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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의원

의료 사각지대, ‘검증안된 시술’이 판친다

최근 침술(鍼術)을 통한 여성 가슴 확대, 얼굴 주름 및 군살 제거 등 ‘한방 성형’이 붐이다. 현대의학(성형외과)의 수술과 달리 마취·입원이 필요 없고 보형물 주입도 없는데다 부작용 걱정도 없다는 것이 소위 한방 성형을 도입하고 있는 한의사들의 설명이다.

각종 일간지, 주간지 등 각종 언론매체에는 “이제 별도의 외과적 수술없이 침만으로 가슴확대까지 가능할 만큼 한의학이 발전했다”며 효과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기사가 일제히 게재됐다.

이같은 한방성형의 신기술을 내세우고 있는 한의원은 최근 한의사들을 대상으로 ‘한방성형’을 주제로 세미나까지 개최했다. 한방 성형이 한의학의 새로운 진료영역으로 간주돼 블루오션으로까지 떠오르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침술이 근거로 삼는 동의보감에는 성형 효과에 대해 명시돼 있지 않다. 이처럼 새롭게 도입되는 시술 대부분이 표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분별하게 도입되는 새로운 시술들=비단 한의학뿐만이 아니다. 현대의학 역시 새로운 진료 영역, 기술에 대한 사전 검증장치가 미흡해 환자들은 안전성과 유효성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상태다.

새로운 치료방법이 개발된 후 정식 의료행위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의학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소위 양방 침으로 잘 알려져 있는 IMS(intramuscular stimulation)의 경우도 개원가에서 보편적으로 시술되고는 있지만 ‘신의료기술’로서 인정받지는 못한 상태다.

특히 쌍꺼풀수술, 코성형수술, 지방흡인술, 주름살 제거술 등 미용성형이나 필수진료를 제외한 예방진료 등 건강보험 적용 대상(급여)이 아닌 비급여 진료의 경우에는 별도의 인증제도 없이 개원가에서 곧바로 도입, 환자들에게 시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제도적·객관적 검증을 받지 못한 시술들이 환자를 대상으로 검증단계에 있는 셈이다.

환자들은 설사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 시술이라도 시술여부에 판단을 전적으로 의사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진료에 대해 비용을 고스란히 지불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제한 규정·사전검증장치 없나=의료기술과 관련된 인증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허와 ‘신의료기술평가제도’(이하 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 인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특허의 경우 새 의료기기에 대한 심사는 가능하지만 사람에게 행하는 의료기술에 대한 부분은 특허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의료기기에 대한 심사나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의 경우 특허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사람의 질병 치료나 진단·치료 방법 등 의료행위 자체는 산업상 이용할 수 있는 발명이라고 볼 수 없어 특허대상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의료기술평가제도는 의료행위를 포함한 의료기술에 대한 심사기능을 담당토록 돼 있다. 의료기술평가란 국민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인증하는 제도로, 지난해 4월 28일 의료법 개정을 통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법적인 허점을 드러내고 있어 개원가의 무분별한 의료기술 도입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병의원, 진료비만 신고하면 합법=새로운 의료기술 도입과 관련해서는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 제53조는 신의료기술을 ‘새로 개발된 의료기술로 복지부 장관이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국민건강보험법 하위 규정인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제10조)에서는 ‘새로운 행위(신의료기술)에 대해 신의료기술평가에서 안전성·유효성 등을 인정받은 이후 환자에게 최초로 실시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요양급여대상 여부의 결정을 복지부장관에게 신청해야 한다’는 조항을 둠으로써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사전 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사전평가 의무 대상을 ‘요양급여(보험적용)대상 또는 규정에 의한 비급여(보험 미적용)대상으로 결정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으로만 국한하고 있어 규정에 명시된 급여 및 비급여 대상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제제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규정에서 비급여 대상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되는데, 세부항목 조차도 ‘쌍꺼풀수술’, ‘코성형수술’, ‘유방확대술’ 등으로만 명시됐을 뿐 구체적인 시술법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 포함된 분야에 대한 새로운 시술법은 사전검열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복지부도 이같은 점을 시인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신의료기술평가 규정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현행 규정상으로는 안전성·유효성이 확보되지 않은 시술에 대해 사전 제제장치가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병의원에서 단순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시술을 환자들에게 시행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보건소에 해당 술기에 대한 진료비(진료보수)를 신고하는 것만으로도 합법화된다.

◇“못미더워도 어쩔 수 없다”…소송·사회문제화만 보상책=이같은 법·제도적 문제는 검증되지 않은 시술에 따른 피해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환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비급여 등 사전검증의 사각에 놓인 시술의 경우 피해사례를 직접 경험한 환자가 복지부에 신고하거나 소송을 제기해야만 제제나 보상이 가능하다.

더구나 신의료기술 관련 조항도 복지부 장관 직권으로 안전성·유효성 평가를 받도록 할 수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발효되기 어렵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술을 받은 사람의 피해사례 신고를 접수하거나 사회적으로 문제화 돼야 비로소 복지부 장관 직권으로 문제가 되는 기술에 대해 평가하고 제제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실제 병의원에서 행해지는 모든 시술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는 시술의 타당성 판단을 학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타당성 인증 목적으로 별도의 학회를 만들 경우 평가의 객관성은 흐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외국에서 도입한 새로운 시술법이라도 이들 중에는 질적으로 국내보다 못한 행위도 있어 환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의료전문로펌 대외법률사무소 최재혁 변호사는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해서는 의료광고사전심의제도에 따라 필히 신의료기술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광고를 하지 않으면 문제되지 않는다”며 “결국 환자는 의료사고로 인해 소송을 제기하거나 해당 의료인을 사기죄로 고소해야만 해당 시술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환자들 사이에서는 ‘의사들이 받지 않는 시술은 받지 말라’는 말이 정설이 되고 있다.

◇법·제도적 허점, 의학계도 고민중=이처럼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에 대한 법제도적 사각지대와 이를 악용하는 세태에 대해서는 의학계도 고민중이다.

각 의학회를 총괄하고 있는 대한의학회 김건상 회장은 “옛날에는 의술이 질병을 고치는데 쓰였는데 요즘에는 건강·미용으로 분야가 확대돼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특히 보완대체의학 중에는 검증 안 된 것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와 관련해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고 모든 시술에 대해 안전성과 효과를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사실상 어렵다”며 “의사면허의 경우 상황판단을 할 수 있다고 간주하고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인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학회와 개원가 사이에 경계가 더러 있어 (원활한 학술적 교류 측면에서) 걱정은 된다”며 “의사 중 전문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연수평점(매년 의사가 일정시간 받아야 하는 연수교육 점수)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취득하는 경향은 개선돼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시술의 경우 보다 나은 진료를 위한 환자들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환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의료인들의 자체적인 검증 노력과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 회장은 “제도적인 문제점과 의학계의 자정노력은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지만 뭐든지 한꺼번에 하면 역효과가 나듯이 점진적으로 고쳐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메디포뉴스 제휴사-국민일보 쿠키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