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식 소화아동병원장
지난 10년간 병원산업은 병원과 의사수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병원 간 과다경쟁, 과잉공급 등으로 모두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특히 의약분업, 주5일제 시행, 장기간의 경기침체 등으로 인한 수익감소로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이 많으며, 의료시장 개방을 앞두고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병원들은 생존을 목표로 노심초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어려운 병원산업의 당면한 현실을 노·사가 서로 이해하면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긴밀하고 협조적인 교섭체제의 구축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산별 노·사가 상호 상생하기 위한 병원산업의 발전방안과 노사관계는 어떻게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인지를 전년도 산별교섭의 평가를 통해 살펴보고 향후에 발생할 수 있는 과제들을 조망해 전향적인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산별교섭의 평가와 전망
2004년도 교섭을 평가할 경우, 노조는 교섭의 내용보다는 산별교섭 원년의 틀을 갖추려는 형식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은 산별의 형식을 이해하기 보다는 전체 산업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의 임금 인상률과 10장 2조와 같은 근로조건의 일률적 적용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금년도 노조의 교섭방향은 산별교섭의 틀을 공고히 굳히기 위한 현장강화와 임금인상을 포함한 근로조건의 개선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의 개선은 모두 비용을 수반하는 것으로 생산성 증가와 반드시 연계되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인력의 증가, 연장근무수당 증가와 토요 진료 축소로 인한 인력의 증가, 연장근무수당 증가와 토요 진료 축소로 인한 수익감소 등으로 많은 병원들의 생산성이 심각하게 저하되는 어려움에 처해있다. 작금의 위기상황을 노조원들이 이해하고 있어야 하나 대다수는 전년도에 임금이 적게 올랐다는 사실만을 인정하려 한다. 올해도 의료산업의 위기상황으로 인해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의 개선에 대한 사측의 지불능력은 상당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대한 노·사간의 견해 차이가 클수록 갈등과 대립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금년부터 산별교섭과 현장(지부)교섭을 동시에 병행해 추진하겠다는 노조의 교섭전략은 산별협약과 현장협약의 구분이 모호해 산별의 의미를 퇴색시킬 뿐만 아니라 변칙적인 이중분쟁의 개연성을 안고 있기에, 이를 방치할 경우 2005년도는 지부단위의 분쟁이 더욱 격렬하고 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사간의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병원 산별교섭의 과제
2004년 보건의료노조와의 산별교섭을 거치면서 수많은 부작용과 시행착오 등을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과 평가를 바탕으로 병원 산별교섭의 몇 가지의 문제점과 과제들을 짚어보고 새로운 노사문화를 정립하고자 한다.
첫째, 병원별 특성·규모 등을 감안한 특성별 교섭 군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무시한 일률적인 교섭형태는 병원의 특성·규모별 근로조건의 현저한 차이로 인해 노·사간은 물론 노·노, 사·사간의 내부적인 의견조율은 물론 공통된 안을 도출시키기가 쉽지 않다.
둘째, 산별 교섭대표단의 결정과 결과에 대해 노·사가 존중하고 승복하는 성숙된 노사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교섭과정의 적극적인 참관·참여를 통해 의견개진을 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할 줄 아는 성숙된 노사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교섭과정이 복잡할수록 분쟁의 해결도 복잡해진다는 것을 노·사가 공히 인식해야 한다.
셋째, 이중쟁의행위 금지와 교섭비용이 절감돼야 한다. 작년 산별교섭에서 전문가들이 우려하던 이중쟁의 행위가 실제로 발생했다. 이는 교섭비용의 손해를 고스란히 각 병원이 떠안는다는 점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산별교섭의 순기능이라 밝혔던 ‘교섭비용의 절감’이 오히려 교섭기간이 길어짐으로써 예년보다 증가하는 모순이 발생됐다. 병원산별이 온전한 산별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노조가 장점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교섭비용의 절감’을 위한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적절한 교섭의제를 선택해 산별교섭이 원만하게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노동계가 정치적 역량의 강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개별병원의 노사관계와 정책문제가 혼재해 노사관계가 노정관계로 전환되면서 병원 및 조합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산별노조의 지도부가 추구하는 목표와 병원 근로자들의 관심 차이로 노·노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노·정 갈등, 노·노 갈등으로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산별교섭이 진행됨으로써 노·사 모두에게 부담을 안겨줄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교섭의제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다섯째, 병원사별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산별체제는 기업별 체제와는 달리 개별병원의 문제와는 직접 관계가 없는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인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병원산별의 분쟁은 전체 병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파급효과가 워낙 크게 미치기에, 노동자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제도나 법률의 개정 등에 대해서도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한 개정노력을 해야 하고 또한 쟁의행위 시 초래될 국민 불편의 사회적인 책임을 의식해야 한다.
여섯째, 병원파업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일정부분 규제해야 한다. 산별교섭의 원년이라 불리는 2004년에도 파업의 악순환은 반복됐다. 특히 중노위가 ‘조건부 중재’와 동시에 평화의무 이행의 의무를 부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로비시설을 점거하거나 환자치료에 필요한 급식을 중단시키는 등의 불법행위가 반복됐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병원산업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써 파업이 금지되거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권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도록 규제해야 한다.
병원산별은 전체병원이 뭉쳐진 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공익에 대한 침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ILO조차도 국민의 생명, 안전,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필수서비스’ 업종에 대해서는 일정부분 단체행동권을 규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하며 지나친 단체행동권의 행사는 자제돼야 한다.
따라서 작년 노·사 최초로 만든 자율교섭에 의한 병원산별교섭이 항구적인 제도로 정착될 수 있도록, 법과 원칙을 준수하고 합법적인 수단을 강구할 줄 아는 바람직한 노사문화의 형성이 궁극적으로 노·사 공히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노·사가 합심해 상생할 수 있는 멋진 2005년도 산별교섭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