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간소화 정책에 따른 여파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의료비 소득공제 자료제출에 대한 혼란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국세청은 의료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진료내역이 일단 사실확인만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열람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료계의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기우’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진료내역이 공개될 것을 우려하지만 의료기관이 제출하는 자료에는 병명은 있지도 않으며 병명 코드자체도 아예 없다”고 설명하고 “환자 본인이 열람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성명, 주민번호, 사업자번호, 진료비만 나오고 의료기관 명칭도 ‘ABC 의원’ 중 AB 정도만 노출될 뿐”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는 또 “환자가 소득공제자료를 요청했을 때 의료기관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의료기관은 모든 진료 내역을 제출해야 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의료기관은 양심적으로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자의 진료내역이 설사 전면 공개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의료기관에 대한 세무조사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거나 환자정보 누출에 대한 의료계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산부인과의사회의 경우 “환자의 동의없는 진료자료 제출은 불가하다”며 관련 소득세법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결정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연말정산 간소화 정책이 환자의 인권 침해는 물론 의료법의 환자 비밀누설 금지 조항에도 위배된다”며 “환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이번 정책에 대해 전적으로 정부가 책임질 것을 요구하며 소득세법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한 정보 노출로 인한 문제 발생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환자 정보 노출에 대한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기다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의료기관에 대한 정책보복 우려까지 더해져 진료내역 제출 여부를 두고 혼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국세청은 최근 “일부 병·의원이 수입금액 노출을 우려해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제출하지 않은 병·의원은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것을 검토중”이라며 “고의로 제출하지 않는 병·의원에 대해서는 탈세 여부를 집중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일환으로 국세청은 내달 6일까지 관련 자료를 제출토록 행정지도를 한다는 것.
이와 관련 대한피부과개원의협의회 조경환 회장은 “환자 중에는 가족에게도 진료사실을 알리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다”며 “나중에라도 환자가 비밀 누출을 문제삼아 고발했을 경우 의료기관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이에 대해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분명히 하면 모르지만, 이러한 문제가 확실하게 적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협조하겠다는 의료기관은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정책 보복이 있을까 두려워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정부에 맞섰던 의사들의 경우 병원 문을 닫는 등 정부로부터 처절하게 보복을 당했다”며 “이 같은 공권력 보복을 고려할 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한 개원가에서는 기한 내에 자료를 작성하는 데 대한 어려움도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 한 개원의는 “전산화된 시스템을 사용하는 의료기관이라면 모르지만 일반 차트를 쓰는 경우에는 1년치를 한꺼번에 정리해야 한다”며 “필요하다면 자료를 제출해야겠지만 너무 임박하게 추진하는 바람에 의료기관의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정부에서 모든 진료내역을 공개토록 요구하고 있어 일단 자료작성에 여념이 없다”며 “만약 자료에서 누락된 항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될 지 몰라 불안감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개원가에서는 의협이 소득공제 자료제출 여부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세워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한 피부과 개원의는 “의사단체마다 입장이 엇갈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며 “의협에서 빨리 지침을 내려줘야 비로소 개원가가 준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대한성형외과개원의협의회 박병일 회장은 “소득세법시행령이 미용·성형 부분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적용돼 성형외과는 신고사항이 거의 없어 여유가 있는 만큼 일단 관망중”이라며 “환자의 비밀보호가 중대한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성형외과도 회원들의 혼돈이 없도록 의협에서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류장훈 기자(ppvge@medif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