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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죽음 돕는 의사들…연명의료 결정에 의료진도 스트레스

죽음에 대한 교육 및 사회 인식 변화 시급

이제 막 시행 5개월을 넘긴 연명의료결정제도는 당초 환자의 죽음 결정권을 존중하는 취지로 마련됐으나, 다소 허술한 법 내용으로 의료 현장의 혼란을 가중하며 의료진의 방어적 태도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죽음에 대한 보다 진지한 성찰과 더불어 의료 현장을 반영하는 현실적인 법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28일 오전 9시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 유일한홀에서 열린 2018년 대한종양외과학회 연수강좌에서 충남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박소영 교수가 '의료현장에서의 연명의료 결정법 이해' 주제로 발제했다.



환자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고 자기 결정을 존중해 인간의 존엄 · 가치를 보호하는 취지로 제정된 호스피스 ·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근거한 연명의료결정제도는 2월 4일 시행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고, 오는 2026년에는 노인 비율이 무려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여기에 더하여 진단 · 의학 기술이 발전해 생존율이 향상했고, 인간다운 삶의 마무리에 대한 우려가 증가하면서 동 법안의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을 흔히 존엄사법으로 일컫지만, 존엄사법은 의사의 조력자살과 소극적 안락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환자가 연명의료를 지속하길 원한다면 인간으로서 존엄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기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아니다."면서, "법이 마련되기 이전, 의료현장의 주요 딜레마였던 치료 중단이라는 윤리적 이슈가 있었다. 보라매 병원 사건과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이 가장 대표적 사례이다."라고 말했다.

보라매 병원 사건은 검찰이 환자의 배우자와 의사 및 3년 차 수련의를 살인 혐의로 기소한 사례이다. 1997년 12월 뇌수술에 따른 뇌부종으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는 환자의 배우자는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고 회생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퇴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담당의사는 퇴원 시 사망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설명하고, 퇴원 후 사망에 대한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귀가 서약서에 서명을 받고 퇴원시켰으며, 피해자는 퇴원 후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지 5분 만에 사망했다.

대법원은 담당 전문의 · 주치의의 살인방조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은 2008년 2월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 여부를 확인하려고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과다 출혈로 뇌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 할머니의 평소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존중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201일간 더 생존하다가 사망한 사례이다.

김 할머니는 생전 '소생하기 힘든 상태의 경우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의사 표시를 해왔다. 보호자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행사에 반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주치의 · 병원은 김 할머니의 기대여명이 상당 기간 남았고, 회복 가능성이 3~5% 정도 남아 있다고 판단해 연명치료 유지를 강조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중단인 원심 결론을 받아들여 환자 대리인의 인공호흡기 제거 요청을 인정했고,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기준을 선언했다.

연명치료 중단의 허용 기준에서는 ▲환자가 의식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한 주요 생체기능을 회복할 수 없어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하며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 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존엄성 · 가치를 해하기 때문에 ▲예외적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박 교수는 "금년 4월 5일 기준으로 스스로 연명의료계획서를 못 쓴 환자 중 2천 1백여 명이 가족의 뜻에 따라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했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기 위해 만든 이 법의 정신이 과연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라고 했다.

사전돌봄계획(ACP, Advance Care Planning)은 진료과정 중 환자의 자율성과 최선의 이익이 구현될 수 있게 의료진 · 환자 측이 향후 수행할 진료의 목표 · 구체적 방식을 자율적으로 상담하는 과정으로, 질병 조기에 시작할 수 있다.

질병 진행상황에 따라 담당의사는 선택이 가능한 진료사항의 장 · 단점에 대한 정보를 환자 측에 제공해 환자 측 판단을 돕고, 내용을 의무기록으로 남긴다. 이는 특정 치료를 거부하는 것도 포함된다.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을 이해하려는 담당의사는 ▲이행 대상 환자인지 판단하고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에 관한 해당 환자 의사를 확인한 후 ▲이행해야 한다.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은 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기록한다. 

△환자의 명시적 의사가 있는 경우 의사 · 보호자 · 환자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토대로 의사 2인이 확인하고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지만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환자가 평소 연명의료를 원치 않았다는 가족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 및 의사 2인의 확인이 필요하다. △환자 의사를 추정할 수 없는 경우 '가족 전원 합의'와 의사 2인의 확인이 요구된다.

박 교수는 "86세의 COPD 여성 환자 사례가 있는데,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던 중 발열과 의식 저하,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에서 인공 삽관 후 중환자실에 입실했다. 급성 신부전과 고칼륨 혈증이 동반돼 신대체 요법이 필요한 상황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의 아들 2명이 어머니가 평소에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며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했다."라면서, "환자의 과거 의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 전원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가족 관계 증명서에는 아들 외에 두 명의 딸이 더 존재했다. 딸들은 너무 멀리 살고 오래 전에 연락이 두절돼 이 경우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 이행을 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이어서 박 교수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고 환자가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경우 환자 가족 전원 합의를 통해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연명의료결정법에서 합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이 경우 녹음 · 녹취 방법도 인정된다."라고 덧붙였다.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 금지)은 심정지라는 특수 상황에 대해 활용되는 서식으로, 연명의료결정법에 의거해 보호받을 수 있는 결정이 아니라고 했다.

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에 따르면, 연명의료 대상은 기존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술이 대상으로 추가됐다. 또, 말기환자의 대상 질환 제한을 삭제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대상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호스피스전문기관의 말기환자가 임종과정에 있는지 판단을 담당의사 1명 판단으로 갈음할 수 있게 했다.

처벌 수위도 완화됐다.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 판단은 전문적 의료 영역이어서 임종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의사 2명이 일치된 판단을 했다면 이행 후 사망 여부 등 결과가 처벌 대상이 아님을 명확히 규정했고, 처벌 수위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하향했다.

박 교수는 "얼마 전 피부양자와 형제 · 자매가 없는 42세 남성에게 오늘을 못 넘길 것 같다고 설명하고 사인을 받았는데, 젊은 남성에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이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면서, "환자 · 보호자뿐만 아니라 의료진도 죽음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죽음에 대한 교육 및 인식 변화 없이 연명의료결정법이 사회에 스며드는 건 다소 어려운 과제가 아닌가 싶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