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0 (일)

  • 구름많음동두천 20.9℃
  • 구름조금강릉 22.7℃
  • 흐림서울 21.7℃
  • 맑음대전 24.6℃
  • 맑음대구 25.7℃
  • 구름조금울산 23.8℃
  • 맑음광주 23.4℃
  • 구름조금부산 25.1℃
  • 맑음고창 23.7℃
  • 구름많음제주 23.0℃
  • 구름많음강화 21.1℃
  • 구름조금보은 22.0℃
  • 맑음금산 23.5℃
  • 구름조금강진군 24.4℃
  • 구름조금경주시 25.0℃
  • 구름조금거제 24.9℃
기상청 제공

오피니언

새로운 건강보험계약제의 개정방향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박길준 연세대학교 의료법윤리학과 석좌교수
 
 
우리나라는 선진 외국과 비교해볼 때 공적 의료보험 시행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거의 모든국민이 공적의료보험을 받을 수 있는 등 의료서비스의 접근도에 있어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의료시장에서 양적 팽창, 규모의 경제를 이룩한 긍정적 측면의 이면에는 의료산업의 질적 향상을 가로막고, 의료의 효율성 저해 및 의료인 내지 의료기관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하였다는 비판적 시각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우리나라 의료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이 불균형한 발전을 이루는 왜곡된 구조로 나아가게 된 원인은 평등주의적 사고에 기반한 건강보험법 규정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서비스 배분에 있어서 형평성에 치중한 나머지 건강보험계약과 관련하여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요양급여비용계약에 있어서도 통제된 수준의 포괄적 단체계약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의료의 균형된 발전을 이룩하고, 의료시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계약제와 관련된 법규정의 재정비가 절실히 요구된다. 
 
건강보험계약제의 바람직한 형태를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서비스의 성격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복지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의료서비스는 공공재로 인식되고 있고, 의료서비스를 시장의 기능에만 맡겨둘 경우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정부의 규제 및 통제를 당연시 하여 왔다. 그러나 의료가 가지는 재화의 속성을 고려해볼 때 의료는 일반적으로 공공재가 가지는 소비의 비경합성의 원칙이나 비용부담자의 배제불가능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사적 재화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의료서비스를 어느 한 측면에서만 개념 규정짓고, 그에 따라 의료서비스 시장을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서비스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서 공적 의료체계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사적 의료체계에서는 자율성 내지 경쟁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의료시장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료체계를 현행 건강보험법에서처럼 공적 의료서비스 일변도로 규정하는 요양기관당연지정제는 타당하지 않으며, 공적 의료체계와 사적 의료체계가 공존할 수 있는 요양기관 편입계약제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공적 의료체계에 편입되어 요양기관으로 기능하는 의료기관의 경우 의료의 공공성이 강조되게 되고, 공익적 견지에서 요양기관의 자율성은 상당히 제한될 수 있고 정부의 통제 내지 규제가 정당화되게 된다. 
 
한편 공익성 내지 공공복리는 요양기관에 대한 국가의 간섭과 통제를 정당화하는 사유이기도 하지만, 요양기관에 대한 국가의 지원 내지 보호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재정지원 내지 조성행정과 같은 행정작용을 통해 의료기관의 요양기관으로 자발적인 편입을 유도하는 것은 탄력적인 행정수단을 사용하여 행정목표를 달성하는 현대 행정 방향과도 잘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요양기관 편입계약제가 계약체결의 자유 보장측면이라면 계약체결의 내용적 측면과 관련해서는 요양급여비용계약제가 있다. 요양급여비용계약제는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이 실시되면서 수가고시제에서 계약제로 전환된 진일보한 제도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의 요양급여비용계약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은 계약제의 진정한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현행 건강보험법에서는 의약계의 대표자와 공단의 이사장 사이에 요양급여비용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이른바 포괄적 단체계약제를 취하고 있다. 포괄적 단체계약제는 그동안의 시행과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이해관계가 상이한 집단들을 의약계라는 하나의 단체로 포함시킴으로써 대표자 선정 및 의약계 내부 합의과정이 순조롭지 못한 난점이 나타났다.
 
따라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의협, 치협, 한의협, 약사협, 병협 등의 동질적 집단으로 세분하여 계약당사자 지위를 인정하는 소위 직능별 단체계약제로 전환함으로써 계약체결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의 학자들은 이에 더 나아가 개개의 의료기관과 공단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소위 선별적 계약제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는데 일응 개별 의료기관들의 완전한 사적 자치를 보장해주는 진정한 계약제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질을 살펴보면 개개의 의료기관과 공단은 협상력에 있어서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국가 내지 공단에 의료기관을 종속시키는 결과를 나을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노사관계에 있어서 사용자와 대등한 협상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경우 단체를 결성하여 협상하는 것처럼 의료기관의 경우에도 직능별로 공단과 개별 단체 간에 계약이 체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의료기관의 자율성은 요양급여비용계약의 단체협상과는 별도로 요양기관 편입여부의 선택에 의해서 충분히 보장될 수 있기 때문에 계약주체를 지나치게 세분화하는 것은 계약관계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고, 오히려 계약체결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그 외에 요양급여비용 계약의 범위에 있어서 현행법은 요양급여의 상대가치 점수의 단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합리적인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계약제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계약의 대상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 그리고 계약이 결렬된 경우 조정 및 중재절차와 관련하여 조정 및 중재결정이 타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조정중재위원회 구성이 중립성을 담보받을 수 있도록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고, 위원회 조정 및 중재 기능을 강화하고, 소위원회를 활성화하여 절차적 정당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운용하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계약제와 관련된 사항들이 입법적으로 잘 완비된다 하더라도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계약제가 우리나라에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계약당사자들이 서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계약에 이르려는 협조자적 자세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