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목 가립회계법인
병원경영의 화두, ABC원가분석
최근 원가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병원이 원가관리시스템을 도입하는 이유는 과거처럼 수익증가가 용이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익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원가관리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원가분석 결과를 활용하여 성과가 우수한 의사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집중 투자할 분야를 선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원가분석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명의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많은 의료진이 투입되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사무직, 기능직 등의 노력도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병원은 직접 대응이 가능한 직접비보다 배부가 필요한 간접비의 비중이 더 크고 다양하다.
간접비 배부를 위해 과거에는 수익, 근무시간 등 한 두개의 기준만을 적용한 전통적 원가계산방법을 활용하였다. 하지만 병원처럼, 원가를 발생시키는 주체나 요인이 다양한 조직에서 전통적 방법으로 원가를 배부하면 원가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즉 병동근무 간호사 인건비와 MRI장비의 감가상각비를 동일한 기준(예를 들어, 환자수)에 의해 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전통적 원가계산방법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원가분석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등장한 것이 활동기준원가계산(Activity Based Costing : ABC)이다.
ABC는 모든 원가를 활동별로 집계한 후 집계된 원가를 활동별 원가배부기준으로 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병원들도 ABC에 의한 원가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일산병원, 서울아산병원 등이 ABC시스템을 이미 도입하였고, 삼성서울병원, 한림대의료원 등이 ABC시스템 도입을 고려 중이다. 전통적 원가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는 병원은 고려대병원, 아주대병원 정도이다.
병원에서 ABC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이유
ABC가 전통적 원가계산방법에 비해 많은 장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ABC를 도입한 병원들이 최초 도입 시에 기대했던 효과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ABC원가분석 결과를 신뢰하지 못하여 과거처럼 수작업에 의존한 원가분석결과를 의사 성과평가에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ABC에 필요한 정보를 산출하지 못하여 ABC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위와 같은 결과가 발생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병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조업 등 일반 기업체에 적용한 ABC패키지를 병원에 그대로 사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모병원의 ABC시스템은 원가집계가 필요한 활동수가 1,100여개에 이르고 부서별 평균 활동 수가 13개에 달하고 있다.
각 부서의 원가를 평균 13개 활동으로 신뢰성 있게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만약, 가능하다고 한들 과연 어느 정도나 의미가 있을까?
활동별로 원가를 집계하기 위해서는 각 부서의 직무를 분석하고 각 직무별 비중을 측정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의 병원은 각 부서에서 주관적으로 판단하여 제시한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처럼 객관성이 결여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출된 원가분석결과를 중요한 성과평가나 투자의사결정에 활용하기는 힘들다.
ABC 도입 시 세가지 고려사항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ABC를 버리고,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원가계산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물론 대답은 ‘아니오’다. ABC를 적용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지, ABC가 가진 장점을 포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ABC의 장점을 잘 살리면서도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ABC의 기반이 되는 병원의 현재 정보화수준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ABC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들이 필요한데, 병원의 OCS, MIS 등 기존 운영계 시스템에서 산출되는 정보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원가분석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산출하지 못해 결국은 ABC시스템을 활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특히 병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제조업 등 일반 기업에 적용되는 ABC패키지를 그대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런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둘째, 원가배부과정의 임의성,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활동수와 배부기준 수를 과감히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성과평가와 같이 다소 민감한 의사결정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원가분석결과에 대한 신뢰성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는 원가배부과정이 단순하고 명쾌하여 쉽게 이해될 수 있어야 한다.
의료서비스와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낮고 그 기여도를 명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행정부서 원가는 공통 배부기준에 의해 단순하게 배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ABC는 어디까지나 병원의 성과관리를 지원하는 일부임을 기억해야 한다.
즉, ABC는 병원의 재무적인 성과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병원의 성과관리를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자칫 원가분석의 엄밀성을 높이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다 보면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게 되는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과거 병원들이 충분한 고려 없이 고가의 의료장비를 구입하였다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방치한 경우가 많았다. 요즘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ABC시스템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병원의 정보화수준이나 원가시스템의 활용목적에 대한 고민 없이 성급하게 도입한다면, 진료실 한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의료장비와 동일한 신세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