지난주 개최된 60회 ‘과학수사의 날’ 행사에서 법의학 분야 대상을 수상한, 그야말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학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그냥 과학자’, 사실에만 근거한다”
▲ ‘그냥 과학자’가 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 나는 과학자로 존재하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과학은 ‘만능열쇠’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근거해서 데이터를 만들어야 한다.
‘사체만 보면 한 눈에 모든 것을 파악하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혹은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잘못이다.
심지어는 자신이 결론을 낼 상황이 아니면 “모르겠다”고 해야지, 실력을 자랑하듯 결론을 위해 단서를 ‘짜깁기’ 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다. “셜록 홈즈가 되려 하지 말라”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예를 들어 경찰이 “사망한지 3일 됐다”는 추정을 내렸더라도, 시신을 보고 그 결과에 따라 ‘3일’이라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 본인의 과학적 판단이 ‘5일’ 이라면 그렇게 결론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체를 다루는 변시(變屍)의학을 주로 담당하면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것 같은데?
= 철학?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자’가 철학이라면 철학이다. 과장이나 과소평가, 혹은 선입견의 개입없이 최대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철학 용어를 이야기하자면, 연역법보다는 귀납법 적인 입장에 서야 한다고나 할까?
특히나 변시의학은 양쪽 당사자 가운데 한쪽이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망자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亡者의 인권 찾기, 살아 있는 우리들에게 혜택”
▲평생을 이 분야에서 일해 왔다. 일에 대한 애정도 남다를텐데?
= 치료의학이나 예방의학보다 법의학에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강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사회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더 어렵고 힘들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해볼만한 일, 걸어볼만한 길인 것 또한 사실이다. 최소한 여타 의학분야와 ‘마찬가지’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확실히다. 무엇보다 이 분야는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 변사한 이의 인권을 지켜준다는 점에서 미덕을 갖는다. 결국 그것(변사)을 둘러싼 ‘살아남은 자’들의 인권을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특별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 일단 나 자신이 ‘굉장히 평범한 의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기대하는 만큼 ‘이상하거나’, ‘흥미롭거나’, ‘지저분하거나’ 하지 않다. 당연히 ‘특별히 멋있는’ 분야도 아니다. 지금에서야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는 걸 느끼고 감사해 하고 있다.
앞서 말했지만, 법의학이 발달하면 그 혜택은 살아 있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법의학 이라는 것이 기본적인 과학적-의학적 견지에서 사자의 인권을 판단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례들이 쌓이면서 살아있는 우리들이 혜택을 보게되는 것이다.
“행복한 선택, ‘미드’ 수사물은 안봐”
▲법의학교실 입구에 국과수 지역법의관 사무소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 특히 변시(變屍)의학은 변시성(變時性)에 영향을 받는 분야다. 국과수 본부에서 담당하던 업무를 여러 곳으로 나눠 이동시간을 줄이고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가톨릭의대 내에 국과수 사무소를 설치한 것으로 보면 된다. 서울에는 고대의대에도 이러한 사무소가 설치돼 있다. 올해부터 이러한 사무소가 개설됐다.
다른 측면에서 이것은 상당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학 측면에서는 의대생들이 이 분야를 접하고 경험함으로써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과거에 이를 다뤘던 사람들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수사기관 입장에서야 보다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업무처리가 이뤄지니 당연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법의학을 전공하려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 나는 의대 졸업 후 30년을 이 분야에서 일해 왔다. 고대의대에서 법의학교실에 있었고, 국과수에서도 10년을 보냈다. 그리고 여기 가톨릭의대에 와서 또 10년이 지났다.
평생을 이 일을 해왔는데, 아직도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질 때가 많다.이 분야를 전공하려는 후배들이라면, 다른 분야에 비해 ‘더많은 후회’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시의학으로 논의를 좁히자면 병리학-해부학적인 기본적 소양이 중요하다. 사실 법적인 것이 당장 그렇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법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는 경험이 쌓이면서 터득되는 것이므로 미리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요즘 불고 있는 외국 드라마의 법의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 가족들도 ‘열심히’ 시청하던데, 나는 마음먹고 그런 드라마를 본 적이 없다. 가끔 ‘본의 아니게’ 몇 장면 보게되는데, 허구적이고 과장된 측면이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물론 대부분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겠지만, 극적인 긴장감을 위해서 법의학자들을 ‘무소불위’의 존재로 그려낼 때는 좀 어색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