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2월 6일 필수의료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당장 2025학년도부터 의대정원을 2,000명이나 증원하는 충격적인 내용을 발표하였다. 올해를 의료개혁의 원년이라고 칭하면서 지난 2월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2월 4일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이어 내놓은 것이다. 이번 정책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의료진 덕분에”라고 추켜세웠던 의사와 의료계를 단숨에 개혁의 대상으로 삼았다.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의사 수 확대)만이 필수의료 위기와 지역의료 악화 해결의 필요조건으로 규정지었는데 이는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각 나라의 지역적, 의료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통계 수치의 비교를 통해 도출한 결과를 인용하며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더욱 실망스러운 건 증원에 찬성하는 일부 인사들이 의사 수입에 대한 과장된 통계를 인용하여 네거티브 여론몰이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사 밀도, 활동 의사 수 증가율, 연간 의사 상담 건수 등의 또 다른 통계로 미루어보면 정부가 주장하는 타 선진국 대비 절대적인 의사 수보다 필수의료 분야의 전문인력, 지방 필수의료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임을 알고 있을텐데 왜 거짓을 발표하였는가? 정부는 의사들이 안정적인 고수입 진료 분야를 선호하여 필수의료 분야 지원을 꺼렸고 이로 인해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현상이 발생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필수의료 위기와 지방의료 공백은 의사 수 부족이 근본 원인이 아니라 출산율 감소와 같은 인구 사회학적 변화,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한 공급 불균형, 무너진 의료전달체계와 업무의 강도만큼 보상받지 못하는 보험정책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의대정원 증원의 규모에 있어서도 정책에 유리한 방향의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40개 대학으로부터 교육 역량에 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이 이루어졌다고 하나 과연 당장 내년부터 현 의과대학 정원의 약 70%나 되는 인원을 한꺼번에 늘릴 정도로 시급하고 완벽하게 준비되었는가? 의대정원 증원은 단순한 수적 증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요양급여 비용의 폭발적인 증가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현재 의과대학의 교육 및 수련환경의 현실적 고려 없는 의대정원의 무분별한 증원은 낮은 역량의 의료기술자만 대량 양산될 것이다. 정부는 현재 충분한 의사 인력의 재배치를 위한 지원책은 제쳐 두고 역대급으로 의대정원을 늘려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필수의료 위기의 주범이라고 판단하는 비급여 진료를 통제하면 10년 후부터 나오는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로 자연스럽게 유입될 거라는 유치한 환상에 빠져있다. 그럼 과연 정부는 앞으로 10년간은 현재의 필수의료 위기에 대해서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나? 폭발적으로 늘어난 의대정원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의 과학을 이끌어 갈 영재들이 부족해져 국가경쟁력은 턱없이 추락할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초 저수가 기조와 수십 년간의 잘못된 의료정책 속에서도 필수의료 분야는 버텨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는 이제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서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제발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의 정신으로 추진하는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오히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고, 피땀 흘려 일한 만큼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할 뿐이다.
대한내과의사회 회원 일동은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파격적인 “의대정원 증원” 대책은 의료를 단숨에 몰락시키고 교육을 뒤흔들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것으로 절대 반대함을 밝히고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를 강행한다면 본회는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설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2024년 2월 7일
대한내과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