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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제중원, 바로 세브란스병원의 역사

박형우 연세의대 교수(동은의학박물관장)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연세의대 교수)
 
지난 4월 10일은 세브란스병원, 정확히 얘기하면 제중원이 창립된 지 12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최초로 내한한 의료선교사 알렌이 갑신정변의 와중에서 칼에 찔려 위독한 민비의 조카 민영익을 치료하여 생명을 구했고, 이것을 계기로 제출한 병원설립안이 고종에 의해 받아들여짐으로써 1885년 4월 10일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광혜원)이 개원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중원은 조선정부의 한 기관이라는 성격과 미 북장로회의 선교병원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 일종의 합작병원이었으나 ‘병원’으로서의 제중원 운영에 조선 정부가 관여한 흔적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선교 의사들을 고용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조선 정부는 미국 공사관을 통해 이들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한 반면, 선교 의사들은 병원 운영에 있어 필요한 것을 미국 공사관을 통해 조선 정부에 전했을 뿐 아니라 미 북장로회 선교부에도 알려 승인을 받음으로써 제중원이 원활하게 움직이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개원 1년 동안 10000명 이상의 외래 환자를 진료하였고, 수백 명에 대한 수술 및 외과적 처치가 이루어졌다. 알렌은 이 내용을 담은 ‘제중원 일차년도 보고서’를 조선 정부가 아닌 미 북장로회 선교부에 제출하였다.
 
제중원의 선교 의사들이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던 점은 자유로운 기독교 선교였다. 알렌, 헤론에 이어 제중원의 책임을 맡게 된 빈튼은 외아문 독판 민종묵, 미공사관의 알렌과의 회의에서 이루어진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제중원에서 전도가 허용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자신의 집에 진료소를 차리기에 이르렀다. 자연 제중원의 운영이 부실해졌고, 일본 공사관을 포함한 여러 기독교 교파가 나서 자신들에게 제중원을 넘길 것을 조선 정부에 요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 토론토의대의 교수였던 에비슨이 내한하여 1893년 11월 1일부터 제중원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는 제중원의 정상화를 최선을 다했고 환자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94년 봄 지방에 왕진을 간 사이 한국인 주사들이 수술방으로 꾸밀 예정이었던 방을 일본인 의사에게 세를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격분한 에비슨은 제중원을 사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알렌이 중재에 나섰고, 6개월 동안의 협상 끝에 결국 조선정부는 9월 26일 제중원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였다. 제중원이 온전한 미 북장로회의 선교병원이 된 것이었다. 합작 파트너였던 조선 정부가 빠졌을 뿐 병원으로서의 제중원은 모든 것이 이전과 동일했다.
 
한때 제중원이 선교부로 이관되지 않고 위탁경영 되었다는 억지 주장이 제기 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관련 사료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모든 자료를 검토하지 않고 일부 자료로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시키려 했던 억지 주장임이 밝혀졌다.
 
1900년 봄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의 부호 세브란스씨가 기부한 거액의 기금으로 1904년 9월 23일 지금의 서울역 앞에 ‘새로 지은 제중원’ 세브란스병원을 개원하였다. 이후 학교의 명칭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브란스의과대학, 그리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바뀌면서도 병원의 이름을 지금까지 세브란스병원으로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이 1885년 조선정부와 미 선교부의 합작으로 설립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병원 제중원은 1904년 미국인 부호 세브란스씨의 기부로 새병원을 지으면서 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62년 신촌으로 옮겨 연세의료원으로 발전할 때도 외국 선교부의 전폭적인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2005년 창립 120주년을 맞이하여 봉헌된 최신의 세브란스 새병원은 외국인의 도움 없이 수많은 한국인 독지가와 교직원들의 정성으로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