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김용익)은 지난 7월 16일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자금운용을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자금운용위원회’를 구성하고 ‘자금운용지침’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건강보험 중장기 자금목표 수익률 상향, 기존의 확정금리형과 실적배당형 등 투자상품별 자금운용에서 채권·주식형펀드·대체투자 등의 자산군별 투자방식으로 확대, 투자허용범위 변경’ 등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은 앞으로 부동산투자나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수 있으며 위험성이 높은 헤지펀드, 사모펀드 등에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공단 측은 수익률 향상을 주장하지만 그만큼 손실이 발생할 위험도 커진다.
이에 대해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14일 국정감사에서 공단이 임의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자금은 기금이 아니라 국회에 보고되지 않으며 법적으로 공시의무도 없다. 현재 투자전략 변경도 지침 개정만으로 이뤄졌다. 이중삼중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된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달리 건강보험은 별다른 장치가 없어 공단이 자의적으로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윤소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연간자금운용계획 원안에서 기대수익률은 건강보험의 경우 1.96%(단기자금 1.87%, 중장기 자금 2.0%), 장기요양보험은 1.86%(단기자금 1.85%, 중장기자금 1.89%)이었다. 그런데 변경된 안에서 기대수익률은 건강보험의 경우 2.18%(단기자금 1.87%, 중장기 자금 2.33%)로 상향조정됐다.
이는 중장기 자금 기대수익률 변경에 따른 것인데 그전까지 건강보험 중장기 자금은 확정금리형(정기예금 1년~2년), 실적배당형(특정금전신탁, 채권형펀드, 절대수익추구형) 투자로 운용됐다. 중장기투자라 해도 자산손실의 위험이 적은 채권자산군에 투자하는데 그쳤고, 기대수익율은 1.95%~2.20%였다. 그런데 변경된 안에 따르면 중장기 자금 투자가능 상품군에 주식과 대체투자가 추가됐고, 주식은 기대수익률 5.99%, 대체투자 4.33%로 기존 기대수익률에 비하여 대폭 상승됐다.
문제는 기대수익률과 함께 위험도도 상승한다는데 있다. 원안에서 표준편차는 중장기 자금의 경우 0.31%이었는데, 변경 안에서는 0.50%로 대폭 상승한다. 이는 주식투자 표준편차 12.13%, 대체투자 6.05%가 새로 추가된데 기인한다. 표준편차는 기대수익률의 오차범위로, 자산군의 위험은 수익률의 변동성인 표준편차로 표시한다. 즉, 주식투자는 기대 수익율이 5.99%로 높지만, 표준편차가 12.13%로 손실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체투자도 마찬가지다. 수익률 4.33%, 표준편차 6.05%로 역시 손실의 가능성이 있다.
변경안에 따른 주식 투자 비중은 2%, 대체투자의 비중은 4%이지만, 허용범위 최대치를 반영하면 4%, 8%까지 증가한다. 이는 중장기 투자가능 자금 14조원 중 주식에 4100억~8200억 원, 대체투자 8200억~1조6400억 원이 투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단 측은 ‘현재의 투자전략과 자금운용방향만으로는 더 이상 좋은 실적을 기대할 수 없게 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공공성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수익성을 함께 추구’하겠다고 했다.
윤 의원은 “하지만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걱정이라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늘리는 것이 우선”이라며 “법은 건보 재정의 20%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2019년 예산상의 정부 지원율은 13.6%에 그쳤다. 국고지원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위험 투자 확대를 통해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2018년 기준 준비금 적립액은 20조 6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2010년 9592억원에서 대폭 증가한 것”이라며 “과도한 준비금 적립이 투자를 위한 자본금 마련을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은 1년 단위로 단기 운용되는 사회보험이며 단기유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금을 적립한다. 장기적립을 목적으로 하며 일정한 수익을 창출해 자산규모를 키워가는 국민연금 등 연기금과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윤 의원의 설명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은 건강보험 준비금을 ‘부족한 보험급여 비용에 충당’하거나 ‘지출할 현금이 부족할 때’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용도를 정해놓고 있다. 제14조에 따라 공단이 ‘자산의 관리·운영 및 증식사업’을 관장할 뿐이다.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태에서 건강보험 자금은 정관 제37조 제1항제6호, 제2항 제12호, 자금운용규칙에 따라 보수적으로 운용돼 왔다.
이런 상황을 악용해 이른바 ‘건강보험 투자 다변화 정책’도 자금운용규칙 개정만으로 이뤄졌다. 2017년 11월 6일 기존 ‘안정성·유동성 바탕 위에 수익성을 고려해 자금을 운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안정성·유동성 및 수익성을 고려해 자금을 운용해야 한다’로 개정해 수익성 추구의 근거를 강화했다.
또 자금운용성과평가를 하도록 했고, 이를 위해 성과평가위원회를 두도록 했으며 자금운용계획 상의 기준수익률, 예상수익률을 목표 수익률로 변경했다. 자체운용을 원칙으로 하며 운용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만 외부위탁을 하도록 했던 것을 ‘직접운용’과 위탁운용으로 변경하고 운용기간이 1년 이상인 경우만이 아니라 ‘운용을 통해 실적대로 수익금을 배당하는 금융상품’에 대해서도 위탁운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올해 1월 25일에는 “공단은 운용상품과 관련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 증대 및 사회책임투자를 위해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의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윤 의원은 “건강보험 준비금으로 위험성이 높은 분야에 투자해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시도 자체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규칙개정으로 추진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을 통한 근거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며 “4대 사회보험 중 건강보험만이 유일하게 기금 외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기금으로 운영한다면 재정당국과 국회의 통제를 받는다. 하지만 건강보험은 자체 예산이기에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이 보건복지부장관의 승인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위험투자는 어불성설”이라며 “특히 건강보험 준비금이 바이오헬스 분야 민간 기업 육성에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단기자금인 건강보험 준비금으로 자산 증식을 위한 투자를 하는 것은 건강보험 성격에 맞지 않는다. 수익률을 높여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필요한 재원을 보충하려는 것도 적절치 않다. 만약 의료산업 육성 자금으로 사용하려는 의도라면 이는 더욱 가당치 않은 일”이라며 “건강보험의 투자 다변화라는 이름으로 투기적 투자에 준비금을 사용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건강보험공단은 규칙 변경을 통한 자의적 위험투자를 중단하고, 국회와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