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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대한내과의사회, '묶음별 수가' 도입에 깊은 우려 표명

 대한내과의사회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묶음별 수가' 도입과 관련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묶음별 수가' 제도가 일차 의료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정부의 논리에 대해 그 취지에는 일부 공감할 수 있겠으나, 그 방식과 세부 내용이 작금의 의료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히 반대한다.

 첫째, '묶음별 수가'는 환자 맞춤형 치료를 저해한다.

 의료는 환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와 상황에 맞춰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묶음별 수가' 제도는 환자의 진료 과정에서 상담, 진단, 치료 등의 필요성을 일률적인 패키지로 묶어 수가를 정하기 때문에, 의료진이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을 심각하게 제한한다. 이는 의료의 질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이 제도는 분만 인프라와 산부인과에 초토화를 불러 일으킨 포괄수과제(DRG)에 다름 없는 사실상 '진료비 세트 할인제도'에 불과하며, 적정 수가 보상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일차의료의 질 향상과 무관할 것으로 오히려 의료 현장에서 환자 및 의료진의 만족도를 더욱 떨어뜨릴 수 있다. 환자와의 충분한 소통을 통해 치료 계획을 세우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묶음별 수가' 제도는 이를 간과하여 환자와 의료진 간 신뢰를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일차 의료기관의 과중한 진료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미 일차 의료기관은 고령화 사회와 만성질환 증가로 인해 환자별 진료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75세 이상 고령자 진료에는 소통과 관리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나 '묶음별 수가' 제도가 도입되면, 의료진은 진료 건수를 늘리고 패키지에 포함된 치료 항목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의료의 질적 향상보다는 양적 성과를 우선시하는 구조로 변질될 위험이 크며, 환자의 건강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료진은 환자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충분히 고려할 시간이 부족해질 것이며, 이는 환자 안전에도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것이다.

 셋째, 의료기관의 재정적 압박을 강화한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는 각 의료 행위에 대해 정해진 수가가 책정되어 병원의 수입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그러나 '묶음별 수가'는 진료 항목을 패키지 형태로 묶어 수가를 정하기 때문에, 복잡한 치료나 추가적인 진료가 필요한 경우에도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여지가 크다. 이는 일차 의료기관에 재정적 압박을 가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의료기관이 고비용 환자를 기피하거나 최소한의 치료만 제공하려는 경향을 촉진할 수 있어, 의료 서비스의 질이 심각하게 저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정부가 과거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 설익은 의료정책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진행된 사례를 볼 때, 이번 제도 또한 의료 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의료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본 제도는 일차 의료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의료 서비스의 심각한 질적 저하와 의료기관의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특히 정책 추진 방식마저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일차 의료기관의 현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의료계와의 협력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 것이다. 

 대한내과의사회는 이번 ‘묶음 수가제’ 정책에 대해 반드시 원점에서 재논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정부는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환자들에게 더욱 나은 진료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2025년 1월 16일
 대한내과의사회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