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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창간 특집]불변의 가치, 의료의 본질, 의사의 역할 지켜져야

필자는 지난해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 장면을 보는 건 인간의 기계로의 종속화를 떠올려 괴로웠다. 상상을 초월한 알파고의 위력은 인간의 자존심에 타격을 가했고 짐짓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다. 미래 역사학자들은 2016년을 인공지능을 접한 인간들의 원년으로 기록할 것이다. 되새겨보면 의대 재학 시절에도 이러한 충격이 있었다. 단순한 엑스레이 사진으로 환자의 두뇌를 간접적으로 검사하던 것을,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직접 뇌구조를 관찰하게 됐을 때였다. 화면상에 비치는 뇌의 구조를 통해 신경분야에서 가히 폭발적인 진단 결과를 보여주었다. 차원이 다른 검사장치로 신경분야 의료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고 그에 따라 보다 과학적인 검증 기반으로 치료가 가능해져 ‘첨단’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았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았기에 추후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또다시 진보를 거듭하게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신경질환이 정복될 것 같았으나 더 많은 숙제를 남겼고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4차 산업이라 불리는 인공지능도 AI 도입을 비롯해 ICT 관련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봇물 터지듯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4차 산업의 물결이 너무 거세서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마치 낙오되고 도태될 것만 같은 분위기다. 자기 생업의 AI 대체 가능성을 따져보면서 불안해하고 회의와 좌절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시대의 변화는 거부할 수 없고, 대세는 선점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변화와 대세는 스마트폰 신모델이 나오면 재깍 교체하고 신박한 어플을 잘도 찾아내 사용하는 얼리어답터의 차원이 아니다. 방법론적인 게 아니라 기존의 질서와 관념을 바꾸는 것에 가깝다. 때문에 고민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새로운 문물에 대한 빗장을 한꺼번에 열었다가 예상치 못한 오류와 혼란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보건의료분야에서 말이다.

 

혹자는 말한다. 의료분야야 말로 4차 산업의 큰 수혜주가 될 수 있는데, 왜 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는 AI를 비롯해 ICT 관련 기술의 접목에 있어서 이다지도 소극적이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원격의료에 대한 줄기찬 반대 입장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긴 것 같은데, 결론적으로 우리는 4차 산업과 AI, 그리고 원격의료 등을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공 초월의 절대 원칙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촘촘히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분명히 내재해 있을 문제점과 폐단을 걸러놓고 시작하자는 것이다.

 

세상이 1차, 2차, 3차를 지나 4차 산업의 목전에 도달했다 해도 의료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 B.C.400년 전의 히포크라테스 시대에나 현대에나 마찬가지로 의료는 사람 대 사람이 원칙이다. 우리는 보통 아프면 의사에게 가서 진찰을 받아보라고 한다. 진찰에는 문진, 시진 외에도 청진, 촉진, 타진이 있다. 직접 한 공간에서 대면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최신식 화상모니터와 센서, 디바이스 등을 갖춘다 하더라도 정확도가 매우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보조적인 수단으로 제한적 부분적으로만 사용가능할 뿐이다.

 

AI와 원격의료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수준과 한계는 사실, 의사는 물론이고 환자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의료에서 정말 중요하게 여겨지는 ‘의사-환자간 라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게 “오늘 날씨가 어때?”라고 물을 수는 있지만 “내 마음이 어떨 거 같아?”라고 물을 순 없다. 혈색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는 자연광을 통해 봐야 정확히 알지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오히려 왜곡되게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온 인간들이기 때문에 자연의 방법을 선호하는 본능과 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4차 산업을 보건의료분야에 당장 실현하지 못해 안달 난 것 같은 일부 목소리가 있다. 원격의료의 경우 의료계와 충분한 대화 없이 정부와 산업계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왔다. 현 정부에선 원격의료를 폐기했다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여전히 많은 정치인들과 관련 업계 등에서 자꾸 편의성과 효율성이라는 다분히 산업적 가치를 내세워 원격의료를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원격의료가 영원히 이 땅에 발붙일 수 없게 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분야가 다름 아닌 의료이기 때문에, 갈 때 가더라도 안정적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의료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클릭 한번으로 주문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주문했다가도 마음이 바뀌면 취소하고 반품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사람 생명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실히 검증하고 나서, 의료인들 스스로 신뢰성 있고 정확하다는 근거를 수용할만한 시점이 되면 그때 시행하는 게 옳다.

 

별개로 개개 의료기관들이 AI나 ICT를 십분 활용한 의료서비스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어떤 병원에서는 이미 IBM의 암진단 시스템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ry·왓슨)’를 도입해 환자 진단에 활용중이다. 왓슨은 환자의 데이터와 각종 의료 데이터를 동원해 암 발견과 최적의 치료를 수행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하지만 오진 시 책임소재를 비롯해 관련 법률의 미비와 시스템 오류 발생 경우 등 커다란 문제도 상존한다. 때문에 ‘사람 의사’의 컨트롤 하에 왓슨을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게 현실적으로 마땅하다.

 

게다가,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가져온 연구결과의 축적물을 국내 환자에게 바로 적용한다는 점에서도 위험요인이 있다. 자칫 한국인들이 가진 질병에 대한 특이성이 간과되어 오진의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나라 데이타베이스를 축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국민에게 적용해나가는 것이 한국형 질환에 대한 신뢰도와 정확성 확보 차원에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늦었지만 왓슨 도입을 비롯해 개별 의료기관들의 새로운 시도들과 사례들이 모이고 축적되는 과정 자체는 그래도 매우 의미 있다. 진정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고, 의료계 스스로 필요성과 합리성의 근거를 확보해나갈 수 있다. 그 경험을 통해 4차 산업 시대 의료인의 역할 변화를 모색해나갈 수 있다. 의사의 자리를 일정부분 인공지능이 차지할 거라는 예측도 있지만, 정보의학, 참여의학, 스마트 의학, 시스템 의학 등으로 의사 역할이 다변화하리라는 예상 또한 수긍할 만하다. 만약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의료의 新질서, 개념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그 또한 연착륙해나갈 어느 정도의 말미를 줄 수 있다. 의료계도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에 있어 필요에 따라서는 과감하게 직면하고 돌파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차 산업 혁명시대 변화의 폭풍전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한 분야를 움직이는 것은 정작 그 구성원들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외부의 힘이나 제3자의 강요에 의해선 안 된다. 그 어떤 최첨단 기술도 사람을 위한 것,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의료의 본질이 간과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의료인의 고유 역할이 무시되어선 안 될 이유, 바로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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