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홍역 의심 환자 발생이 잇따랐던 지난 6월, 8살 된 민우(가명)는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피부에 발진이 생겨 병원을 찾았다가 홍역 진단을 받았다. 생후 13개월 때 기초 예방 접종을 맞혔으나, 4∼6세 사이 추가 접종을 안 해 예방 효과가 지속되지 않았다는 게 소아과 의사의 진단이었다. 엄마 유모(39)씨는 “아기 수첩을 분실해 제때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설마 우리 아이가 걸릴까 싶었는데…. 결국 내 탓”이라며 때늦은 후회를 했다.
예방 접종은 어린이 건강을 위해 어떤 '보약'과도 견줄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질병 예방책이다. 특히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밖에서 노는 기회가 많아져 그만큼 전염성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성장 시기에 맞춰 예방 접종을 철저히 지켜 치명적 전염병에 걸리지 않게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6세 이하 어린이들의 경우 국가 필수 예방접종의 기초 접종률은 80∼90%대로 비교적 높지만, 질환 예방 효과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추가 접종률은 10∼50%대에 머물러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대병원 이환종, 이화의대 김경효,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천병철 교수팀이 19∼20일 대한소아과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어린이 예방 접종률 현황'을 통해 밝혀졌다. 연구팀은 올 1월 제주를 제외한 전국 15개 시·도의 12개월 이상 6세 이하 어린이 1500명을 대상으로 현황을 조사했다.
그동안 특정 지역이나 학교에서 부모 면담 혹은 어린이 설문을 통해 부분적으로 예방 접종 실태가 조사된 적은 있었으나 전국 단위에서 대표 표본을 추출, 방문 면접과 예방접종 수첩을 통해 접종률 현황이 파악된 것은 처음이다.
◇추가 접종 소홀…일본뇌염·독감은 기초 접종률도 저조=연구팀은 BCG(결핵), B형 간염, 수두, DT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MMR(홍역, 볼거리, 풍진), 폴리오(소아마비), 일본뇌염, 독감 등 국가 필수 접종군(12개)과 A형 간염, 뇌수막염, 폐구균 등 권장 접종군(3개) 등 모두 15개 질환의 예방 접종 여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추가 접종이 필요없는 BCG와 B형 간염, 수두는 각각 99.1%, 87.3%, 88.3%의 비교적 높은 접종률을 보였다. 하지만 4∼6세 사이 추가 접종이 필요한 DTaP와 MMR, 폴리오의 기초 접종률과 추가 접종률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DTaP의 경우 기초 접종률은 92.7%로 매우 높은 반면, 추가 접종률은 4세 13.3%, 5세 25.2%, 6세 33.0%로 현저히 낮았다. MMR도 기초 접종률(93.2%)에 비해 추가 접종률은 4세 24.2%, 5세 42.3%, 6세 59.0%였다. 기초 접종률이 79.9%인 폴리오의 경우 4세 35.4%, 5세 45.0%, 6세 51.5%만이 추가 접종했다.
또 일본뇌염(사백신)은 필수 예방 접종군임에도 기초 접종률 조차 절반 이하(49%)에 그쳐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추가 접종 비율도 6세 어린이의 경우 23.9%에 불과했다. 10∼11월이 적기인 독감 예방 접종은 반드시 맞힐 것을 권고하는 연령층인 12∼23개월 어린이에서 59.4%, 24개월 이상에선 45.3%만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필수는 아니지만 질병 예방을 위해 권장하는 A형 간염, 뇌수막염, 폐구균의 예방 접종률은 대부분 절반을 넘지 못했다. 필수 예방 접종에 비해 질병 정보도 부족할뿐 아니라 1회당 접종 비용이 대략 적게는 4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까지 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필수 접종은 병원이 아닌 보건소를 찾아가면 무료로 해주지만 권장 접종은 반드시 병원에 가서 해야 하므로 서민 가정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국가 차원 무료 예방접종 확대해야=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맞는 기초 예방 접종에 비해 4∼6세쯤에 실시되는 추가 접종률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예방 접종이 부모 책임하에 관리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이환종 교수는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들이 예방 접종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지만, 이후 시간이 흐를수록 소홀해져 추가 접종 필요성이나 시기를 잊고 지나가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초 접종만으로는 어린이 건강을 위협하는 전염성 질환의 유행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적정한 시기에 반드시 추가 접종을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 교수는 "특히 홍역이나 DTaP의 경우 기초 접종만을 실시하다가 충분한 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추가 접종을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국가 차원의 예방접종 보장 범위가 확대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우선적으로 6세 이하 어린이들의 무료 예방 접종 및 등록 사업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런데도 올 7월부터 시행되기로 했던 이 사업은 정부의 예산 문제로 계속 미뤄지고 있다. 고려대 천병철 교수는 "예방접종 보장 범위가 확대되면 국가 차원에서 어린이 예방 접종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므로, 예방 접종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디포뉴스 제휴사-국민일보 쿠키뉴스 민태원 기자(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