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정치권 금품로비파문으로 어수선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번 대의원 임시총회에서도 전혀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당초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번 임총에서 장동익 전 회장 사퇴 건과 김성덕 직무대행 추인 건을 승인하는 등 당면 과제들을 해결하고 의료계 화합을 위한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 임총에서 보여준 것은 평의원과 대의원 사이의 여전한 괴리와 이번 사태에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 대의원들, 그리고 임총을 차기 대권을 위한 기회로 삼으려는 모습들 뿐이다.
이날 평의원들은 대의원들이 입장할 때 마다 '의협사태 수수방관 대의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어 대의원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한 평의원의 기습적인 삭발도 진행돼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다.
결국 이번 임총은 거의 모든 안건에서 대의원들과 일반 민초의들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한편의 코미디로 전락했다.
특히 의료법 비상대책위원회 건을 심의할 때 일부 대의원들이 “비대위가 구성돼 있는 만큼 비대위에서 새 위원장을 선출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자 평의원들이 ‘어용 비대위 자폭’을 주장하며 폭발했다.
이 과정에서 홍승원 대의원과 원대은 대의원들은 평의원들과 심각한 폭언을 주고 받으며 몸싸움 직전까지 가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괴리는 장 전회장의 사퇴 건에서도 불거졌다. 이미 사퇴했기 때문에 안건을 폐기하기로 하자 평의원들이 회원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을 물어 사퇴가 아닌 파면을 해야한다고 요구한 것.
또한 내부고발자 문책을 전혀 고려한 적이 없다는 김동준 윤리위원장의 해명이 있은 다음에도 “비겁하게 변명으로만 일관한다”면서 사퇴를 주장했다.
이날 참석한 한 평의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모든 대의원들이 책임을 느끼고 총 사퇴하길 바랬으나 무리였다”면서 “의협이 바뀌려면 아직 100년은 멀었다”고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대의원과 평의원 간의 충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대의원들 간에도 사안에 따라 지리하고 의미 없는 예의 구태의연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한 대의원은 의장을 부의장으로 교체하자는 안건을 내기도 했다.
대의원간의 의견 대립은 대국민 사과문 채택 건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한 대의원은 “문구 중에 일부 지도자급 인사가 누구를 지칭하는 지 확실하지 않다”면서 빼야 한다고 주장해 책임을 피하려는 인상을 보였다.
또 다른 대의원은 “이번 사태는 장 회장 개인이 저지른 일인데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느냐?”면서 대의원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 대의원은 “이번 사태에 우리 대의원들도 사퇴를 통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애써 모른척했다.
그러자 대의원총회에 참석한 대한의학회 대의원들은 “의학과 의료의 발전을 위해 거듭나겠다는 각오는 없고 의사단체 권력투쟁의 기회로만 삼고 있다”면서 비난했다.
대한의학회 대의원들은 성명서를 통해 “파행적으로 진행된 이번 임총에 대해 참단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대한의학회 대의원들 역시 임총 도중 집단 퇴장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 평의원은 “모든 책임은 장 전회장에 돌리고 자신들의 안위만 걱정하는 대의원들을 보면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