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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자수첩> 메르스 사태 계기로 한국 병원문화 반드시 바꿔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국내에 유입되어 급속도로 전파됨에 따라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첫 번째 환자가 확진된 지난달 20일 이후 4주 만에 격리자가 1만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도 20명이나 발생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격리자와 사망자가 늘고 있어 장기전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번 메르스 사태는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중심에 서지 못한 정부의 미흡한 초동대처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다인실 위주의 병실 구조, 시장바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복잡한 응급실 과밀화 현상,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로 인한 닥터쇼핑, 별다른 제재 없이 이뤄지는 다수 방문객들의 병문안 등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 특유의 의료 문화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을 하고 수많은 지인들이 별다른 제재도 없이 병원을 방문해 환자를 병문안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게 우리나라 병원 입원실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특히 다인실 위주로 병실이 운영되기 때문에 보호자에 병문안객들까지 합치면 병원 상주 인원은 환자 수의 배로 늘어난다. 격리조치 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병실 환경에서 병원 감염 위험은 더 커지는 것이다. 심지어 중환자실도 격리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한시적으로 면회까지 허용된다. 마치 시장바닥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과밀화된 응급실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매우 힘든 통제 불능 병원 문화로 우리나라 병원들이 감염관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리나라 병원들에도 당연히 외부인 출입통제 등의 내용을 담은 병문안에 대한 매뉴얼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유명무실한 상황으로 그동안 쉬쉬했던 문제들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병원들의 감염관리 능력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과 10년 전보다도 훨씬 더 발전해 손씻기 권고안, 환경소독 등 각종 관리기준도 과거보다 매우 까다로워져서 현장의 의료인들도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특히 지난 2010년 우리나라에도 의료기관 인증평가제도가 도입된 이후 의료기관들의 의료 질에 대한 기준은 더욱 엄격해지고 기대 수준 역시 매우 높아졌다. 매번 인증평가 때마다 병원 관계자들은 엄격한 평가기준을 통과하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병원의 감염관리 상태가 뛰어나더라도 지금처럼 외부인이 아무런 통제 없이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메르스 최대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도 지난해 11월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실시한 인증평가 결과 ‘감염관리’ 항목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어렵사리 감염관리 인증을 받아도 병원감염관리 수준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 많은 의료기관들이 인증 기간에만 모든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 부어 간신히 조건을 충족할 뿐 인증이 끝나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손씻기 권고안 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메르스가 유례없이 가장 빠르게 전파되고 있는 이유가 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것은 이 병원의 감염관리 능력이 다른 병원보다 떨어져서가 아니다.

병실에 다녀 간 사람이 얼마나 되고 누구인지조차 전혀 알 수 없는 현재의 입원 병실 운영체계에서 어떻게 완벽한 감염방지대책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잘못된 병문안 문화와 입원관리시스템, 그리고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반드시 손질해야 할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이번 메르스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어쩌면 이번 메르스 사태는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주춧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