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기초과학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기본기에 충실해야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고, 실수도 줄일 수 있다는 조언이다. 국내 제약계에서 가장 큰 화두인 ‘오픈이노베이션’의 활성화에는 유교문화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지적도 나왔다.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배진건 상임고문(박사)은 2일 서울 그랜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혁신 신약개발의 전망 및 Breakthrough 전략 국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이 밝혔다.
배 박사는 “신약개발에는 12년 이상이 걸리고, 비용도 1조7000억원
가까이 들어간다. 하지만 성공확률은 0.02%에 불과하다”며 “성공확률이 이렇게 희박하다면 제약·바이오산업은 실패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고 운을 뗐다.
BASIC이 중요하다는 견해다. ‘Biology, Analysis, Science, Innovation, Chemistry’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신약개발은 기본이 뼈대라는 것이 배 박사의 철학이다. 무엇보다 과학(science)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한다. 연구동향이나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Analysis)해야 하며, 창의(Innovation)가 모든 개발과정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배 박사는 피력했다.
배 박사는 또 “과학은 의심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며 “최근 발생한 인보사(코오롱생명과학) 사건도 의심부족이 원인이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지나칠 수 있는 것으로부터 큰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 배 박사는 본인의 경험을 회고했다.
배 박사는 “미국에서 박사후(Post-Doc)
연구원 과정에 있을 때 경험한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보석줍기’였다”며 “다른 사람들은
잘 보지도 않는 저널에서 건진 것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는 ‘아라키돈산’ 대사물질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서 실험을 재현했을 때 이 대사물질이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배 박사는 연구과제를 버리기보단 철저한 탐구를 선택했다.
배 박사는 “우선 실험에서 항상 사용하던 아라키돈산의 구입처가 뉴잉글랜드원자력(NEN)에서 아머샴(Amersham)으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두 제품을 자세히 비교해보니
NEN은 에탄올 솔루션으로 공급하고, 아머샴은 디메틸술폴시드(DMSO) 솔루션으로 공급하는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배 박사는 ‘에탄올을 함유하는 아라키돈산을 사용할 경우 대사물이 생기고, 에탄올이 없는 아라키돈산을 사용하면 대사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대사물은 에탄올과 아라키돈산이 공통분모’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논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Carcinogenesis’라는 당시 유명하지 않은 저널에서 스웨덴팀의 연구결과를 발견했고, 여기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발견을 토대로 향후 배 박사는 결정적인(Killer) 실험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배 박사는 “이 경험을 통해 데이터는 중립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해석에 따라 버려질 수도 있고 보석이 될 수 있구나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빅보스(big boss)와 마켓은 이런 킬러 실험을 원한다. 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킬러 실험을 디자인하고 가설을 증명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연구과제가 진행되려면 킬러실험에서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배 박사는 바이오벤처가 성공하려면 3가지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글로벌화 할 수 있는 제품 ▲탄탄한 지식재산권(IP)이 꼽혔다.
신약개발과 관련해서는 '천천히 서두르라'고 당부했다.
배 박사는 “’festina lente’는 중세 연금술사들의 좌우명이다.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뜻으로 논리적으로는 모순적”이라며 “그러나 전후 좌우를 모두 따져보면서 서두르라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그는 “신약 개발도 마찬가지”라며 “이 단계에서는 과학적 근거(Scientific rationale)와 핵심 우수성(Core excellency) 등을 강화하고, 전후좌우를 잘 살피면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플로어에서는 "한국이 오픈이노베이션에 열악한 국가라는 평가가 있다.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배 박사는 흥미로운 답을
내놨다.
배 박사는 “유교문화가 걸림돌이다.
Hierarchy(위계질서)가 뚜렷하기 때문”이라며 “이를테면 국내에서는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2011년에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하기 좋았지만 지금은 어려워졌다. 환경이 좋아져서 ‘내 기술 내가 개발하지’라는 생각이 팽배한 듯 하다”며 “’공유하기보다는 '내가
많이 먹겠다'는 잘못된 생각도 있다. 오픈 마인드가 부족한 듯하다”고 진단했다.
마지막으로 배 박사는 “국내에서는 ‘(연구에) 두 번 실패하면 너는 아웃’이라 생각 역시 존재한다"며 "이런 부분이 오픈이노베이션을 힘들게 만든다”고 문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