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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③]코로나 시대에 보건의료와 제약산업이 나아갈 방향

조현주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의 확산과 이에 따른 방역의 일상화는 우리의 생활을 상상할 수 없게 바꾸어 놓았다. 주말에 마음 내키면 다녀올 수 있었던 정도로 대중화되었던 해외 여행이 여행사의 줄도산을 목전에 둘 정도로 우리의 곁에서 멀리 떠나 버렸다. 출근길에 실수로 마스크를 안쓰고 나오면 깨닫는 순간부터 마치 도둑질을 하러 눈치 보며 다니는 사람처럼 주변을 살피며 황급히 약국이나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게 된다. 따갑게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총을 피할 수는 없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보다 월등한 적응력을 자랑하며 이제는 마스크 없는 세상은 꿈도 꾸지 않는다. 아이들은 마스크 여부와는 상관없이 마음껏 뛰놀다 뒤늦게 호흡곤란을 부모에게 호소하기도 한다. 길가는 어른들이 간혹 마스크를 안 쓰면 범죄자를 본 양 화들짝 놀라 쳐다보거나 황급히 그 사람을 피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의료계의 일상도 바꾸어 놓았다. 사실 의료인들은 마스크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독감이나 기타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즌이면 마스크를 끼고 진료를 하는 의료인들이 간혹 있었다. 의료인들은 언제나 감염에 노출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독감이 유행해도 마스크를 잘 끼고 손만 잘 씻으면 어느 정도는 감염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의료인은 많지 않았다. 환자를 감염원으로 여기는 행위처럼 보여 환자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마스크 끼지 않는 의료인은 환자를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정말 세상이 크게 변하였다. 

여러 측면의 큰 변화가 있었지만, 필자가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비대면 진료의 허용이다. 비대면 진료는 사실 굉장히 해묵은 논쟁거리이다. 원격 진료라는 단어로 2002년부터 논의되어 오던 주제이며, 의료계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를 결사 반대하고 있다. 2020년 의사 파업 4가지 이유 중 당당히 3번째 이유로 꼽히고 있을 정도이다.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원격의료가 가능해졌지만, 이때의 원격 의료는 의료인 간의 협진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환자 의사간 진료를 논한 것이 아니었다. 18대 국회 이후 매번 의사와 환자간의 원격의료를 허용하자는 법안이 제출되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회기를 마치기 일쑤였다. 원격의료는 항상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의료영리화 촉진, 의료의 질 저하 우려 등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들 때문에 실현되기 난망한 주제로 치부되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이 어려움을 한번에 해결하였다. 위에 열거한 근원적이고 중대한 우려점 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훨씬 더 국민들에게 파급력이 컸기 때문이다. 

감염성 질환이 유행하는 시기에 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시력 검사를 하러 들른 안과에서 양 옆의 유행성 결막염 환자의 빨간 눈을 봤을 때 드는 찝찝함, 배가 아픈 아이를 데리고 간 소아과에서 사방에서 콜록대며 기침을 하고 연거푸 재채기를 하며 비말을 공기 중으로 뿌리는 다른 집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우리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드는 후회에 대해. 사실 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열나는 아이 하나가 유치원 반 전체를 감염시킬 때 드는 그 분노는 아이를 기르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서구 권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무조건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감염원이 되는 아이를 여러 다른 아이들 사이에 두는 것이 이기적인 행동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프면 출근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이 같은 상식이 통용이 되지를 않았다. 약을 처방받고 싶으면 어떤 이유가 있어도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야 했다. 전화로 증상을 호소하거나, 화상을 통해 상담하거나, 데이터 전송을 통한 진료 기록 송부는 대한민국에서 불법으로 의율되어 해마다 여러 건씩 처벌 대상이 되었다. 2013년 대법원 2010도1388 사건에서 "의료법상 '직접진찰' 의미는 환자와 '직접대면' 요구 아니다" 라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복지부는 지속적으로 직접진찰은 대면 진료만을 뜻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의료계도 이와 같은 주장을 견지해 왔다. 

며칠 전 필자의 친구는 목이 붓고 미열이 나 동네의 이비인후과에 방문을 했다. 당연히 마스크를 쓰고 진료실에 앉았고, 마찬가지로 마스크를 쓴 의사가 환자를 맞이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에게 아픈 목구멍을 보이려던 필자의 친구는 순간 의사에게 제지를 당하였다. 코로나 감염의 우려가 있으니 마스크를 벗지 마시라. 말로만 증상을 설명하시면 된다 라고 의사는 친절히 안내를 해 주었다고 한다. 당황한 환자는 그럼 어떤 병인 줄 알고 약을 주시는 거냐고 묻자 의사는 일반적인 증상에 쓰는 약을 주겠다고 했고, 그 약을 먹고 약이 잘 맞지 않아 증상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시 와서 진료를 받냐고 되묻는 친구에게 전문의 선생님은 그때는 보건소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시라는 말로 진료를 마무리하셨다고 한다. 직접 진료를 철저히 고수하시는 의사선생님에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거스를 수 없는 두려운 존재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하지만 다행히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예방을 위해 전향적인 방향 전환을 이루어 내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이미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원격진료도 가능하다는 말을 하며 확대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지만 여러 반대에 부딪쳐 진행이 지지부진했던 차에 전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공포가 정부로 하여금 비대면 진료 허용이라는 큰 한발을 내딛게 한 것이다. 

다시 마스크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미 언급했듯, 과거에는 의사가 혹은 간호사가 마스크를 쓰고 환자를 보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 일이었다.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간이 지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국면에 들어선다 해도 많은 의료인들은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비단 의료계뿐만 아니라 많은 서비스업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것이 보편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더 이상 길에서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이를 보고 혹시 성형수술을 한 건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알코올 소독제로 손을 닦는다고 해서 유난스러운 사람이라 보는 이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비대면 진료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국면이 진정되면 비대면 진료는 다시 불법으로 전환이 될까? 어떤 감염병 환자라도 처방을 받기 위해서는 의사 선생님을 코앞에서 마주해야만 정상적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정말로 다시 돌아와야 옳은 것일까? 

필자는 이제 비대면 진료가 세상의 새로운 모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의료계와 정부는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 방향에서 어떻게 하면 국민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하는 것이 의료인의 의무이고 정부의 책임 있는 모습일 것이다.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분야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비대면 진료가 확산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대면이 필요한 부분도 훨씬 더 크게 존재할 것이다. 어떤 방식이 더 효율적인 진료일 것이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인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국민 양자가 모두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는 의사가 환자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