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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컨설팅

우리병원의 매뉴얼은 안녕하십니까?

김지원 아라컨설팅 교육실장


매뉴얼을 위한 매뉴얼에 아프게 쓰러진 자존심


최근 우리는 어이없는 사건으로 대한민국 시민들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남대문’을 화재로 잃고 말았다. 현장에서 불을 끄는 관련 사람들도 안타까웠겠지만 무너져가는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는 우리국민의 마음은 안타까움을 넘어 쓰리고 아프기까지 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왜 저렇게 적극적으로 불을 끄지 못할까?”, “왜 저리 불길을 잡지도 못하고 오히려 화마의 성질만 더 돋구고 있을까?”답답함에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답답함은 화재 후 연일 보도되는 뒷 사연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것 같다. 그 중 필자의 눈길을 끄는 기사가 하나 있었으니, 지난 2월 13일 동아 일보에「화재대응 ‘맹탕 매뉴얼’…구체지침 없어 실제선 무용지물」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인즉, 문화재청이 만들어 2006년 2월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한 ‘문화재 화재 위기대응 현장조치 매뉴얼’에 나와 있는 화재 발생 때의 행동 요령이 적힌 매뉴얼이 실제 현장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그저 매뉴얼을 위한 매뉴얼이었다는 소리다. 더욱이 이 매뉴얼은 소방전문가가 아닌 문화재청의 공무원들이 만들고 관리하고 있었고 매뉴얼에 실린 비상연락망은 수정, 보완된 적이 없어 퇴임한 장관의 이름이 연락망 안에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정도만 봐도 이번 화재는 불가항력이 아니라 예견된 인재가 분명하겠다. 누가 불을 내었는가도 중요하겠지만, 누군가가 불을 내기 이전에 목조건물의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준비된 실전 매뉴얼 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 더 큰 화를 부르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누구를 위한 매뉴얼인가?
매뉴얼 얘기가 나왔으니, 매뉴얼을 한 번 짚고 넘어가보자.
매뉴얼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를 보면 [안내서, 입문서, 지도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각 기업과 기관에서는 원활하고 일관된 업무를 위한 업무지침서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최근 일반 기업이나 기관과 마찬가지로 국내 크고 작은 병원들도 매뉴얼을 만드는 곳이 늘어가고 있다. 병원들이 매뉴얼 작업을 하는 이유는, 병원 내 각 part별 업무의 명확화와 입•퇴사율이 높은 직원들의 교육 그리고 고객들에게 일관성 있게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의 프로세스를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주변에는 위에서 보았던 문화재청의 화재위기 대응 매뉴얼처럼 매뉴얼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고, 보유하는 것에 만족하는 전시행정을 하는 곳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용 매뉴얼은 업무의 지침서가 아니라 오히려 직원들의 업무로드를 마비시키는 걸림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매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 매뉴얼의 제작과정에 누가 참여하는가? 이다. 대부분의 매뉴얼은 병원 내 관리부서, 교육부서 혹은 중간관리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다 보니 매뉴얼의 내용이 사용자 중심이 아닌 지시자 중심으로 만들어지게 되고 실제 상황에 대처하는 발 빠른 대응이 아닌 원칙을 고수하는 규정이 되고 만다. 이렇게 만들어진 매뉴얼은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는가? 직원들이 업무수행을 하는데 있어 불필요한 행동들을 하게끔 만든다.
특히, 융통성을 발휘해야 하는 고객(환자)점접의 경우 상황에 대한 탄력적인 대처가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어 ‘규정, 내규’등을 앞세우는 소극적인 고객(환자)응대를 하도록 만들게 된다. 그러므로 매뉴얼을 제작할 때에는 반드시 그 부서의 업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직원이 참여해야 하고 고객(환자)접점의 경우, 고객접점 업무를 하는 담당이 직접 매뉴얼 제작에 참여 해야 한다. 그래야만 통상적인 프로세스를 나열하는 식의 매뉴얼에서 벗어나 실제 업무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살아있는 매뉴얼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부에 출강을 나가보면 자체 매뉴얼에 의한 교육을 요구할 때가 많은데, 교육 시 직원들은 매뉴얼의 사용언어 및 행동지침이 실제와 상당 부분 달라서 매뉴얼 교육을 불필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만드는 이와 사용하는 이가 다른 데에서 오는 Gap의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겠다.

둘째, 사용자(직원)가 이해하기 쉽고 행동하기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보아도 이 매뉴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직원들이 보면서 바로 바로 이해가 되어야 하며 업무를 위한 기본적인 행동지침과 접점별 대처 사항이 행동으로 습득 가능하도록 만들어져야 그것이 바로 필요한 매뉴얼인 것이다. 이를 위해, 매뉴얼은 반드시 구체적으로 기술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화응대 상황 시 ‘전화를 받을 때에는 정중한 언어를 사용하여 공손하게 받고 끊을 때에도 수화기를 공손하게 내려 놓는다’ 라고 되어 있다면 이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구체화된 매뉴얼이라 함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 전화응대 상황 시
- 전화 벨은 3번 울리기 전에 받는다.
- 첫 인사의 멘트는 ‘oooooooo’으로 한다.
- 전화통화에서 고객에게는 반드시 명령어 (~ 하세요)가 아닌 의뢰형 (~ 하시겠습니까?)을 사용한다.
- 통화 종료 시 고객보다 먼저 끊지 않는다 등
이처럼 전화라는 한가지 상황만 보더라도 무엇을 말해야 하며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기술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내부적으로는 업무의 프로세스가 단순화 되어 업무를 위한 시간관리가 가능하며 대외적으로는 일관되고 통일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

셋째, 매뉴얼은 전시, 보관용이 아닌 교육과 연계되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매뉴얼이 아닌 행동하는 매뉴얼이 되기 위해서는 워크북의 형태로 제작 되어 직원교육과 연계되어야 한다. 물론 병원의 전체적인 logic을 보기 위해서는 한 권의 책자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병원의 각 part와 고객 접점의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나 상황을 해석할 수 있는 워크북(핸드북)의 형태로 만들어져서 직원들과 매뉴얼이 친해져야만 한다. 실제로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최고의 고객만족이 실현되는 기업이나 유통업체를 보면 Part별 매뉴얼이 핸드북으로 제작, 직원교육과 연계되어 행동으로 습관화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병원들이 매뉴얼 제작은 제작대로 하고 직원 교육은 또 직원교육대로 따로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강의의뢰를 받고 병원에 나가 교육을 하고 나면, 강의 시 사용한 강의교안을 보내달라고 조르는 병원을 자주 접하곤 한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교육인 관계로 차후 세부행동교육은 매뉴얼로 하시라는 말을 전하면 강의내용에 맞게 매뉴얼을 수정하겠다고 답하는 어이없는 경우도 발생하곤 한다. 병원의 매뉴얼은 그것이 곧 자체 교육의 교재이고 훌륭한 교안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매뉴얼을 만들 때에 “있어야 하니까, 다른 곳은 다 있으니까..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 가 아니라 “누가 사용하며, 어떻게(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려하여 만들어져야만 한다.

넷째, 매뉴얼은 업무의 특성을 고려하여 Part별 다양한 형태로 제작 관리되어야 한다. 병원 내 모든 부서가 다 매뉴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매뉴얼이 반드시 필요한 부서와 그렇지 않은 부서를 구분하고 매뉴얼이 필요한 부서의 경우는 그 목적을 명확히 하여 제작,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매뉴얼을 반드시 만들어서 훈련시켜야 하는 부분은 어느 부분이 될까?
바로 고객의 동선이 되는 모든 MOT에는 반드시 매뉴얼이 있어야 한다. 즉, 고객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모든 접점을 MOT로 그려본 후에 그 접점마다의 행동지침을 실제에 맞게 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 매뉴얼이라 할 수 있다. 고객이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MOT의 첫 점을 시작으로 하여 수납 후 문을 나서서 나가는 마지막 시점을 끝으로 진료카드 작성, 대기시간, 상담실에서의 상담, 진료 및 관리실에서의 관리요령, 수납 등이 매뉴얼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MOT의 모든 접점을 매뉴얼화 할 때에는 앞서 이미 언급했듯이 구체적이고 상당히 세부적으로 만들어져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그냥 무심코 흘려 지나갈 수 있는 상담실 혹은 피부과나 비만치료의 경우 관리실내에서 모든 행동에는 더 자세하고 구체적인 사항들이 기술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매뉴얼이 필요하지 않은 부서일 경우, 예를 들면 해피콜 담당 부서나 진료실의 어시스던트를 해야 할 경우에는 굳이 매뉴얼을 만들기 보다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업무 전이나 업무 중에 꼼꼼하게 준비하고 체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매뉴얼에는 그 병원의 철학이 담겨 있어야 한다. 병원이 오로지 병을 고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병원은 아픔을 갖고 있는 환자 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들도 모두 다 고객들이기 때문에 올바른 매뉴얼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만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가족과 증세의 예방에까지도 중심을 두어 만들어져야만 한다. 즉, 그 병원의 고객 중심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때 비로소 매뉴얼은 활용 가능하게 된다.

가끔 몇몇 병원의 원장님, 실장님들을 만나게 되면 직원들의 근무태도에 대한 우려 혹은 걱정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적극적이지 못한 고객(환자)응대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일을 해내는 요령의 부족 등을 주로 걱정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병원 내 매뉴얼의 유무를 묻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매뉴얼은 고사하고 매뉴얼 자체가 없는 곳도 부지기수이고 설사 있다 하더라도 무용지물인 경우가 다반사이다. 직원들의 지식, 스킬, 태도를 탓하기 이전에 그들이 짧은 시간을 들여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능동적이고 숙련된 업무 태도와 고객(환자)응대 Skill을 위한 매뉴얼을 먼저 마련해 두는 것이 우선순위라 하겠다.

매뉴얼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면 혹자는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모든 업무가 시시각각의 변수를 갖고 있고, 모든 고객이 100인 100색으로 다른데 매뉴얼이 그 모든 것을 다 대응할 수 없기에 오히려 불필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라고. 물론 매뉴얼이 모든 상황과 모든 고객의 반응에 다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인체에 뼈대가 중요한 중추의 역할을 하고 있듯이 병원 업무의 내부에도 중추의 역할을 매뉴얼이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매뉴얼이라는 뼈대가 튼튼해야 어느 부분을 보완 해야 하며, 어떤 곳의 서비스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를 쉽게 알아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직원들의 이직 시, 후임 직원들의 업무 적응도가 빨라지는 것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권한과 책임이 그 위에서 탄력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여러분 병원의 매뉴얼은 안녕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