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약사의 역할을 단순한 ‘조제’ 업무에서 벗어나 의사와 환자 사이의 ‘중재’역할이 필요하며, 환자안전관리의 구성원으로서 약사도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상희 의원ㆍ박인숙 의원 주최로 열린 ‘환자안전을 위한 약물관리, 이대로 좋은가?’ 정책토론회가 4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정책토론회는 ▲약과 환자 안전(김정미 삼성서울병원 약제부장)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기관 약료서비스(이주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 ▲환자안전 약료서비스를 위한 법제도 고찰(권경희 동국대학교 약학대학 학장) ▲패널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인사말에서 남인순 의원은 “병원에 약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병원의 세부사항은 말할 수 없지만 이와 관련된 법안을 작성했고,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심평원, 보건복지부 등이 움직여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필요한 법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은숙 한국병원약사회 회장은 “최근 취급 부주의에 따른 주사제 오염으로 인한 신생아 사망 사건을 계기로 약물관리 부작용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며, 약물 관리의 미비가 환자안전에 매우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며 “오늘 토론회를 통해 약과 환자안전, 환자안전을 위한 의료기관 약료서비스 및 법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정부 및 관련단체 전문가들을 모시고 환자안전을 위한 약물관리를 함에 있어 문제점과 개선점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며 이번 토론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병원 내 과도한 조제업무로 인해 처방검토ㆍ중재 업무 못해

첫 번째 주제발표를 맡은 김정미 삼성서울병원 약제부장은 환자안전사고 중 약물오류가 2위를 차지했다며 이를 줄이기 위해선 무엇보다 의료진과 환자의 사이에서 처방을 중재하는 약사의 업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약제부장이 약사의 처방 중재가 필요한 예시로 ▲항응고약물 ▲항암주사제 ▲중환자를 들었다.
이에 대해 김 약제부장은 “현재 뇌경색, 기계판막 환자 대상으로 항응고약물을 투약해야 하는 환자는 대략 1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항응고약물을 복용할 때는 음식,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환자 개인마다 약물 반응도 각기 다를 수 있다. 우리 병원에서는 항응고약물 처방중재를 위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의 처방중재 서비스를 환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수가는 책정되지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며 약사의 처방중재 과정이 의료행위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항암주사제는 약물의 독성이 강해 함께 투여해야 하는 약물을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 역시 약사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중환자는 사용하고 있는 진정제가 발작의 위험이 있어 진정제로 종류를 관리하는 것 역시 약사의 중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 약제부장은 삼성서울병원 약제부를 기준으로 82%가 조제업무에 치중됐고, 약 18%만이 처방검토ㆍ중재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김 약제부장은 “미국에서는 조제 업무를 담당하는 technician(기술자)가 따로 있어 약사가 처방검토ㆍ중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전수 바코드 조제와 자동화가 이뤄져 있고, 가루약 조제가 없다. 대부분 매뉴얼대로 조제가 이뤄져 human error가 발생할 염려가 없다”며 미국 병원 내 약사 인력의 현황을 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병원에 대해서 김 약제부장은 “우리 병원만 하더라도 하루에 가루약 조제가 1,500-1,800건 정도가 이뤄지고 있다. 가루약 조제에만 최소 약사 인력 2명을 배치해야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이 해결된다면 약사는 중재 업무에 더 치중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약사 조제수가만 인정돼
김 약제부장은 우리나라 수가 체계와 일본의 수가체계를 비교하며, 우리나라 수가는 조제수가만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김 약제부장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제수가는 ▲입원환자 조제복약지도료 1,340원/일 ▲퇴원환자 조제로 210원/일 ▲주사제 무균조제료(일반 주사제 2,430원/건, 항암 주사제 4,600/건, 고영양 수액제 5,750원/건) ▲고영양수액자문(팀수가, 임상약동학자문)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조제수가에만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약사가 상시 배치돼 있는가 ▲의료안전대책 ▲감염방지대책 ▲병동약제업무실시 ▲장기이식, 조혈모세포이식 관여 ▲암환자지도 ▲당뇨 투석 예방지도 ▲약제관리지도료(상근 2명 이상) ▲영양지원팀 등을 기준으로 수가제도가 다원화돼 있다.
◆약사 신약선정과 약물 조정 과정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김 약제부장은 병원에서 약사의 업무로 ▲의약품의 선정 및 구매 ▲의약품의 보관 ▲처방검토(중재) ▲투여 ▲모니터링이 있다고 제시했다.
의약품 선정 작업에 대해 김 약제부장은 “진료과에서 약을 신청하면 병원에서는 약사운영회를 통해 신약을 선정하게 된다. 이때 제약사에서 가져오는 약에 대한 정보는 객관적 자료로 보기 힘들다. 때문에 우리는 1,2,3차 문헌조사를 통해 evidence가 명확한 약물인지 검토하고, ▲다른 약물과 비교해 약효가 우수한지 ▲약물의 흡수, 대사 등에 있어서 우수한 부분이 있는지 ▲부작용이 적은지 ▲경제성이 있는지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약사 직능 중 강화해야 될 업무로 제시된 처방중재는 ‘약물 조정(medication reconciliation)’개념으로 소개됐다. 약물조정이란 환자가 입원했을 때 입원 전 복용하던 약물부터 파악해 입원 중은 물론 퇴원 후 귀가 혹은 다른 병원으로 전원 할 때까지의 총괄적인 약물관리 업무를 뜻한다. 약물 조정 과정의 효과로 김 약제부장은 “약물 조정 과정을 통해 약물 부작용 등으로 인한 30일 이내의 계획되지 않은 재입원율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연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두 번째 주제발표에서 약료 서비스의 개념과 종류를 설명했다.
이 교수의 발표 내용에 따르면, 약료란 약사가 환자의 증상 경감, 해소, 질병의 관리 및 치료, 질병, 예방,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수행하는 한편, 명확한 임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개별 환자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요법을 책임감 있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약사가 이러한 약료 서비스를 펼칠 수 있는 분야로는 ▲감염관리약료서비스 ▲임상약동학 자문 서비스 ▲환자사담 ▲항응고약물치료 상담서비스 ▲의약정보서비스 ▲영양지원 약료서비스 등이 제시됐다.
특히, 이번 이대목동 병원 사태로 감염관리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약사 역시 이에 대한 인력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 교수의 발표내용에 따르면, 감염관리 약료서비스는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Antimicrobial Stewardship Program;ASP) ’로 운영될 수 있다. ASP는 약사가 환자의 임상적 상황을 고려해 최적의 항생제 선택 알맞은 용량ㆍ용법으로 적절한 기간 동아 투여해 불필요한 항생제 사용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이 교수는 “약사의 처방 중재 시행 한 달 째 항생제 처방 개선율이 32%였고, 일부 제한적 항생제 사용 처방 중재로 사망률이 11% 감소함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약사 수가는 이미 행위수가에 반영돼 있어…약료 개념은 국민적 공감대 필요

이날 패널토론회에서 윤병철 보건복지부 약무정책과장은 임상약사로서의 약사의 직무 강화를 주문하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약료 개념을 약사법에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약무정책과장은 “약사법에 약료 개념이 도입되는 데 있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정부로선 이와 관련된 것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 220병상 규모를 갖추고 있는 병원에서 조차도 대부분 약사는 1명 정도 채용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약료 서비스 등을 펼치기 위해선 4-5명 정도의 약사 인력이 필요한데, 결국은 병원 경영상 인건비 문제와 직결된다. 병원과 우리가 이 인건비를 나눌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윤 약무정책과장은 수가는 의료의 질로 평가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패널티를 주는 방향보다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논의해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현행 전체 행위수가에 약사에 대한 수가도 반영돼 있어 오늘 제기된 수가 지적에 대해서는 보험급여과 등과의 상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또한 병원에서 약사가 팀의료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약사 내부에서 보완해야 될 사항도 있다고 언급했다.

정은영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김상희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약사를 환자안전위원회와 전담인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환자안전관리법을 적극 지지하며 이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 의료정책 과장은 ▲환자안전법 시행규칙에 약사를 포함 ▲수술실, 고위험약물, 신속대응체계 등에 관한 환자안전수가 확대 ▲전담약사 수가 가산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정 의료정책 과장은 “지난해 환자안전수가가 출범할 때 환자안전수가에 대한 로드맵이 발표됐다. 올해 수가는 작년 건정심에서 통과돼 당장 바꿔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술실, 고위험약물, 신속대응체계에 환자안전수가가 확대될 것이고, 앞으로 종합계획이 수립되면서 가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정 과장은 “이대목동사건이 터지면서 약물관리와 약사역할에 대한 내부적 검토가 있었다. 신생아무균조제료를 주겠다는 것과 이를 수가에 포함하겠다는 내용이다. 휴일에 전담약사를 두는 경우 가산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현재 시행은 안 됐지만 검토 중이다. 올해 안으로 수가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환자안전을 위해 병원에 전문약사 인력 반드시 필요
홍상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부실장은 “우리 병원만 하더라도 의사 4팀 당 약사 인력은 1명이 배치돼 있다. 의사들이 모든 복잡한 치료 약물과 고가 신약을 모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전문인력인 약사 인력이 필요하나, 부족한 편이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임상약사의 역할로 ▲회진 참여 및 약물 관련 정보 제공 ▲신기능 및 간기능 장애 환자에서의 약물 용량 조절 ▲복합적인 약물요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약물 상호작용과 부작용의 감시 및 예방 ▲경구 섭취가 어렵거나 영양 요구량을 변경해야 하는 환자에서의 영양 평가 및 공급 ▲환자에게 투여되는 다수의 정맥투여 약물간 배합금기 및 안정성 확인을 제시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이대목동 신생아 사건 원인 중 ‘병원 내 전문약사의 부재’를 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 사건은 예방 가능했던 환자 안전사고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히 의료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보건 시스템 전반의 문제다. 전문약사 인력이 병원에 갖춰져 있지 못한 것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6년제 약학대학원 제도로 인해 전문약사 인력이 나오지만, 의료진과 환자를 중재할 수 있는 내용이 커리큘럼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약물관리를 위한 ‘네비게이터’ 역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