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서도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 곳은 세계 어느 나라도 없다”
“돈 아까워 법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데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찬성할 의사가 누가 있겠는가?”
“자존심 문제다! 의료전문가인 의사들이 비전문가에게 평가 받고 감정 받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한때 시행되면 소송보다는 조정을 통해 의사·환자의 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와 조정시 의사가 참여해 의료사고에 대해 객관적이고 왜곡되지 않게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됐다고 기대됐던 의료분쟁조정법이 의료인에게 족쇄를 채우는 악법으로 등장하면서 전 의료계를 분노케 하면서 “전면 거부”란 심각한 국면까지 맞게 했다.
전면 거부운동은 대한산부인과학회와 산부인과개원의협의회를 선두로 대한성형외과의사회와 대한이비인후과개원의사회도 생존권 수호차원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을 불참하겠다고 나서 이 문제가 비단 산부인과 만의 국한된 사안이 아님을 확인 시켰다. 대한산부인과학회와 대한분만병원협회는 의료분쟁조정법의 문제점을 대내외에 알리는 ‘의료분쟁조정법 전면 거부 선포식’을 열고, 독소조항 개정 없이는 의료분쟁조정절차에 참여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특히 산부인과학회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을 막기 위해 복지부와 규제개혁위원회, 총리실 신문고 등에 진정서를 제출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8일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출범했으며, 의협 37대 집행부 출범준비위원회는 전국 신임 시도의사회장들과 긴급 연속회의를 소집, 의료분쟁조정법의 전면 거부를 결의하고 위원회 등의 구성에 회원들의 참여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어 출범준비위는 지난 19일 우선 시급한 조치로 “분쟁조정중재원에서 의료분쟁조정법(제47조 2항)에 따라 2012년 6월부터 건강보험공단에서 각 병의원에 지급해야 하는 요양급여비용에서 대불 부담금을 강제로 징수할 것이 예상된다”며 우선적으로 ‘손해배상 대불금 재원 징수금지 가처분 신청’부터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병행해 의협을 비롯한 일부 학회와 의사단체들은 헌법소원까지 들어갈 계획으로 있어 비록 의료분쟁조정법이 시행에 들어 갔지만 의료계의 극한 전면 거부운동에 막혀 실효를 걷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료계가 이처럼 극한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이유는 작년 제정된 모법과 지난 3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시행령에서 의료계가 그 동안 누누이 지적해 왔던 독소조항 중 의료기관의 무과실 부담금을 종래 50%에서 30%로 조정한 외에는 쟁점의 골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데 있다.
현재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되는 주요 규정은 ▲무과실에 대한 의료인 분담 ▲의사와 환자간 조정의 비형평성 ▲의료분쟁중재원 이사의 불균형 구조 ▲비전문가의 전문 의료감정 ▲강제 출석과 현지 행정조사 ▲대불금 제도 ▲환자에게만 부여된 조정절차 중단권 등을 들고 있다.
특히 의료계는 무과실 보상기금의 분담과 의료분쟁조정원의 비효율적인 구성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지적하고 개선 없이는 제도에 동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히고 있다.
당초 정부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개설자와 정부가 각각 절반씩 부담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의료계에서는 전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며 반발했고 이에 정부는 개설자 부담을 30%로 낮춰 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재원은 원칙적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산부인과의 경우 병의원에 재원분담 의무를 부과할 경우 저출산 등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는 의료기관의 부담이 더욱 늘어나 분만실이 없어지거나, 전공의 기피 현상을 심화시키는 등 보건의료 체계가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정부에서 90%를 담당한다고 해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더욱 확고히 밝히고 있다.
의료에 문외한인 비전문가가 의료사고 여부를 감정하도록 하는 의료분쟁조정원의 구성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는데 구성에서 의료인의 비율이 비의료인에 비해 지나치게 낮아 신뢰성을 떨어뜨릴 뿐만아니라 환자주장만을 보호하는 파행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사고인 만큼 해당과의 의료인 중심으로 평가가 돼야 함에도 현재 제도에서는 비전문가들의 감정결정에 전문가들이 오히려 수용해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특히 성형외과의 경우 진료의 특성상 의료사고보다는 수술 결과에 대한 환자의 불만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환자의 주관적인 불만족은 의료 분쟁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의료사고감정단에 영장 없이 행정조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 의료기관에 대한 현장조사, 수색, 자료복사 등을 할 수 있어 의료사고감정단이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 될 수 있다"며 "헌법에도 위배되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분쟁조정을 신청한 환자는 언제든지 조정을 중단할 수 있지만 의사는 조정을 중단할 경우 벌금형 4000만 원에 처해져 불공평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의료계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심리를 통해 손해배상액 산정 및 조정결정, 중재판정을 하고, 의료중재원은 대불금 지급신청를 접수후 30일 이내 심사를 결정하고, 심사결정이 있는 날로부터 14일이내 지급하도록 한 규정과 의료기관으로부터 손해배상금 지급이 지체될 경우 의료중재원에서 우선 환자에게 지급하고, 추후 의료기관에 구상하는 손해배상금 대불제도가 대표적 독소조항이라고 강력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시행령에서는 지난 8일부터 시행에 들어 가도록 했고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와 형사처벌특례제도는 2013년 4월부터 시행토록 했다.
이밖에도 환자 및 보호자 난동의 경우에 대한 제제 규정이 신설돼야 한다는 의료계의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 되었지만 묵살된 상태로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처럼 의료분쟁조정법은 독소조항이 그대로 존속된채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진작에 막았어야 했지만, 귀중한 시기를 모두 놓친 셈이다. 의협 새 집행부가 시급히 대처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를 맞게 된 안타까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새 집행부의 대처에 전 의료계가 촉각을 세우며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