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감 대한영상의학회 이사장
지난 12월 21일 서울행정법원의 한방의료기관 CT사용에 관한 판결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 충격적인 판결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의사와 한의사로 구분되어 있으며 그 임무도 의사는 의료와 보건지도에 종사하도록 하고 있고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보건지도에 종사함을 임무로 각각 규정하고 있다. 또 각기 그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의료와 한방 의료는 질환명도 다르고 그 진단방법이나 치료방법도 다르다. 학문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내용이 다른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법체계에서 이번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서울 행정법원은 2004년 12월 21일 한방병원의 행정소송에 대한 판결에서 현행 의료법에 의료와 한방 의료의 행위를 정의하는 구체적인 규제조항이 없다는 이유로“CT는 한의사가 하는 망진(望診)에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므로 한의사의 의료영역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판사는 “한의사도 오감(五感), 의사도 오감을 가지고 진단한다. 무엇이 다른가?”고 묻고 있다. 이 질문은 CT라는 중요한 핵심의료장비를 환자의 용태를 눈으로 살펴 진단하는 데에 이용할 수 있는 확대경정도의 기구로 착각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진단은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의료장비의 사용은 공인된 과정에 따라 교육받고 훈련하며 배우고 익힌다. 그런데 구체적인 명문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중요한 핵심의료장비를 누구나 간단히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 해석한다면 위험천만한 시각이다.
의학교육을 받은 의사들도 진단을 위해 영상의학전문의에게 의뢰한다. 하물며 의학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가 CT와 같은 핵심장비를 운영할 때 그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이번 판결에서와 같은 위험한 시각은 내시경. 초음파. MRI, 심전도 등 모든 진료행위로 확대될 우려가 있으며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매우 빠르게 붕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료계가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은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가 버젓이 행해지고 있는데 있다.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데 대해 먼저 모든 의사들은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충분히 예견되어온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나타날 수 있도록 싹을 키우며 침묵으로 일관해온 우리들의 책임이 크다.
따라서 의사들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며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도록 적극 대처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비록 일부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신뢰를 받는 우리나라의 판사가 그러한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문을 숙독하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
이번 행정소송의 피고가 된 서초구는 “있을 수 없는 판결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더
적극적으로 정부와 관련 전문가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영상의학회의 급박한 촉구를 여러 차례 거절했다.
또한 이 소송의 준비와 대처에 시종 방관한 보건복지부에 대하여 그 동안 한의사의
불법 의료에 대한 미온적 태도로 빚어진 이러한 사태에 책임을 지고 더 명확한 법적
해석과 적극적 법적 대응을 강력히 촉구한다.
명문화 할 필요도 없이 상식적으로 인식되어 온 우리의 의료행위가 기존의 법규를 악의적으로 해석하여 의료의 핵심이 자격 없는 사람의 손에 의해 사용될 수 있는 매우 위험스러운 요소를 이제 더 구체적으로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대한의사협회는 깊이 각성하여야 한다. 이 엄청난 사건의 주요성을 강조하는 해당학회의 힘겨운 노력에도 이를 직시하지 못하고 사전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한 책임은 그 누구보다 의협에 가장 크게 있으며 이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집행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획기적인 의식전환과 함께 “의료행위에 대한 바른 규정과 그 수호를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즉시 가동하여야 하며 피고는 즉시 항소 하도록 하고 의협이 피고 보조참가인으로 직접 나서야 한다.
전국의 의과대학장은 학생교육에 “한의사제도를 포함한 우리나라 의료체계, 의료관행 및 의료법의 문제점”을 다루는 교과과정을 신설하여 교육하여 의료의 시각을 넓히고 의료가 환자진료에만 있거나 성공한 의사의 개념이 ‘명의’에만 있지 않음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병원장은 그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진료시설에 한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문제점을 홍보하고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례를 수집하고 보고하여야 한다.
각 학회는 의학의 역할과 위치를 지키기 위해 학회의 목적과 학문의 범위를 의료정책과 제도로 더욱 확대하고 학생교육과 병원자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그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방의료의 문제점은 이제 적극적으로 토론되어 밝혀야 할 때가 되었으며 국민 건강에 대한 그 득과 실을 구체적으로 규명하여 비효율적인 진료와 그에 관계된 법의운영은 그 결과에 따라 처리되어야 한다.
이는 비록 그 과정이 험난하더라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와 관행을 바로 하여 국민건강을 지킨다는 사명감을 갖고 장기적이고 철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오늘의 사태가 대한영상의학회 회원을 포함한 모든 의사의 자만과 나태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반성하고 우리나라의 의료와 의학에 심각한 위기임을 함께 인식하며 이제는 행동에 나설 것을 이 나라의 모든 의사에게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