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담배 폐병'으로 불리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 있다. 기도가 점차 좁아져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병이다. 흡연이 그 원인의 80∼90%를 차지한다.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이 병은 그러나 우리나라 45세 이상 성인 17.2%, 65세 이상 75세 이하 노인 35%가 앓고 있는 국민병이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가 최근 전국 9개 대학병원의 지난 10년간 COPD 입원 환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전체 환자수는 1997년에 비해 49%, 60세 이상 환자는 무려 68%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추세는 급격한 노령화와 함께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학회는 오는 16일 폐의 날을 맞아 COPD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대국민 캠페인을 펼친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6개 도시에서 '당신의 호흡 나이는?'을 주제로 건강강좌와 함께 무료 폐기능 검사를 진행한다.
그렇다면 '신체 나이'와 '호흡 나이'는 어떻게 다를까? 같은 연령대지만 판이하게 다른 호흡 나이를 지닌 두 중년 남성 사례를 통해 건강한 호흡 나이를 유지하는 비결을 알아보자.
#신체 나이 50대, 호흡 나이 75세
1년 전 무거운 짐을 들다 갑자기 심한 호흡 곤란을 느낀 김철수(가명·59·서울 회기동)씨. 나이를 먹어 그러려니 하고 무심코 넘겼지만 이후 종종 비슷한 증상이 계속돼 종합검진을 받았더니 호흡 기관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이었다. 폐기능 검사 결과 COPD 3기 판정을 받았다. 그의 폐활량은 정상인의 40%밖에 되지 않았다.
김씨의 ‘호흡 나이’는 75세. 실제 나이보다 무려 16세나 많게 나왔다. 주치의인 경희의료원 박명재 교수는 “COPD는 폐 기능이 50% 이상 손상되기 전까지 기침 등 흔한 증상으로 시작돼 천천히 진행되고,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중한 상태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미 망가진 폐 기능은 회복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기적인 폐기능 검사를 통한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가 COPD를 앓게 된 주요 원인은 10대 때부터 40여년간 하루 3갑씩 피워 온 담배였다. 김씨는 “병 진단 후 담배를 하루 1갑으로 줄였지만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것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또 담배를 찾게 된다”고 했다. 담배를 완전히 끊기 위해 금연 패치와 금연약까지 복용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매우 힘에 부친다는 것.
김씨는 산소 호흡기를 끼고 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한달에 한번씩 호흡 곤란 증상이 생겨 기관지 확장을 위한 스프레이식 약물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또 폐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서 운동을 시작했지만, 망가진 폐기능을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것 같다며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박 교수는 “김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금연”이라고 단언했다. “하루 한갑씩 10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 중에 감기도 아닌데 기침이나 가래가 매일같이 나오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숨이 차거나 입술과 손톱끝이 회색 혹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면 가볍게 보지 말고 하루빨리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신체 나이 50대, 호흡 나이 38세
상가건물 경비 업무를 하는 전인국(56·서울 상계동)씨는 요즘 중량천변을 따라 자전거 타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다. 중랑천에 자전거 도로가 생긴 5년 전부터, 격일로 4시간씩 왕복 35㎞를 달린다는 전씨는 최근 폐기능 검사를 통해 ‘호흡 나이’ 38세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까지 담배 한개비도 피워 본적 없고,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건강에 자신 있었던 그다. 그렇기는 하지만 폐 건강이 18세나 어리게 나온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편으론 가슴이 뿌듯하다고 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전씨는 자연스럽게 담배를 접하지 않았다. 그의 두 아들도 흡연을 하지 않고 있다. 전씨 가정엔 3대째 흡연자가 없는 것이다. 간접 흡연에 노출되지 않은 것도 건강한 폐 기능을 보유하게 된 긍정적 요인이다.
전씨의 폐기능 검사결과를 살펴본 강남성모병원 김영균 교수는 “나이에 비해 우수한 폐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놀랍다. 아마 규칙적인 자전거 타기가 폐활량을 키운 것 같다”고 진단했다. 자전거 타기 외에 걷기나 달리기, 수영 등이 폐기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조언이다.
전씨가 ‘젊은 폐’를 유지하는 또하나 비결은 비타민C가 풍부한 과일을 충분히 섭취한 것. 그는 매실과 사과를 매일 빼놓지 않고 먹는다. 비타민A·C·E와 셀레늄, 베타 카로틴 등 항산화제가 풍부한 음식은 폐 손상을 방지하는데 도움된다. 현미 등 정제하지 않은 곡물, 호두 밤 등 견과류, 식물성 기름, 맥아 등을 자주 먹는 것도 좋다.
김 교수는 “겨울철에는 실내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습도를 유지하고 환기를 자주해서 호흡기에 자극을 주는 실내 먼지, 자극성 물질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디포뉴스 제휴사-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