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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43년째 공전’ 간호법 제정, 이유가 뭘까

가치·규정·행위자 충돌…전형적 딜레마 사례

간호계의 숙원인 단독 간호법 제정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정책학적으로 전형적인 딜레마 모형이 구축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가치충돌에 따른 대안의 분절성 문제, 규정충돌에 따른 이익의 상충성 문제, 간호계와 의료계 등 행위자의 대립 문제 등이 결합된 상태라는 설명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입법공백과 딜레마: 간호법 제정지연의 분석(김강현·김희정)’ 보고서가 실린 입법과 정책 12권 2호를 발간했다.


보건의료 환경변화에 따라 간호의 영역에 대해 전문적으로 규율하는 간호법 제정을 요구하는 사회적 아젠다는 꾸준히 형성되고 있지만 간호법은 1977년 대한간호사협회가 처음 추진한 이후 43년째 입법되지 못한 채 공전되고 있다.


보고서는 딜레마 이론(Dilemma Theory)을 적용해 간호법의 입법 논쟁을 중심으로 정부가 처해있는 가치충돌 딜레마의 본질을 분석했다.


딜레마는 상충되는 두 개의 가치와 대안이 주어진 선택상황이 동시에 나타나며, 그것들 간의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택이 곤란한 상황이다. 의사결정과정에 있어서 딜레마 상황이라 할 수 있는 조건은 ①두 개의 대안이 서로 충돌해야 하고, ②각 대안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충적인 가치가 존재해야 하며, ③각 대안을 지지하는 개인 혹은 집단 등 모든 행위자가 갈등상황에 놓여 있어야 한다.


간호법은 이 세가지 충돌이 모두 결합돼 있다.


가치충돌=우리나라의 의료 및 간호현실의 상황적 맥락이 변화함에 따라 제도적 환경이 과거와는 다른 조건을 형성하게 됐고 딜레마의 기본요건이 조성됐다. 타 직역 및 다른 나라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간호 관련 기본법(개별법)이 부재함으로 인해 이를 요구하는 입장과 거부하는 상충된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게 됐던 것이다.


현재의 상황은 대안간 입장을 동일하게 비교하기 불가능하고, 상충되는 가치가 선택상황 속에 동시에 발생한다. 두 조건을 만족시키는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의료법체계를 고수할지, 개별법으로 간호법을 입법할지는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로서 계량적으로 판단하거나 선택을 용이하게 하는 교환함수가 존재하기 어려운 문제다.


간호법 입법을 둘러싼 현재의 상황은 두 가치의 충돌로서 이해할 수 있다. 간호법의 입법과 관련한 논쟁의 기본적인 출발은 개별적인 기본법 부재로 인해 직역의 전문성과 직역간 형평성이 침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간호법 제정의 딜레마는 기본적으로 직역갈등과 제도적 형평성의 두 가지 가치충돌을 내포하고 있다.


규정충돌=규정 충돌의 딜레마는 양립할 수 없는 세부적 조문이나 가치내재적 상황으로 인해 촉발되는 것이며, 이 충돌의 기저에는 위의 가치충돌 문제인 직역갈등과 제도적 형평성이 맥락적으로 연결된다.


첫째, 의료법은 제1장(총칙) 및 제2장(의료인)에서 의료인에 포함되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 정의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자세한 사항을 정하고 있다. 문제는 의료법에 명시된 업무의 범위가 막연하고 한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둘째, 직역 간 업무충돌에 대한 제도적 미흡에 따른 문제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범위 불명확 및 일선 병원에서 불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비제도적 운영실태와 관련된 것이다.


셋째, 비제도권 의료인 및 보건유사인력의 문제이다. 현행 의료법이 간호관련 규정을 포괄적이고 모호하게 규정해 업무영역을 구체적으로 획정하지 않음에 따라 업무 범위를 넘는 PA 등 보건 유사인력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행위자 충돌=간호법 제정을 추진하는 간호계와 이를 반대하는 의사계 및 간호조무계 등 집단간 갈등이 표면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갈등은 이를 해결해 줄 국가제도가 미흡할 때 나타난다. 갈등이 확대돼 딜레마 상황 발생시 각 행위자 집단은 자신의 가치나 선호가 반영된 이익을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한다.


간호계는 1972년부터 간호업무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개선하고, 단독법안을 통해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정부에 건의해 왔다. 1983년에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간호협회 자체적으로 법률안을 만들어 간호계 내의 의견수렴을 거치는 등 간호법 제정을 위한 시범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간협은 저변확대를 위해 간호법 제정지지 서명운동을 펼쳐 100만명 서명운동을 달성하는 한편, 전국의 간호사와 간호대학생, 재외 한인간호사들이 동참하고 전국대장정 행사를 통해 간호법 제정의 당위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지지서명을 받으며, 온라인으로도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분위기를 조성하고, 정치권과 접촉하며 적극적인 행보를 하고 있다.


반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의사계, 간호조무사계, 병원협회 등은 입법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간호법 제정이 이뤄질 경우 간호사의 정의, 업무범위, 단체의 결성, 권리와 의무 등이 독자적으로 제정돼 위상이 새롭게 정립돼 힘의 균형이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특히, 현행 의료법에서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간호’와 ‘진료의 보조’라는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구체화 되거나 간호조무사와의 업무구분이 제도화 될 경우 직역 간 차이에 따른 간호사의 상대적 위상이 높아지고, 의료체계를 왜곡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간호사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결국 현실적인 상황에서 선택의 불가피성을 초래하는 것은 행위자 간의 대립이다. 각각의 행위자들이 주장하는 이익을 범주를 대변하는 대안과 여기에 반영된 이익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선택은 더욱 어려워지며, 특히 대립집단이 가지고 있는 응집력은 현실의 정책상황을 쉽게 딜레마로 빠지게 하고 그 강도를 크게 한다.


연구자는 “간호법 입법을 둘러싼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간호사의 역할이 과거와는 다른 수준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라며 “이러한 변화를 담아내는 것은 제도적 규정화를 통해 가능하고 사회적 규범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의료법의 부분적인 수정으로 확대된 간호사의 업무를 모두 반영할 수 있을지, 아니면 간호계 전체를 수권적으로 규율하고 간호업무에 대한 규범적인 지침이 되며, 간호행위에 따른 책임소재를 판단하는 기준을 마련한다는 측면에서 간호법을 입법할지 사회적인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끝으로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학계의 관심이다. 사회변화에 따른 입법수요와 현실적 이슈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해야 하는 학자의 책임이 무겁다”며 “정책결정자가 딜레마에 빠져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도록 간호법 입법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돼 입법부에서 다뤄질 때 어떤 부분이 핵심쟁점이고, 입법과정에서 관심을 둬야 하는지 학계에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