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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학회

“수술실 CCTV 설치 시 외과계 기피현상 더 심해질 것”

상급병원 환자 쏠림 과중→환자 사망 증가
“외과계 의사 부족해 수술 못하는 날 올 수도”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법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외과계가 일제히 우려를 쏟아내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김우경 이사장)·대한외과학회(이우용 이사장)·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김웅한 이사장)·대한산부인과학회(이필량 이사장)·대한비뇨의학회(이상돈 회장)의 5개 외과계 학회(이하 학회들)는 28일 공동 긴급성명서를 통해 “극히 일부 외과계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서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어 수술이 꼭 필요한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을 철회해주시라”고 요청했다.

학회들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발의에 대해 우리 외과계 의사들은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일부 수술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 이 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게 한 점에 대해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은 몇 시간씩 수술실에서 사투를 벌이며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며 수술실 내 CCTV가 설치됨에 따라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5가지 문제를 제시했다.

첫째, 학회들은 수술 과정을 CCTV로 녹화하는 것만으로도 수술하는 의사들은 향후에 이 영상으로 인해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이러한 생각은 외과계 의사로 하여금 소극적이고 안전하고, 촬영이 돼도 문제가 없을 만큼만 수술을 유도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학회들은 “악성 암환자의 경우 환자가 후유증이 남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절제를 하는 것이 암의 완치율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지만, 수술 과정에서 정상 조직과 암과의 경계가 불분명 할 경우에 수술자의 판단에 완전 절제를 시도하게 된다”며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녹화되고, 향후 의료분쟁의 증거로 사용돼 외과계 의사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된다고 생각되면, 무리하게 절제를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남기고 나가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고, 이는 암환자들의 재발률과 사망률이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둘째, 학회들은 수술실 CCTV 설치로 인해 외과계 의사들이 응급수술이나 고위험수술, 질식 분만, 비뇨의학과 신장 절제술이나 전립선 절제술, 흉부외과 심혈관·뇌혈관 수술 등 수술을 기피하게 돼 상급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해지며, 적절한 시기에 수술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학회들은 “심·뇌혈관 수술의 경우 최선의 주의 의무를 다하고 조심해도 환자의 상태나 수술 부위의 유착 여부 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혈관 손상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 발생 가능성에 대한 동의 하에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과계 의사와 환자간의 관계”라면서 “그러나 수술 전 위험성에 동의한 수술 과정이 동영상으로 남겨져 검증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동의를 바탕으로 한 최선의 선택들이 동영상으로 검증해야 한다면 의사들이 안전한 수술만 하게 되고 고위험 수술은 포기하고 상급병원으로 보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셋째, 학회들은 법안에서 녹음은 하지 않고 수술실 영상만 기록하는 것으로 돼 있어 수술실 내에서의 대화 내용은 알기 어렵고, 성희롱 발언과 같은 문제적인 발언들을 억제하는 데 제한이 있으며, 수술 부위나 과정에 관련된 정보를 얻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최근의 수술 경향은 내시경 또는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신경외과 수술의 경우 미세현미경을 보면서 뇌수술과 척추 수술을 진행해 CCTV로 녹화되는 영상에는 신경외과 의사 2명과 마취과 의사, 수술실 간호사 등이 환자 주변에 수술 시간 동안 서 있는 모습만 찍힐 것이라는 지적이다.

학회들은 “이렇게 녹화된 영상이 의료사고 예방에 어떠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며, 수술하는 의사가 수술에 집중하지 못하고, 녹화되는 영상에 보일 행동에 신경 쓰게 돼 수술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환자에게 악영향을 주게 되며, 의료사고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도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이미 현미경수술이나 내시경 수술 등은 대부분 녹화하고 있으며, 각종 모니터링 장비의 내용도 기록되고 있음에도 환자 주변에 서 있는 모습을 수 시간 녹화하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넷째, 학회들은 비뇨의학과, 산부인과, 대장, 유방 수술 등을 할 때 환자의 민감한 신체가 녹화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2차적 피해를 우려했다.

학회들은 “환자의 민감한 신체 부위를 가리고 녹화하겠지만, 수술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환자의 신체가 다 찍힐 수 있는데 수많은 수술실을 CCTV로 녹화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일탈 또는 해킹 등으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녹화본 유출로 인해 환자에게 2차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제기했다.

다섯째, 학회들은 수술실 CCTV 설치까지 이뤄지면 의료분쟁 등을 우려해 외과 기피 현상은 더 심해질 것이고, 전국에 외과계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음을 우려했다.

학회들은 “이미 많은 젊은 의사들이 외과계를 기피하는 경향은 수십 년 전부터 시작돼 점점 심화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 외과계는 점점 기피하는 과가 돼버렸다”며 “힘든 수련 과정과 장시간의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전문성과 노동량에 비해 보상은 별로 없고, 수술로 인한 분쟁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특히 흉부외과의 경우 신규 흉부외과 의사 보다는 은퇴하는 의사가 더 많아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로 인해 기존의 인력의 고령화와 근무 강도가 증가해 신체적·정신적으로 한계에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학회들은 “극히 일부 외과계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서 수많은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어 수술이 꼭 필요한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을 철회하고, 의사들 스스로 자정 노력과 함께 극히 일부 의사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은 24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여야 대치로 회의가 길어져 논의되지 못하다가, 차수가 변경된 25일 자정을 넘겨 의결됐다.

이후 여야 원내대표는 25일 오후 국회에서 만나 오는 30일 오후 4시 국회 본회의를 열어 주요 법안들을 일괄 처리하기로 했다.

현재 외과계 학회들뿐만 아니라 각 직역·지역 의사회 등 의료계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며 반발하고 있어서 추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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