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협상에서 미국측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미국이 그동안 다른 국가들과 체결한 협정문을 견줘볼 때 국내 제네릭 생산시장이 존폐위기에 놓이며 제약사가 의약품 지적재산권 문제로 외국 제약사에 종속된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박인춘 대한약사회 재무이사는 한·미 FTA체결 대책 특별위원회가 17일 국회 본청 245호에서 개최한 ‘한·미 FTA 분야별 의견청취 토론회’에서 “이번 협상에서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면 국내 제네릭 생산시장이 붕괴되며 이로인해 국민의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며 국내 의약품 시장이 외국 제약사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밝혔다.
박 이사는 “우리나라 국민이 적기에 최대한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이 유지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신약의 중요성 못지않게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량신약이나 제네릭 등이 매우 중요하며, 특히 우리나라가 이 분야에 경쟁력을 갖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FTA를 통해 이런 경쟁력을 말살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그동안 싱가포르, 칠레, 중미, 호주, 모로코, 바레인, 요르단 등과 이미 체결한 협정문에 따르면, 허가-특허 연계와 관련 *특허중인 물질에 대해 또는 기존물질의 특허중인 용도로 특허권자의 동의없이 제3자가 의약품을 시판허가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독점과 관련 *신약시판 승인을 위해 안전성, 유효성 정보의 제출을 요구한 경우, 제3자가 그 정보를 인용해 동일 또는 유사한 약을 최소 5년간 시판할 수 없고 *외국에서 허가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에 근거해 약 허가시, 자국 또는 국외의 시판일 중 늦은 날로부터 최소 5년간 적용하고 있으며, 특허기간 연장에 대해서는 *특허중인 의약품에 대해 시판허가과정의 결과로 인한 유효 특허기간의 불합리한 단축에 대해 특허권자에게 보상하기 위해 특허기간을 연장하도록 하고 *외국에서 허가받기 위해 제출한 자료에 근거해 약 허가시 자국 또는 외국의 시판일 중 늦은 날로부터 최소 5년간 적용토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조류독감이나 에이즈 등 국가 비상사태 및 응급상황에 대해 특허권자의 승인없이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강제실시’ 부분에 있어서도 충족조건을 많이 달아 특허 사용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협정문의 내용들은 TRIPS(지적재산권에 대한 최초의 다자간규범) 규정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박 이사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 박 이사는 “미국의 이 같은 기 체결된 협정문 내용은, 현재 제네릭 시판의 경우 특허기간 중에 허가를 받고 특허기간이 끝나면 바로 시판할 수 있는 체제를 특허기간이 종료된 후에나 허가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제네릭과 개량신약 판매가 주를 이루는 국내 제약사에는 불리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미 FTA가 장기적으로 신약개발을 촉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혁신적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2000억원 정도의 개발비가 필요하며, 보통 매출의 10%를 R&D 비용으로 가정할 때 연 매출 1조원 이상인 제약사나 가능하다”며 “현재 우리나라 제약사 중 연 매출 3000억 이상인 제약사는 5군데 정도밖에 없다”며 구조적인 현실을 지적했다.
또한 국내 제약사가 적극적으로 신약개발에 뛰어들지 못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질책 이전에 우리나라가 노하우가 많은 개량신약 개발로 경쟁력과 재정력을 키운다음 자연스럽게 신약개발의 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최원목 이화여대 법과대학 교수는 “FTA 체결 반대진영의 논리가 타당하다면 그것만으로도 결코 체결돼서는 안된다”고 전제하고 “대체형이 아닌 보충형 민간의료 보험서비스가 확대될 수 있을 뿐 약가폭등과 사보험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최 교수는 “미국측은 의약품관련 특허기간 보상연장 등을 주장하며 지적재산권 강화를 요구하고 있고, 이를 수용하는 경우 국내 제약업계의 피해가 발생하게 됨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지적재산권 강화는 장기적으로는 제약기업의 기술개발 의욕을 고취시켜 신약개발에 대한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도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포지티브 등재에 대한 판정을 내리는 독립기구 구성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최 교수는 “판정에 대한 신청권한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수용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국내 제약사에 대한 단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수익성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망하는 기업은 망해야 한다”며 “FTA가 국내 제약사의 신약개발을 촉진하는 필요조건일 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고 말해 단기적으로는 손실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점을 피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FTA 체결에 대한 찬-반 양측의 발표형식으로 진행됐으나, 특별위원회의 의견은 국내 제약시장의 타격, 약재비 상승 등 ‘손실’ 부분에 무게가 실렸다.
류장훈 기자(ppvge@medif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