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 방침과 리베이트 수사결과 발표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 다시 입증됐다.
정부의 ‘8.12 약가인하’ 이후 최근 연이어 리베이트 수사 결과가 발표되자 업계 관계자들은 약가인하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부의 방식에 할 말이 없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먼저, 부산경찰청이 지난 31일 의사를 포함한 총 51명을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부산경찰청 수사과에 따르면 간부와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약품도매상 대표 11명, 이들로부터 지속적인 의약품 처방을 대가로 돈을 받은 의사 등 의료인 14명, 제약회사 영업사원 20명 등이 의약품 납품 비리 단속 결과 혐의가 입증 됐다.
특히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제약사에는 동아제약, 대웅제약, 일동제약, 국제약품 등 국내 상위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리베이트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인 2일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530억대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다국적 제약사 5곳과 국내제약사 1곳에 과징금 약 110억원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가 적발한 업체는 ▲한국얀센 ▲한국노바티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바이엘코리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CJ제일제당이다.
이렇듯 리베이트 발표가 연달아 이어지자 업계는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혹하다는 평가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인하와 같이 정부가 제약계를 압박하는 정책을 내놓는 시기 전후로 리베이트 결과를 발표해 업계의 입을 막아버리는 방식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도 다들 예상은 했다. 그래도 불과 이틀간격으로 터지니까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R&D에 투자는 하지 않고 의사들에게 리베이트 주느라 판관비만 올렸다는 정부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합리화 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전 리베이트 수사가 국내 상위사를 중점적으로 이뤄졌던 것과 달리 이번 결과를 보면, 상위사는 물론 중소형제약사, 다국적 제약사, 도매업체에 이르기까지 약업계 전반에 걸쳐 수사망이 확대됐다는 점에도 그 피해가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다른 제약사 관계자는 “약가인하 발표 후 다국적사 쪽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왔다. 제약협회와 KRPIA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얘기도 일부에서 나왔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다들 할 말이 없어졌다”며 “공정위 발표가 되자마자 다국적사를 두고 ‘깨끗한 척 하고 뒤로는 리베이트를 했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돼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더구나 제약협회가 8.12 약가제도 개편에 반발하기 위한 8만 제약인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다음날부터 리베이트 조사결과가 연이어 터졌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도 묘한 상황이 됐다는 분위기다. 만약 정부가 서명운동을 겨냥했다면 주무부서로써는 너무 가혹한 행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통해 했다.
제약협회는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8만 제약인 궐기대회를 준비하며 약가인하 저지를 위해 강경하게 나갈 방침이었다.
공정위 발표가 있던 날인 2일 직무별 간담회를 열고 트위터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약가인하 저지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로 의견을 모으는 등 의욕 넘치는 계획을 준비했으나 자칫 흐지부지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모든 것이 좋지 않다. 대외적으로 보면 리베이트 발표를 통해 정부의 약가인하 방침이 설득력을 얻었는데다 추석이 다가오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는 업계가 결속되기 어렵다”며 “이러다 목표치도 해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면 정말 최악”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리베이트 수사결과와 관계없이 제약협회는 물론 회원사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느냐가 업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