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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학회

"무엇을 위한 아름다움·건강인가" 의약품 광고 속 일제 강점기

더 예쁘고, 더 강인한 신체를 요구하는 신문 광고 이면의 의도와 심리
‘의료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바라본 식민지 의약품 광고와 신체정치의 심리학’ 세미나


100여 년 전 과거인 일제 강점기 의약품 광고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발견하고, 두 시대를 함께 읽는 의미있는 담론이 펼쳐졌다. 

이화커뮤니케이션-미디어 연구소와 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가 공동 개최한 ‘의료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바라본 식민지 의약품 광고와 신체정치의 심리학’ 세미나가 3일 이대서울병원에서 진행됐다. 기획과 사회는 이화여자대학교 유승철 교수가 맡았다.

발제를 맡은 청암대학교 최규진 교수는 ‘식민지 약 광고와 신체정치’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최 교수는 최근 출간된 ‘이 약 한 번 잡숴봐’라는 책에서 ‘약 광고로 들춰 본 일제강점기 생활문화사’라는 문제의식을 다양한 시각 자료를 통해 독창적으로 전달했다.

최규진 교수는 본인이 오랜 시간을 들여 발췌하고 정리한 다양한 신문 속 이미지 자료들을 소개했다. 그는 “문자로 기록된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며 “하나의 사진 안에도 수없이 많은 정보와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했다.

일제 강점기는 의약품 광고가 신문 광고 상품의 58.5%를 차지했으며, 의약업계가 근대 최대의 광고주였다. 광고에서 다뤄진 약품은 성병치료제, 자양강장제, 소화기 순으로 많았다. 현대사회의 3대 질병이라고 할 수 있는 폐결핵, 신경쇠약, 화류병과 관련된 광고들도 등장했다.

일제 강점기는 모던 신체관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했다. 쌍커풀 수술, 성형 수술, 코높임 수술 등의 광고가 등장했다. 반복되는 광고로 미인의 탄생을 강요했다. 조선 시대에는 공식적으로 금기시되던 나체의 여성의 그림과 해부학적으로 묘사된 신체가 등장한 광고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후 많은 사람들을 군인과 노동자로 끌고 갔는데,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수많은 질병들이 생겼다. ‘병 주고 약 주고’라는 말 그대로 신문에서는 이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약 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또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로 남성들에게 강인한 체력을 갖도록 광고했다. 

최규진 교수는 “우리가 쓰고 있는 ‘체력은 국력이다’, ‘인적 자원화’ 같은 말들이 일제 강점기 때로부터 왔으니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며 “자본주의와 광고의 어두운 면을 바로 알고,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때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서원대학교 김현정 교수는 “당시 일제가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회사는 의약품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서 내보낸 광고들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는 오늘날에는 공익 광고를 통해 보완해야 할 지점이며, 의료커뮤니케이션이 추구할 방향도 상호 소통을 통한 상생과 발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적십자병원 이현석 교수는 “당시에는 전문 의약품, 일반 의약품 구분 없이 광고할 수 있었다는 점이 눈에 띄었고, 1930년대 광고에 나체에 가까운 여성의 신체가 등장한 것은 그 무렵 베를린올림픽 광고의 영향도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해은 교수는 “일제 강점기 때 현대의 미인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른 이미지, 쌍커풀, 8등신 몸매 등 이상적 이미지가 제시된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새로운 사실들과 생각해볼 내용들이 질의문답 시간을 통해 이어졌다. 

이번 세미나를 공동으로 개최한 헬스커뮤니케이션 학회 정의철 교수는 “인문학적 사고와 함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연대하는 이런 의미있는 자리가 더욱 많아질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