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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ta


 

박 지 욱
제주시 박지욱신경과의원
신경과 전문의
<메디컬 오디세이> 저자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2006년, 2007년)

 

 

 

 

 

인슐린 독살 사건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는 조현병(Sc- hizophrenia)1) 치료를 위해 인슐린 쇼크(혼수) 요법(Insulin Shock(Coma) The- rapy)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인슐린 쇼크 요법이란 인슐린을 환자에게 주사하여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깨워 정신병 증상을 호전시키던 옛 치료법이다. 1927년에 고안되어 전기 경련 요법(Electrical Convulsive Therapy)이 나올 때까지 40년간 정신의학계에서 널리 사용하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치료법을 보면 혼수상태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환자들의 모습이 너무 끔찍해 저러다가 사람 잡을 수도 있겠다 싶을 지경이다. 혹시 인슐린을 반복 주사하거나 과량 주사하여 죽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혼수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환자들 중 인슐린 주사 때문에 저혈당 쇼크(hypoglycemic shock)에 빠진 환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통계에 의하면 1형 당뇨병 환자의 2~4%가 저혈당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하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2)

 

 

 


    
아니나 다를까, 영화  <메멘토>에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남편이 아내에게 인슐린을 반복 주사하여 아내가 죽는 장면이 있다. 아내가 남편의 단기 기억상실증을 믿지 못해 자기에게 인슐린을 반복 주사해달라고 부탁하는데, 주사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은 인슐린을 반복 주사하여 결국 아내를 죽게 만든다.
하지만 당뇨병이 없는 사람이 저혈당 쇼크에 빠진다면 이것은 우발적인 사고라기보다는 고의에 의한 인슐린 악용 사례로 볼 수 있을까? 

 

 

1922년에 캐나다 토론토의 반팅, 베스트, 맥클리오드 등이 세상에 내놓았던 인슐린은 불치병이나 다름없던 1형 당뇨병 환자들에게는 생명을 구해주는 명약이 되었다. 바로 그 이듬해에 노벨 생리-의학상이 인슐린 개발자들에게 수상된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큰 환영을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명약을 사용해 자살을 하려던 기발한 시도는 1927년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목적 달성이 쉽지 않아 3,000 단위(!)를 주사하고도 자살에 실패한 환자들도 있었다. 물론 빨리 발견되어 의학적 도움을 받았기에 목숨을 건졌을 것이다. 하지만 주사 후 고의로 방치해두거나 다른 방법을 추가한다면 분명 사정이 좀 달라질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블랙 북>에는 인슐린으로 동료를 암살하려는 의사가 등장한다. 그는 비록 실패했지만 1957년 영국에서 잡힌 살인범은 이 방법을 모방이라도 한 것 같다.

 

 


어느 세탁부의 죽음  

 

피해자는 서른 살의 건강한 여성으로 자신의 집 욕조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허우적대거나 몸부림 친 흔적조차 없었고 집 안에 있었던 남편은 사고를 몰랐다고 주장했다. 부검을 통해 당뇨병 환자도 아니었던 피해자의 몸에서 240 단위의 인슐린이 검출되었고, 집 안에서도 인슐린 흔적이 남은 주사기가 발견되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아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욕조에서 익사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간호사인 남편을 체포해 사건의 전모를 밝혔다.3) 이것이 최초로 알려진 인슐린 독살 사건이다.4~5)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백만장자  

 

 

 

 

1980년 겨울,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건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있었다. 48세 여인으로 역시 자기 집에서 혼수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되지 못하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져버렸다. 환자는 백만장자의 상속녀로 첫 결혼에 실패하여 두 아들과 함께 14년 전에 코펜하겐 출신의 법률가와 재혼하여 뉴잉글랜드 로드 섬의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봄에도 유사한 증상으로 입원했던 피해자는 원인 모를 ‘저혈당(hypoglycemia)’으로 진단받아 곧 회복되었지만 행운은 두 번 찾아오지 않았다.
뉴욕장로교병원(NYPH)의 의사들은 ‘약물 남용’이거나 ‘저혈당’으로 뇌 손상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봄에도 저혈당이 있었던 점, 남편이 의사를 고의적으로 늦게 부른 점, 두 사람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점 그리고 1,400만 달러에 이르는 재산 등이 살해 동기가 된다고 보았던 전 남편의 아들들은 계부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다음해 여름, 검찰은 2회에 걸친 살인 미수 혐의로 남편인 클라우스를 기소했다.

 

 

 


이 두 사람은 이혼하면 남편에게 단 한 푼의 위자료도 지급하지 않는다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결혼한 상태였는데 위자료는 없지만 유산은 받을 수 있어 아내와의 불화를 겪고 있던 남편이 아내를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있다고 검찰은 보았다. 인슐린 흔적이 남은 주사기, 약이 든 검은 가방 등을 남편에게 불리한 증거로 채택되었다. 결정적으로 피해자의 뇌 손상이 ‘인슐린 주사’ 때문이라는 하버드 의대 교수의 증언으로 배심원들로 하여금 유죄 평결을 얻어 남편에게 20년 형이 내려졌다. 
하지만 항소심에서는 하버드 법대 교수들의 도움으로 ‘약물 남용’이 뇌 손상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제시되었고, 남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던 일부 증언들이 번복되었다. 또한, 불법적으로 확보된 일부 결정적 증거물들의 증거 능력이 상실되어 이번에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사건 발생 7년 만에 두 사람은 재산 분할 없는 이혼을 했고, 21년 후인 2008년에 아내 서니(Sunny)는 28년간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벗어나 흙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아직도 사건의 진실은 오리무중인 채로 남아있다. 

 

 


인슐린의 두 얼굴 

 

법의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인슐린을 이용한 살인은 대략 50건 정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살인자들의 대부분은 짐작하듯 의료인들이다. 인슐린에 대해 잘 알고, 사용도 익숙하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93년 영국에서 체포된 살인범은 40년 베테랑 간호사로 염화 칼륨(KCl)과 인슐린으로 최소 4명의 어린이를 살해하고, 9명의 어린이를 죽이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었다.8)
최근 노르웨이의 연구팀은 인슐린 사용자에서 교통사고 확률이 좀 더 높은 점을 보고했다.9) 자동차 보험사들이 당뇨 환자에게 할증을 매길 날이 머지않을 성 싶다. 반면 미국의 연구팀은 저용량의 인슐린이 알츠하이머 치매의 예방이나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10) 신경과 의사들이 치매 환자의 치료에 인슐린 보험 적용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하여간, 인슐린처럼 오랫 동안 유용하고 유명한 약물들을 우리 몸속에서 또 찾아내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처]디아트리트 VOL.11, N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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