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莊子)’ 변무편(騈拇篇)에 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볼까 합니다.
사내종과 계집종 둘이 함께 양을 지키고 있다가 둘 다 그만 양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사내종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한편 계집종은 주사위를 가지고 놀다가 그만 양을 잃었노라고 했습니다.
잘 아시듯이 ‘독서망양(讀書亡羊)’이라는 사자성어에 얽힌 일화입니다. 주사위 놀이를 하다 양을 잃은 계집종이야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책을 읽다가 양을 잃은 사내종이라면 학문을 중시하는 동양의 사회 분위기에서 용서될 법도 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지만, 양을 잃었다는 결과는 똑같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양을 돌보는 일이 그들의 본분이기에, 책을 읽다 양을 잃은 사내종이 용서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최근 의료계의 어지러운 상황과 맞물려 우리 의사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성현의 가르침이 아닐까 합니다. 꼬인 실타래처럼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킨 복잡한 현안은 의사사회를 낙망케 하고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이에 휘둘려 의사의 본분을 잊어서도 안되고, 다른 데 눈길만 돌리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의료정책이 조변석개(朝變夕改)하고 의료환경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의사들이라는 사실이요, 일선에서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의사회 제6회 학술대회 개회사
이제 막 가을로 들어서는 이때, 참으로 배움에 정진하기 더없이 좋은 시절입니다.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데 필요한 최신지견을 습득하는 것도 좋고, 발병빈도가 높은 질환에 대한 연구결과를 천착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법적 문제들과 관련된 지식을 배워보는 것도 유용하고, 건강보험 적용에 필요한 현실적인 정보를 업데이트 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의료 일선에 있는 우리들이 보다 나은 환자진료, 보다 효과적인 의료기관 경영을 해 나가려면 주경야독(晝耕夜讀)의 자세로 배움에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책을 읽다 양을 잃는 독서망양이 아니라 책속에서 스스로의 본분을 찾으려는 독서탐양(讀書探洋)의 자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라 했던가요? 우리들은 모두 함께 가르치고 배울 역량이 있다고 자부합니다. 서로에게 스승이 되고, 자극제가 되는 의사사회가 되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