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화가 빨라지며 국가 지원을 통한 가정호스피스 서비스와 임종 돌봄 지원 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국회 토론회서 제기됐다. 특히 최근 발의된 존엄사법안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법조계, 환자 등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안락사 허용보다 더 시급한 과제 “생애말기 돌봄 체계화”’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호스피스 제도의 발전 및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체계 마련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발제를 맡은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는 “서울에 입원 가능한 호스피스 전문기관은 15개 기관으로 260병상에 불과하다”며 “이마저도 공공병원들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되면서 7개 기관 105개 병상으로 축소됐다”며 미비한 인프라를 지적했다.
이 중 간병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3개 기관 50병상에 불과하다.
김 기획이사는 “환자의 77%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하는 국내 상황에서 의료기관 대부분에 임종실이 설치돼 있지 않아 간호사 처치실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며 “요양기관은 가족들 왕래 없이 지내다 임종 이후 가족들이 방문하는 형태로 이뤄진다”며 낮은 돌봄의 질을 꼬집었다.
이어 발제에 나선 국립경상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강정훈 교수는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에 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은 7월 27일부터 8월 5일까지 10일간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설문 결과 60.0%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시행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응답자 중 61.1%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어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 28.6%,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 26.7%,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 25.4% 순으로 나타났다.
의사조력자살 합법화의 필요성은 13.6%에 불과했고, 의사조력자살 법제화 논의 이전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확대를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은 58.3%에 달했다.
강 교수는 “환자가 질병에 시달려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고통스러워하니 자살을 도와주겠다는 대답과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죽지 말라는 대답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겠나”라며 조력존엄사를 비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조력존엄사 허용 법제화는 시기상조라며 의협은 강력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이사는 “조력존엄사 대상자에 해당하는 말기 환자라는 용어는 사전적, 사회적, 의학적 정의가 없는 용어”라며 “임종을 앞당기는 행위와 연명의료결정 중단은 다르다. 세계보건기구도 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다.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킬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석배 단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자살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라며 “의료비 때문에 가족이 연명의료중단을 요청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비 걱정 없이 연명의료 지속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논의의 진정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말기 환자에 대해 질 높은 생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국회와 정부가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입법”이라며 “의사조력자살은 말기 환자를 둔 가족 간 불신과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의사조력자살 입법화보다 안정적이고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환경 조성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주최자인 신현영 의원은 “안락사에 대한 국민 관심이 높아지는 반면, 국민의 생명권과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보장되고 있지 않다. 국가가 나서서 책임져야 한다”며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불릴 만큼 요양병원에 방치되는 존엄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임종 말기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고 내가 원하는 장소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매우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