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말정산간소화 정책에 따른 의료기관의 소득공제 자료제출에 대해 대한의사협회가 연석회의를 통해 ‘조건부 제출’ 입장을 결정한 가운데, 개원가에서는 이번 회의결과에 대한 해석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 그동안 문제시되던 사안을 자료제출에 대한 전제조건으로 달기는 했지만, 정작 이번 입장 표명이 회원들의 자료제출 여부 결정을 제시하는 행동강령으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서는 혼선을 빚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일선 개원가에서는 자료제출기한이 다가옴에 따라 일부 자료를 취합, 제출하는 회원들도 늘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의협은 지난 28일 시도회장단, 개원의협의회장단, 조세대책위원회, 상임이사진 등이 참석한 비상 연석확대회의를 통해 국세청이 *연말정산조회과정에서 발생한 환자 개인정보유출로 인한 법적 책임을 지고 *고의성이 없는 한 자료누락, 착오입력에 대한 책임 추궁을 묻지 않으며 *올해 준비부족과 시간제약을 감안해, 의료계가 가능한 범위에서 급여·비급여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협조하면 된다는 공식발표를 하면 자료제출에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을 수렴한 바 있다.
일단 이날 회의에 참석했던 개원의협의회장들은 이번 회의결과를 “회원들에게 자료제출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각과개원의협의회 윤해영 회장은 “이번 비상대책회의 결과는 회원들에게 자료 제출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분명히 하고 “환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곧 의권이기 때문”이라고 명분을 제시했다.
대한일반과개원의협의회 김길준 회장은 “회의결과에 대해 ‘조건부’라는 해석이 있지만 조건부보다는 유보라고 보는 것이 맞다”며 “급여든 비급여든 회원들이 자료제출을 유보하라는 의미이며, 이에 따라 인천시의사회의 경우 회원들에게 유보한다는 문자공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협에서는 회원들의 자료제출 여부 결정에 대해 “이번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회원 각자가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밝혀 다소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이번 연석확대회의에서는 시도의사회, 개원의협의회 등 의견을 수렴한 결과 만장일치로 의결해 입장을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앞으로도 의협에서 국세청과 의사소통 채널을 유지해 의료계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회원들의 자료제출에 대해서는 “이번 회의 결과는 회원들의 판단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자료를 제출하느냐 마느냐는 회원 각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결과를 통한 공지에 대해 서울의 한 개원의는 “국세청에 조건을 내걸기는 했지만 결국 제출하란 소리가 아니냐”며 “회원들은 자료 미제출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절실한 문제인 만큼 의협에서 나서서 해결해 줘야 할 문제”라고 의협의 결단을 호소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의협이 ‘자료제출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밝히기는 했지만,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가 입장을 번복해 그동안 혼선이 많았다”며 “그 와중에 세무서 직원이 다녀가고 대충이라도 자료를 제출하라는 소리에 자료를 제출한 동료들도 더러 있다”고 밝혔다.
개원가의 이 같은 목소리는 의협이 자료제출에 대한 유보 입장을 결정, 통보하기는 했지만, 회원들이 단지 의협을 믿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원가에서는 의협 집행부가 연말정산간소화 정책 추진 초기부터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무리한 정책 강행에 대해 강력한 항의표명을 했어야 한다는 원망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외과개원의는 “정부에서 자료제출을 안했다는 이유로 세무조사를 한다는데 대해서는 공권력 횡포라는 말을 분명히 하고 표적 세무조사를 하는데 대해서는 집단행동을 할 것이라는 강력한 항의를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세무당국의 횡포에 부담을 느껴 자료를 제출하는 회원이 분명이 있을텐데 집행부의 책임있는 발언이 없어 불만”이라고 토로했다.
한 소아과개원의는 “모든 의사들이 탈세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가는 데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환자의 동의를 일정 시한에 정부가 얻지 못하면 의료계는 제출할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어야 한다”며 “초기대응을 잘 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이번 결정도 의협이 결단을 내려야 할 사항을 정부에 대해 정면돌파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연석회의에 참석했던 한 개원의협의회장은 “회원들이 자료를 내지 않은 데 대한 세무조사를 의협이 책임 지지는 못한다”며 “이번 자료제출에 대한 사안도 사실 연석회의에서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의협에서 했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개원의협의회장은 “결국 의협 집행부가 너무 소극적이고 겁이 많아서 이 같은 상황까지 온 것이 아니겠느냐”며 “책임지기 싫으니까 ‘유보’라고 하고 연석회의를 통해 책임을 나누려 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류장훈 기자(ppvge@medif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