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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난한 산모 · 아기에 헌신…조산사는 사라지는 직능?

저출산 시대 수용해 산모가 신뢰하는 조산사가 돼야

심각한 저출산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합계출산율의 경우 출산율 호황기를 누리던 60년대 6.0명에서 2017년 1.05명으로 급격히 낮아지는 등 매년 최저치를 경신 중이다. / 한편, 해방 이후 출산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갔으나 의료보험 제도가 미비한 탓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산모들은 고가의 병원비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여기에 가난한 산모들의 출산을 성심성의껏 도왔던 이들이 있다. 사회 격변기 속에서 조산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 국민건강 증진과 모자보건 환경 향상에 크게 기여했던 조산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 메디포뉴스는 조산사로 한평생 몸 바쳐 일했던 대한조산협회 이옥기 회장을 12일 오후 2시에 협회 회관에서 만나 조산사 역사를 비롯해 조산 제도, 직업 전망, 발전 방향 등을 물었다. [편집자 주]



대한조산협회 이옥기 회장은 지난 29대 · 30대 · 41대에 이어 제42대 대한조산협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회장을 맡았고, 2015년도에 다시 회장을 맡아 연임했다. 

이 회장은 "조산사로 일하면서 3만 5천여 명의 아이를 받았다. 2년간 보건소에서 근무했고 탁아원도 운영했다. 간호조무사 학원도 12년간 운영해 3천여 명의 간호조무사를 배출해냈다. 2006년까지 조산사로 일하다가 65살이 조금 안 되어 아이 받는 것을 그만뒀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서 "협회에 소금과 빛이 되겠다는 취지로 41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원들이 기댈 공간을 마련하고자 40년 된 낡은 회관을 매각하고, 빚을 내 현 회관을 매입했다. 이곳에서 실 회원을 정리하고, 새 회원을 등록받고, 보수교육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 가난으로 얼룩진 60년대, 높은 출산율로 최고 호황기

출생률이 최고치를 찍었던 60년대에 하루 15명을 받은 적도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당시 대구 공단 지역에 살았는데 다들 가난해서 병원에 못 갔다. 돈 없는 사람들이 조산사를 집으로 불렀다. 가난한 집에는 미역이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몸조리를 위해 섭취할 뭇국을 끓이기 위해서 무, 참기름 등을 가방에 넣어가야 했다. 심지어는 집에 촛불도 없었다."라면서, "응급상황 시 임산부를 싣고 병원에 가야 해서 항상 차를 몰고 다녔다."라고 말했다.

조산사는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 이전까지 출산 호황기를 누렸다. 전 국민 의료보험 달성 이후 보험 혜택을 받아 병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조산사를 찾는 이들이 점차 줄어들었다.

이 회장은 "60년대에 유난히 아이를 많이 낳았다. 그런데 당시 조산사들이 가방을 들고 가정 방문하여 아이를 많이 받으니까 소독 문제가 불거졌다. 이 문제를 우리가 육영수 여사에게 건의해 조산소 개설 규정이 의료법에 포함됐다."라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으며, 조산사를 집으로 부르는 인식 탓에 아이 머리가 나올 즈음에 연락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밤중에 자다가 연락이 오면 급한 마음에 가방만 들고 오토바이 운전자 뒤에 탔다. 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이미 아이를 낳았다고 돈이 든다면서 돌아가라고 했다. 일 사정으로 운전자가 이미 가버린 상황에서 통행금지 때문에 파출소로 가야 했다. 손에 도장을 찍은 채 그렇게 밤길을 걸었다."라고 말했다.

높은 출산율과 가난으로, 정부는 산아제한 정책을 지속했다. ▲60년대에는 한 가정의 적정 출생아를 아들 둘 · 딸 하나인 3명으로 제시했고 ▲70년대에는 '딸 · 아들 구별 없이 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낳고 알뜰살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이 회장은 "80년대 기준 조산원은 전국 1천여 곳, 조산사는 9천여 명을 기록했다. 그런데 90년대 이후부터 출산율이 하락했다. 2006년도 이후로는 조산사가 아기 받는 것을 못 봤다."라면서, "조산사 수도 적다. 회장에 취임하면서 회원 수 정비를 해보니 2017년 기준 면허 가진 사람은 1만 명인데, 실 활동 회원은 5백 명 정도이며, 개업한 조산원은 전국 16곳뿐이다. 또, 실 활동 인원 대부분은 순수 조산사가 아닌 간호사들로, 우리 협회에 등록해 보수교육을 받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출산한 이들이 잘 봐달라는 편지만 남기고 아이를 조산원에 버렸다고 했다.

이 회장은 "조산원 문 앞에 낳은 아이를 놓고 가버린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에 보냈다. 보낸 아이들이 입양돼 20~30대로 성장하여 나를 찾아왔다. 눈물이 났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서 너무 죄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작년에도 한 명의 청년이 이 회장의 집을 찾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아이는 35살이고,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했다. 출생증명서를 들고 엄마를 찾는다고 했는데, 모른다고 답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옛날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홀트에서 아이들을 외국으로 많이 보냈다. 그러니까 한 달간 약 150명 내지 200명을 받으면, 그중 3~4명의 아이가 버려지는 케이스였다."라면서, "교도소 수감자가 아기를 낳기 위해 조산원을 찾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홀트로 보낸 후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 그런 사례가 옛날에 있었다."라고 했다.

◆ 분만은 병이 아닌 출산, 산모가 신뢰하는 조산사 돼야

전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조산사였다고 자신했다.

이 회장은 "새로운 기계가 외국에 출시되면 내가 가장 먼저 사들였다. 산모들이 고생을 덜 하도록 미국, 일본 등의 일류 기계를 사 왔다."라면서, "조산사로 일하면서 의료사고는 한 번도 없었다. 조산사는 지도의사 지시하에 아기를 받을 수 있는데, 내 지도의사가 아주 유명한 전문의였다. 응급 상황에서는 산모를 차로 운반해 바로 수술실로 들어간다. 당시 지도의사도 유명했고, 나도 유명해서 서로 신뢰 관계를 갖고 일했다."라고 말했다.

3만 5천 명을 받았는데도 의료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무리하게 안 했다. 요즘에도 배만 만져도 잘 낳을 수 있는지를 금방 안다. 손 · 얼굴만 봐도 그게 나타난다."라면서, "산모 고통이 덜하고 피도 적게 나올 수 있는 약이 있다. 조산사는 기본 약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필요한 약을 쓰겠다고 지도의사에게 리포트해 오더를 받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저출산 시대를 수용하여 산모들이 신뢰하는 좋은 조산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회장은 "분만 이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부모와 소통해야 한다. 즉, 상담사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어떻게 하면 조산사가 더 발전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받아 맡은 일을 보람있게 해 나갈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조산사라는 직업이 존폐의 갈림길에 놓여있다고 우려했다.

이 회장은 "조산협회 회원 수가 점차 감소하니까 간호협회와 함께 하라고 보건복지부가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다. 유사단체여서 그렇다. 그런데 면허는 우리가 더 상위여서, 들어갈 수가 없다. 조산사는 간호사 면허를 받은 상태에서 조산사 면허를 취득하기 때문에 간호사와는 다르다."라면서, "일본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국가에서는 조산사 단독으로 개업하지 못한다. 의사가 있는 캠프에서 조산사들이 모여 아기를 받는다. 또, 일본도 조산사 수가 많이 줄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간호협회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을 흐렸다.

일본의 경우 아이 한 명당 약 5백만 원이 지급된다고 했다.

이 회장은 "지방정부에서도 1백만 원을 지급한다. 모유 수유 케어의 경우 30만 원을 준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모유 수유를 어려워하면 조산사가 옆에서 케어해줘야 한다."라면서,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정상분만을 보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만은 병이 아닌 출산이라고 했다. 

이 회장은 "보험수가가 너무 낮다. 차라리 수가를 하지 말고 바로 분만한 사람에게 지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한다. 지금은 포괄수가여서 아무리 해도 안 된다."라면서, "적어도 자연출산의 경우 3백만 원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2백만 원을 지급하고, 지방정부가 1백만 원을 주는 형태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산전 산후 보험수가 적용해야" 건보법 개정 추진

타 협회의 임원 연임 규정을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1 · 2회에 한정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대한조산협회 정관에서는 회장, 부회장 및 이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고, 연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즉,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서 회장의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이 회장은 "전 회장 때 1회 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고, 회장직을 10년간 계속했다. 이번에 정관 개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부분을 다시 넣고자 하며, 최대 4년 할 수 있도록 임기 내 정관을 만들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정관 작업에 이어 실 회원 수를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수천 명의 회원들이 등록돼 있는데, 정리해보니 실제 면허를 가지고 활동하는 협회 회원들은 5백 명 정도이다. 실제로 협회에서 보수교육을 받는 회원은 3백 명을 약간 넘긴다. 이 사람들을 교육 · 관리하여 필요 시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인력이 돼야 한다. 또한, 한해 20명가량의 새 회원이 등록되는데, 아이를 받으려면 적어도 10년간 기술을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1년에 들어오는 전체 회비가 1천만 원도 안 된다. 이 때문에 협회 운영이 어렵다. 협회 건물 임대료로 겨우 해나가고 있지만, 운영이 위태로워서 회비를 20% 인상할 계획인데 회원들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라고 했다.

이전부터 협회에서는 조산원 운영 실태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현지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회장은 직접 전국 조산원을 방문하면서 모든 것을 잘 갖춰놓고 하는지를 살펴봤다고 했다.

이 회장은 "조산원은 전국 16곳에 불과하며, 지방에는 부산 1곳과 대구 1곳밖에 없다. 조산사들이 겁이 나서 못 하는 거다. 의료 사고를 무서워 해서 의사들이 지도도 안 해준다."면서, "지시를 의사에게 받아야 하는데 지도의사가 누구인지 우리는 파악조차 못 한다. 이를 관장해야 하는데, 협회에서는 회원등록밖에 안 된다."라고 했다.

이어서 이 회장은 "가정분만을 법으로 올려달라는 회원들이 몇 있는데 여기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온갖 장치를 구비해놓은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사고가 난다. 돈을 더 받는 문제도 발생하는데, 온당치 않고 법에 합당한 것도 아니다."면서, "산전 산후 보험수가는 가능하다. 그런데 회원이 늘어야 건강보험법을 개정할 수 있다. 회원 수가 적어서 정부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작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