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에도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을 기록하는 등 저출산 기조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초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인 만큼 가임력 보존 시술에 대한 정책적 및 재정적 지원과 현행 국가 난임지원사업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2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의원회관 제1간담회의실에서 가임력 향상을 위한 해법을 주제로 ‘우리의 미래, 난임과 가임력 보존’ 토론회를 개최했다.
저하된 가임력은 회복 불가…AMH·경질초음파 급여 확대 및 보존 시술 급여화 고려돼야
이날 ‘가임력 보존과 증진: 저출산 시대의 새로운 키워드’ 발제를 맡은 이정렬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의학적 대책으로 가임력 보존을 제시하며, 그 중요성에 비해 정책적 고려에서 주목받지 못한 현실을 꼬집었다.
이정렬 교수는 “가임력 보존은 고령화 및 가임력 저하로 인한 난치성 난임을 예방할 수 있음에도 의료지원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며, 국가 지원 제도도 전무하다”며, “배아 또는 난소 동결은 확립된 가임력 보존 방법으로 의학적으로도 권고되는 방법이나, 현재 의료 지원 체계에서는 전액 비급여로 본인 부담 하에 시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대의학으로는 한번 저하된 가임력을 회복시키기 불가하므로, 잠재적 난치성 난임 환자에 대한 선제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현행 AMH(항뮬러관 호르몬) 혈액검사와 경질초음파(TV-USG)의 급여 대상을 일반 여성 인구집단으로 확대하고, 여성 생애 주기별 검진에도 포함시켜 여성들이 본인의 가임력 상태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가임력이 저하됐거나 저하될 가능성이 있는 잠재적 난임 환자를 조기에 발견해, 난자 동결 등으로 가임력을 보존하기 수월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또 항암치료나 난소질환 등으로 가임력 저하가 분명히 예상되는 경우에 대해 난소·난자·배아동결 치료가 급여화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비용 효과성에 대한 이슈 등으로 결국 약간 제한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우리는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효율성, 가성비 등을 따지기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을 시행하는 것이 맞다”며, “이는 잠재적 난치성 난임 환자에 대한 선제적 지원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지원정책이 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임신율 및 출산율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인부담금 경감, 정부지원사업으로의 전환 등 보험 기준 개선 및 국가지원사업 개편 필요
이중엽 함춘여성의원 원장은 현행 난임 급여 및 난임지원사업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중엽 원장은 “그동안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지만, 최근 출산율의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면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판단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예산 규모 자체는 커졌지만, 내실있는 지원은 줄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며, “건강보험 적용 하에서 국가지원사업이 가지는 제한적 역할로 인해 높아졌던 기대에 비해 현실적으로 체감하는 난임부부들의 지원사업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사업이 지난해부터 지자체로 이양되며 혼란을 야기한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지자체별로 난임 지원정책이 상이한 데다, 이런 지원 자체가 없는 지자체도 있다. 난임시술비 지원이 지자체 사정에 따라 운영하는 사업이어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항목별 지원 퍼센티지(%)에 차이가 있어 환자들의 피로도가 높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 원장은 “어떤 비용은 90%까지
지원되면서 어떤 건 안 되고, 또 어떤 건 100%가 되다
보니 환자들이 수납하고도 지원을 받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산모 바우처도 허용된 범위 내에서
용도에 제한을 두지 않는데, 허용된 의료기관에서 표준 범위를 쓴다면 비용 제한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보조생식술 시술간의 횟수 제한 때문에 특정 시술이 이뤄지지 않는 환자군에서 보험적용 횟수가 남아 있어도 시술 받지 못하는 문제, 나이 혹은 임신 여부에 따른 본인부담률 차이, 남성 난임 지원 범위 제한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
이 원장은 난임 환자들을 위한 가장 주요한 기초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기준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심각한 저출산을 위해 획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지금, △환자의 난임시술 본인부담금 10%로 경감, △보험적용 횟수 추가,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전환, △다양한 가족 형태 포용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아울러 현재 국가지원사업의 전면적 개편 및 성격을 재규정할 것을 건의했다. 이 원장은 “건강보험과 연계돼 지원되는 시스템을 독립적으로 전환해, 건강보험 적용이 끝난 환자에게도 국가가 시술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중 ‘임신·출생 전후 의료비 등 부담 경감’에 발맞춰, 국가지원은 보험 적용과는 별개로 가용한 재원을 계속 확대해 허용 범위 내에서 그 횟수를 점차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원 시스템 개선과 지원 절차가 간소화돼야 하고, 지원 범위 및 여건의 격차가 나지 않도록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사업으로 재전환해 국가지원사업을 재정립해야 한다”며, “시술에 소요된 금액은 급여, 비급여 제한 없이 100% 상한 지원금액 안에서 지원처리 하도록 변경하고, 환자가 원하는 부분에 원하는 비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바우처 제도로 전환하는 등 효율적인 난임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난임 및 가임력 보존 교육 선행돼야…개월 단위의 난임 휴직제도 도입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는 가임력 보존에 대한 새로운 관점도 등장했다. 김명희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시험관 시술이나 난자의 동결이 여성의 가임력을 전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착각을 일으켜 임신과 출산을 미루는 위험도 초래할 수 있다. 냉동 배아나 냉동 난자를 이용한 이식도 나이가 들수록 성공 확률이 줄어든다”며, 의료 기술만으로 성공 확률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 난임 및 가임력 보존에 대한 교육 강화가 선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는 의견을 내놓았다.
생활 및 사회 환경 개선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김명희 회장은 “과도한 비만과 다이어트, 흡연과 알코올 섭취가 일상인 생활과 늦은 퇴근, 잦은 회식과 출장 등의 사회 환경이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며, “난임 휴가 시술 사이클인 한 달을 다 투자해야 하므로, 난임 휴직제도를 도입해 사이클 동안 충분한 환경 속에서 시술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월 단위 휴직은 작업자의 생산력 측면과 대체인력 마련 부분에서 훨씬 유리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복지부, 선별검사 지원 신사업 내년 도입…현장 의견 고려해 추가 지원도 검토할 것
보건복지부는 정부 차원의 난임 및 가임력 보존 지원 확대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건강보험 재정 안정성 및 비용효과성 등의 측면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년에는 가임력 보존 선별검사를 지원하는 신사업이 도입될 계획이다.
최영준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과장은 “정부 지원 대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데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난임 진단이나 심각한 상황 몇 가지에 대해서는 급여를 적용하고 있지만, 단순 가임력 검진은 건보 재정 안정성, 비용 편익적 측면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비용을 지원하는 정도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과 남성의 가임력 검진이 동일하게 지원돼야 한다는 기조를 갖고 있지만, 건보료 적용 또는 생애 주기 검진 포함 등 방식에 대해선 의견이 많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며, “내년에 ‘임신 사전 건강관리 사업’이란 제목으로 신사업을 도입한다. 부부 8만2000쌍, 약 16만명을 대상으로 여성에겐 AMH와 초음파검사 비용을 지원하고, 남성에겐 정액검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내후년 정도에 전국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영대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사무관은 “가임력 보존 선별검사 두 가지는 예산사업으로 우선 시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의학적 효과성과 비용효과성이 확인되면 추후에 선별검사도 국가검진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본다”며, “제안 주신 것처럼 추가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현장의 의견을 잘 고려해 검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재원을 투자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와 더불어 국가 단위, 지역 단위의 성공률에 대해 관리가 필요하다. 난임 치료 시술이 실제 출산으로 이어지는지 건강보험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국내 기술이 분명하게 좋음에도 전체적인 성공률이 많이 낮다”며, “의미 없거나 효과가 낮은 시술이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어, 건강보험의 보편적 지원이라는 제도 특성상 필요한 그룹에 두텁게 지원될 수 있도록 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