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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많은 동료 의사들이 한번쯤은 의사가 된 걸 후회하며 살아갈 것 같은 세상입니다.
 
맑은 눈과 높은 이상으로 의과대학을 다니고, 두렵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첫 환자를 맞이하며 인턴을 시작하여, 말로는 표현하기 쉽지 않은 정신적․육체적 고통 속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법과 환자와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레지던트를 마쳐 전문의가 되기까지, 아마도 많은 의사들이 오늘날의 힘들게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어찌하여 우리시대의 의사들은 비통한 마음과 좌절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바르게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의 상황을 잘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끈질기게 따라오지만 모범답안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 답답한 마음만 커져 갑니다. 그러나 뚜렷해지는 한 가지 사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대처하는 편이 훨씬 더 의사답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이라면 숱하게 겪고 이겨온 우리들이니까요.
 
의료는 생명을 갖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유기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의료공급자인 의사, 수급자인 국민, 이 둘 사이를 매개하여 조정자 역할을 하는 보건의료 기관 및 관련 단체들과 위정자들, 의료에 관해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시민단체들, 여기에 더해 약사와 한의사 단체와 연관된 문제들과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외부여건 등 수많은 조건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의사들은 주변 여건들이 조건없이 따르던 황금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변화되는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고난의 시대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수 십 년 전의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 더욱 강해지는 국가차원의 사회주의 의료로의 압박, 보건의료정책의 실패나 시행착오 시 어김없이 가해지는 언론의 의료계 매도, 이를 부추기는 정당하지 못한 무늬만의 시민단체들, 내막은 모른 체 동조하는 다수의 국민들, 여러 측면에서 의사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이 자명합니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은 감내해내야만 할 과제들이고 소위 말하는 사회지도층으로서의 업보라 할 것입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좀 더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의사가 아닌 일반국민들의 시각에서 역지사지 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수십 년에 걸친 경제발전의 성공은 국민들의 의식주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의식을 깨우치고 권익을 신장시켜 의료계에서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과거의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어쩌면 일방적인 주종관계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의사는 주고 환자는 받는 의료행위에 있어서 환자의 자의적인 이의제기나 항의는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의사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놀라운 의료발전의 속도에 비례하여 환자의 권리 주장이 쏟아졌으며, 의사와 환자와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큰 의료사고는 말 할 것도 없고 과거에는 의료사고라 할 수 없는 작은 합병증이나 병발증까지도 의료소송에 휘말리고 소송의 결과가 확인되기도 전에 폭력적인 진료방해 사태가 일어나 울며 겨자먹기로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담보로 사태 해결을 꾀하는 일이 공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불가피하고 불가해한 상황에서의 의료사고나 합병증이라고 가정한다면,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의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의 정신적 충격과 경제적 손실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 사망사건조차도 어쩔 수 없던 시절에 견주어 볼 때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권익의 신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천방지축 달려들면 해결된다는 인식은 정당하지 못하므로 분쟁에 관한 적절한 방안을 법적, 사회적 합의로 제도화해야 일방의 터무니없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심의중인 의료분쟁조정법 같은 법률이 적절하게 입법화되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자본의 위력의 대단함은 누구나 느끼게 되고 모든 이들은 정당하게 일한 대가로 정당한 보수를 받기를 원합니다. 많은 의사들 중에는 슈바이쳐 박사의 고귀한 희생을 생각하고 의과대학을 선택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겠습니다만 더 많은 수의 의사들은 평범한 생활 가운데서 환자를 진료하며 희로애락을 느끼고 틈틈이 봉사활동도 하며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데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활인으로서 삶에 적절한 수입은 필수요건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의료현실로 볼 때 적절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의사들의 수가 많은 것은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업종을 막론하고 경쟁은 상존하고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되는 정글의 법칙은 존재하고 있지만, 다른 직종과는 달리 사람의 인체가 대상이 되는 경제행위가 될 수밖에 없는 의료업에서 의사가 생존을 위해 총력을 다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우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원가에 미달하는 저수가정책, 위헌소지가 다분한 차등수가제, 비대한 조직으로 방만한 재정운영을 일삼는 의료보험공단과 보험재정의 확보방안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식대보험, 중증질환자 보험의 확대, CT, MRI 보험급여 등 선심성 정책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려는 보건복지부등 위정자들의 정치적 행태, 이로 인한 보험재정의 고갈과 물가인상률에도 미달하는 보험수가의 인상, 건강보험료와 자기부담금의 인상, 쏟아지는 국민들의 원성을 매스컴을 통한 일부 의사의 비리폭로로 의사들의 책임으로 호도하기 등 일련의 사안들은 의사들을 경재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힘들게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경제적 빈곤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은 가급적 많은 수의 환자를 진료하는 일 뿐입니다. 환자가 만족할 만한 충분한 시간의 진료가 불가능한 것은 자명한 일이며, 이런 상황은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불만입니다. 환자 1인에 20분을 할애하고 싶은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입니다. 그나마 환자수가 너무 적어서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의사들은 의사로서의 양심과 생활인으로서의 경제적 욕구 속에서 심각한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바로 이점이 무엇보다도 의사로서의 자존심을 손상 시키는 핵심적인 문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 더한 더 큰 문제는 의료인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하는 중차대한 사안을 하나의 경제적인 현상으로 오해하고 바라보는 많은 곱지 않은 시선들과 짐짓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의사들을 더 깊은 사지로 몰아넣는 다수 위정자들의 편향된 정책방향입니다. 의사들의 힘만으로는 절대 역부족임을 느낄 때 그 좌절감이란 엄청나다 할 것입니다.
 
수많은 젊은 의사들이 한국을 떠나고자 외국 의사 시험을 준비 한다고 하는 충분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최소한의 의사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치적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며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의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있어야만 병원을 찾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현대에는 사회구성원에 대한 사회보장적 기능이 급격히 신장되어 예방적 측면의 정기적 신체검사가 일반화되었고 미용성형, 비만 체형관리, 갱년기장애, 요실금, 노인의학 등의 분야가 의료의 외각에서 점차 그 중심부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사회구성원들의 사고가 자본주의식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의료행위도 하나의 상품의 개념으로 받아 들여 지게 되었습니다. 의사들도 약간의 고급상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료수급자들의 의식변화는 그 변화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맞은편에는 손뼉의 한축을 이루는 의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의료인이기 이전에 자본주의 사회의 한 생활인으로서 현실적인 보수나 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이는 거의 없다고 하겠습니다만, 의료행위가 일반 상인들의 경제활동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그 경제행위의 대상이 바로 사람, 즉 인격을 담고 있는 사람의 몸이나 정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시장에서 생선을 팔거나, 자동차를 만들어 수출을 하거나,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다듬는 등의 행위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할 것입니다.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의 철학과 의술의 정확도 등은 차치하고라도 의료를 공급받는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의 몸에 대한 근심과 의료행위로 인한 통증, 몸을 내맞겨야 하는 무기력감 또는 수치심 등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됨으로 해서 정신적으로 매우 예민한 상태가 되고, 의사와 환자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용사와 머리카락을 다듬으러 온 손님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그것보다 더 정신적인 것, 즉 인격적인 것이 매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환자들은 치료행위가 끝나면 자신이 받은 의료행위를 일반적인 경제행위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돈을 지불함으로써 그 관계가 종결된다고 생각하는 한편, 자신을 담당했던 의사가 자신의 평가나 감성에 부합되지 않으면 실력은 형편없고 인격수양이 부족한 의사라든지 돈만 알고 탈세를 일삼는 부류라든지 하는, 매스컴과 환자와 의사가 합작으로 만든 굴레를 뒤집어 씌우는 이중의 잣대를 적용시키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미용사가 머리를 잘못 다듬었을 때 하는 비난과는 양과 질적인 면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이런 유형의 오류는 어떤 사회적 이슈로 의사들이 주장하는 사실의 진위와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무작정 의사들을 비난 하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여기에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군림하고 있다는 질시와 편견이 더해질 때 그 비이성적인 매도는 사회에서의 의사들의 순기능을 순식간에 삼켜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제 주위에 전문직에 종사하며 저와 호형호제하는 친한 분과 술좌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의사의 비리를 일반화한 듯한 뉴스가 나오는 것을 보고 양심적이고 훌륭한 의사가 많은데 의사집단 전체를 매도 하려한다고 불만을 털어놓자 그 분 말씀이 의사가 다른 직종들과 똑같은 집단이라면 면죄가 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단순한 질문에 적잖이 당황하여 말문을 닫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시대의 의사들은 고도의 윤리성을 요구받는 집단입니다. 의사가 행하는 의료행위는 그 속성의 전문성과 주관성으로 인해 교과서와 통상적으로 행해지는 의료행위 이외에도 상당부분 의사의 자의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 의사 개개인의 양심의 기준에 따라 의료행위를 행하게 되는데 이때 생활인으로서의 현실과 충돌이 불가피하게 됩니다. 의사들에게 순백의 양심을 요구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그것은 환자를 진료할 때 전지전능을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사회가 사회 전체 구성원의 부류와 비교해 볼 때 더 윤리적이고 깨끗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고통 속에서 두려워하며 상처 받기 쉬운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인 몸과 정신을 경제행위의 대상으로 삼는 의사들의 도덕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할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집단적인 존경과 리더십을 발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면서 동시에 사회 곳곳에서 객관적인 사고로 중립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성이 있습니다. 안으로 편향된 의견으로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공정한 판단이나 평가를 바랄 수 없으며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은 의료현실 속에서 이러한 여러 구성원들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의견들이 모여 여론을 이끌고 현실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분노와 한탄은 스스로를 해칠 뿐 앞으로 나아갈 어떤 힘도 명분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사가 된 걸 후회해도 자신이 의사란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