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약자의 항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의협에서 열린 의료법 일부개정 토론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자유토론에서 발언권을 얻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주어진 발언시간(2분)을 넘겼고, 발언 내용도 대부분 지나치게 넓은 총론을 다루거나, 개원가의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아니면 정부의 실정을 꾸짖는(?) 것들이었다.
그들이 시간을 넘겨서까지 이런 발언들을 쏟아내는 심정이야, 토론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는 복지부 의료제도과장, 개원가 의견과 상충하는 의견을 발표한 병협 대외협력위원장에게도 이러한 면에서는 조금의 예외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에 두눈이 꼿꼿해 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단 의료법만이 아니라, 의료와 관련된 제도-정책에는 ‘모범답안’이 있을 수 없다. 저마다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 그리고 지향점들이 모여 하나의 틀을 짜는 것이다. 여기에는 갈등과 협조, 양보와 타협이 공존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나(혹은 내가 속한 집단)의 의견을 어떻게 표출하고 관철해 내냐는 것이다. 공식적인 의견 전달이나 비공식적인 로비활동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고, (잠재적인) 경쟁집단을 압도하는 논리전을 펼쳐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농성과 시위가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고, 대국민 홍보가 더 나은 방법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물밑 준비작업을 통해 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형성하는 과정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번 의료법 일부개정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개원가의 현실을 알리고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낼 때, 또다른 사람들은 의협에 의견을 개진하고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많은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것이 에너지다. 답답한 마음에 한풀이만 할 것이 아니라, 현상을 극복할 에너지를 내재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의협의 DUR 헌법소송은 긍정적인 측면을 보여준다 하겠다. 소송참여의 의지를 밝힌 회원들이 각급 의사회의 임원이건, 그들의 독려를 받은 회원이건, 그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를 결집하고, 여기서 비롯한 동력을 확인하는, 그럼으로써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공유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