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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성병·에이즈 확산 핵심은 남성동성애자?

질본, 10년간 남성동성애자 콘돔 사용률로 성병·에이즈 사업 성과 관리

질병관리본부가 적어도 10년간 '남성동성애자 콘돔 사용률'로 성병 · 에이즈 관리 사업의 성과를 관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HIV/AIDS가 '이성 간 또는 동성 간에 관계없다'는 그간의 입장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남성동성애자를 에이즈 및 성매개감염병 확산의 핵심으로 여긴 것이다.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 의원(정의당, 비례대표)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09~2018년도 성과계획서'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매해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을 '성매개감염병 및 에이즈관리' 사업의 성과지표로 설정·관리하고 있었다.



'성매개감염병 및 에이즈관리' 사업의 성과지표는 새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유독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만, '2009년도 성과계획서'부터 '2018년도 성과계획서'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성과지표로 관리되고 있다. '2009년도 성과계획서'는 성과중심 재정운용 원칙이 담긴 '국가재정법' 제정에 따라, 정부가 국회에 처음으로 제출한 성과계획서이다. 

2014년도 성과계획부터는 '성매개감염병 및 에이즈관리' 사업의 성과지표들 각각에 가중치가 부여됐다. 기획재정부의 '2014년도 성과계획서 작성지침'에 따르면, 지표를 '핵심지표'와 '일반지표'로 나누어서 가중치를 차등분배한다. '사업의 궁극적 목적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주 지표'를 '핵심지표'로 하고, '사업의 목적달성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보조지표'를 '일반지표'로 한다.

2014년과 2015년 두 해 동안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이 '성매개감염병 및 에이즈관리' 사업의 핵심지표였다. 즉, 질병관리본부는 '성매개감염병 및 에이즈 관리' 사업의 궁극적 목적달성 여부가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에 달려 있다고 본 셈이다.





사업 목적과 성과지표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면,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을 성과지표로 정한 것의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 가지로 제시된 사업 목적은 각각 성과지표에 대응한다. '대국민 및 HIV 감염인 대상 교육 · 홍보'는 2017년 삭제된 '일반인의 HIV/AIDS에 대한 지식 정답률' 성과지표와 대응한다. '감염인 지원을 통해 감염인의 삶의 질 향상'은 성과지표 ▲'HIV 감염인 치료율(%)’과, '에이즈 및 성매개감염병 예방 및 확산 억제'는 성과지표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과 대응한다. 곧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 및 성매개감염병 예방 및 확산 억제'를 위해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을 관리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획재정부의 '2018년도 성과계획서 작성지침'에는, '성과지표는 대표성과 포괄성이 있게 설정'하게 되어있다. 이성애자, 기타 취약 계층 콘돔사용률은 제외하고 남성동성애자 인구집단만을 에이즈·성매개감염병 확산에 대표성과 포괄성 있는 집단으로 설정하는 것은 그간 질병관리본부의 입장과도, 기획재정부의 성과계획서 작성 지침과도 맞지 않는다.

질병관리본부는 웹사이트 안에 '에이즈 바로 알기'라는 페이지를 마련해, HIV가 '이성 간 또는 동성 간에 관계없이 항문성교, 질 성교, 구강성교 등의 성행위를 통해서 감염될 수 있음'을 명시해 놓았다.



또한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2016 HIV/AIDS 신고 현황'에 따르면 '성 접촉'으로 감염됐다고 밝힌 712명 중 이성과의 성 접촉은 387명인데 반해 동성 간 성 접촉은 325명이었다. 성 접촉 감염자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45.6%) 동성애자 집단의 콘돔 사용률이 에이즈·성매개감염병 예방 및 확산 억제라는 목적에 대표성과 포괄성이 있는 지표라고 보기 어렵다.

이미 2010년 질병관리본부는 '주간 건강과 질병' 제3권 제51호(2010년 12월 24일)에 게재한 'HIV/AIDS 관련 국가 수준의 감시대상 지표 목록 개발'(인하대 의학전문대학원 사회의학교실 · 질본 질병예방센터 에이즈 · 결핵관리과)에서 "남성 동성애자의 특성 중 HIV에 대한 높은 감염 위험과 가장 관련성이 큰 것은 항문성교이지만 남성 동성애자라고 해서 모두 항문성교를 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항문성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감염취약 집단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남성 동성애자가 아닌 항문성교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결국, 질병관리본부는 자기 본부에서 만든 통계와 보고서도 도외시한 채, 성과계획서 작성지침에도 부합하지 않는 성과지표를 10년씩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질병관리본부는 '2016년도 성과계획서'의 '성매개감염병 및 에이즈관리' 사업 성과지표별 '측정방법 및 목표치 설정 근거'에서, "UNAIDS에서 권고하는 전 세계 HIV/AIDS 공통 관리지표로서 격년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편 UNAIDS 발간 'Global AIDS Monitoring 2017'에 따르면 UNAIDS HIV/AIDS 지표는 모두 49개에 달한다. 그 중, 단 하나만을 골라 성과지표로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질병관리본부가 '에이즈 및 성매개감염병 예방 및 확산'이라는 목적에 대표성과 포괄성을 갖는 성과지표를 설정하고자 했다면, '남성동성애자의 콘돔 사용률(3.6B Condom use among men who have sex with men)'뿐 아니라 '마지막 고위험 성교 시 콘돔 사용률(3.18 Condom use at last high-risk sex: 비혼인 비동거 파트너와의 마지막 성교 시 콘돔 사용률)'과 함께 UNAIDS 지표 중 같은 범주('주요 인구집단의 콘돔 사용률(3.6 Condom use among key populations)')의 지표들인 '성매매종사자의 콘돔 사용률(3.6A Condom use among sex workers)', '마약 주사 사용자의 콘돔 사용률(3.6C Condom use among people who inject drugs)', '트랜스젠더의 콘돔 사용률(3.6D Condom use among transgender people)' 등을 종합해 성과지표를 설정해야 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윤소하 의원은 "사실상 정부가 지난 10년 간 남성 동성애자를 에이즈·성병 확산의 주원인으로 낙인찍고 관리한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반인권적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윤 의원은 "성소수자,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은 HIV/AIDS 감염인을 음지로 내몰아 효과적인 대응을 어렵게 한다. 이미 UNAIDS는 2020년까지 HIV 관련 차별을 종식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국제적 흐름에 맞게 인권 친화적이며 합리적인 성과지표를 조속히 개발·도입해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