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교수는 트라우마 전문가입니까? 박사입니까? 왜 학생상담기록을 제출하지 않았습니까? 국회에서 위증하면 안됩니다.”
현직 국회의원이 세월호 침몰사고 심리치료를 담당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생존자 학생들의 민감한 상담내역이 담긴 자료일체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쳐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세월호 침몰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정진후 의원(비례대표, 정의당 특위의원)은 보건복지부 기관보고 차례가 오자 문형표 장관과 함께 배석한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에게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치료 자료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호통을 쳤다.
정 의원은 정 교수에게 “학생상담일지 원본, 상담자현황, 상담대장, 상담누적실적, 고위험군 명단, 심리검사척도 개인별결과 및 내용, 개인정보보호서약서 등 17개 항목을 약속대로 5월 28일까지 단원고와 교육청, 교육부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당황한 정운선 교수는 “사실과 다르다. 직원들이 요구받은대로 자료를 성실히 제출했다”고 답했다.
이외에도 정진후 의원이 제출을 요구한 항목은 학부모교육자료, 학부모교육등록부, 교육실시현황, 투입인력전체규모, 단원고 활동내용일지, 초반투입예술치료계획서, 학부모 및 학생상담동의서, 심리검사척도 개인별 결과 프로필 등 총 17개에 달한다.
모두 환자의 민감한 환자정보로서 의사라면 금과옥조처럼 비밀을 지켜야 할 것들이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강령’도 의사의 비밀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의료법에도 ‘비밀누설 금지’조항이 있어 의료인이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물론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상 기관인 국회의원도 국정조사 시 자료제출을 폭넓게 요구할 수 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대한 법률’에 따르면 자료제출 등의 요구를 받은 자 또는 기관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서 특별히 규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이에 응하고 위원회의 검증 기타의 활동에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단원고 학생들의 정신과적 심리치료 자료는 일반적인 자료와 달라 자칫 어린학생들에게 큰 심리적 부담과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의사에게도 엄연히 환자의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법률상 의무가 있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인은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 특별히 규정된 경우 외에는 의료, 조산 또는 간호를 하면서 알게 된 다른 사람의 비밀을 발표하거나 누설하지 못한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149조(업무상비밀과 증언거부)에 따르면 의사나 변호사 등은 업무상 위탁을 받은 관계로 알게 된 사실로서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것은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단, 본인의 승낙이 있거나 중대한 공익상 필요있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
이러한 점에서 환자의 정보를 국회나 정부에 제출하는 것은 법적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자원봉사자로 나서 단원고 학생들의 심리치료를 담당했던 한 정신과 의사는 “심리치료자들은 내담자의 비밀유지를 생명처럼 여긴다. 그런 정신과 의사에게 환자의 정보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죽을 죄를 진 것처럼 야단을 치는 국회의원의 모습에 큰 실망감을 느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