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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중증정신질환 치료제도’ 개선 3대 방안 촉구한다

최근 수 차례의 길거리 칼부림 사건과 대전에서의 교사 피습 사건 등에 정신질환과의 연관성이 언급 되면서 자칫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더 심해지고 정작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치료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수년 전 많은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안인득 사건과 정신과 전문의 피살 사건이 연쇄적으로 벌어진 이후에도 제도적 개선은 전혀 없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 환경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시국에 감염 예방을 명분으로 급격하게 진행된 시설 규정 강화로 인해 지난 2-3년간 유수의 정신과 병원들이 경영난으로 폐원했으며, 전국적으로 1만개가 넘는 정신과 입원 병상이 단기간에 사라졌습니다.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대로 지역 사회 정신 보건 현장에서는 급격한 제도 변화에 따른 부작용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활과 거주 등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추진된 탈원화 정책은 그 취지와는 달리 수많은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회의 여기저기에 방치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제안한 국민안심입원제도와 국민안심치료제도의 정착을 위한 3대 내용을 지지하며,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보호의무자 의한 입원 폐지 ▲법과 제도 정비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 시행 등을 촉구합니다.

첫째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환자의 돌봄과 치료에 대한 사회경제적 부담과 입원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담을 감당할 가족관계가 더 이상 견고하지 않다는 점으로, 무한한 부양의 책임을 짊어질 수 있는 보호의무자로서의 가족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입·퇴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족간의 갈등은 지지체계의 붕괴를 낳고, 이는 정신질환의 지속적인 치료를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최근 전체 병상 수가 급감하면서 입원 가능한 병원을 찾아 헤매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병원이나 응급실을 수소문하는 일 ▲대기 장소에서 환자의 이상 행동을 막아내는 일 ▲퇴원하겠다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환자를 설득하는 일도 가족 없이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은 신체적, 정서적 위험에 처하거나 환자 돌봄을 위해 자신의 생계나 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고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으로 환자의 적절한 조기 치료 역시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둘째로 국가는 인권적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정신보건의 현장과 현실의 문제들,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실현 가능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인권 보호와 병동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성급하게 시행됐던 제도들로 인한 급격한 치료 환경의 변화는 오히려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와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제도는 목적한 바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가 병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에 반하더라도 조기의 적극적인 치료적 개입이 매우 중요합니다. 급성기의 증상이 입원과 약물 치료 등으로 완화되면 환자 스스로도 병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현실적인 판단 능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자유가 치료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하고 공허한 구호이며, 오히려 스스로 올바른 결정을 하기 힘든 질병 상태인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좀 더 잔인한 방식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치료가 인권입니다. 급성기 치료를 위한 입원 병동에 대한 지원과 함께 사회로 바로 복귀할 수 없는 만성적인 정신질환자들이 병원 안에서 사회 복귀를 위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등의 인프라를 지원하는 제도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정신 보건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법과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합니다.


셋째로 중증 정신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의 시행이 필요합니다.

환자의 증상이 악화되기 전 조기 발견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와 치료 체계를 만들어야 하며, 이송과 입원 과정 등에 필요한 정신응급체계를 조속히 구축하고, 퇴원 이후에도 국가 책임 하에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외래 치료 명령 제도를 수정 보완해야 합니다.

지금의 입원 제도로는 자타해 위험이 명확하지 않은 조기 정신증 상태의 환자들이 증상이 악화돼 위험해지기 전에 제대로 치료받기 어렵습니다. 

자타해 위험이 확인돼야 이송과 입원이 가능한 현재의 제도는 입원 치료가 정신 증상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한계와 모순을 가집니다. 

실제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범죄 피의자가 되어 수감되는 경우도 많이 있으며, 그런 일들이 반복될수록 환자들은 더 큰 편견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더 이상 이런 정신질환자의 응급 후송과 비자의 입원 결정 과정, 외래 통원 치료의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일 없이 국가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입·퇴원 과정에서 행정적·절차상 조력을 제공해야 하는 정신보건인력과 소방관·경찰관에 대한 신체적·심리적 안전 확보 방안을 비롯해 인력 충원과 근무 시간외 수당 지급 등 현실적인 지원책 역시 구체적으로 검토돼야 하며, 이송 및 입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적 문제에 대한 보호장치도 마련돼야 합니다.

탈원화는 무작정 병원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병원에서 벗어난 정신질환자들의 재활, 거주 등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세밀한 준비와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국가는 정신질환자의 돌봄과 치료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지 말고 그 발견과 이송, 재활과 거주에 이르는 인프라 구축에 정신 보건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법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기를 촉구합니다.

*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