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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욱의 medical trivia

큐라레를 아시나요? (화살독의 놀라운 변신)




큐라레를 아시나요?
- 화살독의 놀라운 변신 -


황금을 좇는 인간의 무모한 욕망을 그린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에는 엘도라도(El Dorado)를 찾아가던 스페인 원정대가 원주민의 독화살 공격을 받고 강 위의 뗏목 위에서 전멸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압도적인 화력의 총포를 앞세워 원주민을 도륙했던 스페인 군대에 맞선 인디오의 숨은 무기는 바로 독화살이었다. 오늘은 화살‘독(毒)’이 현대적인 수술의 필수 의약품이 된 이야기를 알아보자.



신천지, 아메리카


콜럼버스[Columbus, Christopher, 1451~1506]는 1492년에 신천지를 발견하고서도 죽을 때까지 그 땅을 인도라고, 원주민들을 인디언이라고 주장했다. 왜? 원래 목적지가 인도였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하는 조건으로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았던 처지라… 하지만 그가 아무리 우겨봐도 그 땅은 인도가 아니었고, 금은보화가 넘쳐난다는 인도 황제의 궁궐도 찾을 수 없었다. 필생의‘인도 항로 개척 탐험 벤쳐’는 한마디로 실패했다. 그래도 콜럼버스는 끝까지 인도라고 믿으며 자존심을 지키다 죽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콜럼버스의 인도는 가짜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막대한 자금을 댄 스페인 왕실도, 그를 따라 대서양을 건너온 사람들도 모두 실망했다. 어차피 인도도 아닌 쓸모 없는 땅, 영국인이 들쑤시고 다녀도, 이탈리아 사람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라고 불러도 크게 신경도 안 쓴 모양이다. 하지만 그 땅에 ‘개발 호재’가 생겼다.


16세기 유럽 탐험계에는 이른바 ‘엘도라도(El Dorado)’루머가 떠돌았다. 정글 속 어딘가(지금의 보고타 평원)에는 ‘무스카이 부족’이 사는데, 그들의 지도자는 온몸에 금가루를 바른 후 호수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 누구라도 그 호수에 갈 수만 있다면 호수 바닥에 깔린 금가루를 퍼 담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 그 지도자는 스페인어로 ‘황금 사나이’를 뜻하는 ‘엘도라도(El Dorado)’라고 불렸는데, 나중에는 아예 그 땅의 이름이 되었다. 엘도라도의 존재는 아메리카를 인도만큼 금은보화가 가득한, ‘노다지’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제야 스페인도, 포르투갈도 아메리카에 함부로 들어온 영국인, 프랑스인, 네덜란드인들을 쫓아내고 자신들의 허가 없이는 들어오지 못하는 땅으로 만들었다.




캘리포니아 골드러시보다 250년이나 먼저 스페인인들이 노다지의 꿈을 좇아 바다를 건넜다. 1520년에는 코르테스[Hernan Cortes; 1485~1547]가 멕시코의 아즈텍을 정복했다. 10년 후에는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5~1541]도 페루의 잉카 제국을 정복해 엄청난 금은보화를 빼앗아 스페인 왕실로 보냈다. 이 사실은 사람들에게 엘도라도의 전설이 허황된 것이 아니며, 다행히 아직은 그 누구도 엘도라도를 찾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동시에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더더욱 열심히 아메리카 대륙의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총, 균, 쇠’를 앞세운 이방인들의 침탈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는 않았다. 아즈텍과 잉카를 멸망시키며 보여준 대살육은 문명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런 강력한 제국이 소규모 원정대에 쉽게 무너진 것을 보면 대륙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제국의 심장부였던 대도시는 쉽게 허물어졌지만 정글 곳곳에 흩어져 사는 소수 부족들의 저항은 만만치가 않았다. 캄캄한 정글 속으로 스페인 병사들이 들어오면, 원주민들은 등 뒤로 소리 없이 다가와서 훅-하고 독침을 날렸다. 한번 따끔했을 뿐인데, 병사들은 바로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은밀하고도 강력한 살상무기는 그때까지 유럽인들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정글 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했다.



화살독을 찾아서


콜럼버스의 대발견 다음 세기인 16세기가 되자 인디오의 ‘독화살’ 이야기가 유럽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스페인에 연대기 저자는 인디오의 독화살 공격으로 많은 인마(人馬)가 ‘마비’로 죽었다고 기록했다. 이후로 200년 이상 탐험가, 사제, 과학자, 작가들이이 독화살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보탰다.


원주민들이 “우라리(Ourari)”, “우라라(Wourara)”, “우라리아(Wouralia)”, “우라리오(Urario)” 등으로 부른 덩굴과 식물에 이것저것을 섞어 끓인 후 남은 검은 반죽을 화살촉 끝에 바른 것이 바로 독화살이나 독침의 정체였다. 원주민들은 평시에는 사냥에 이 독을 썼는데, 독화살이나 독침을 맞은 동물은 몇 분 안에 마비가 되어 꼼짝도 못하고 죽었다. 화살을 맞고도 달아나거나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기를 거부하는 동물이 많은 것을 생각해보면, 이 독은 얼마나 깔끔한 해결책인가? 원주민들도 이 독을 우연히 발견했고, 그 제조 비법은 비밀스럽게 대물림해 전했다. 원주민들 중에 이 독을 만들다가 목숨을 잃는 이가 있을 정도로 독은 맹독이었다. 하지만 독침으로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먹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도 알았다.


신통하기 그지없는 이 사냥기구는 뜻밖에도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해 오는 이방인들과 맞서 싸우는 게릴라전에서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총과 포의 엄청난 소리로 원주민들을 겁주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위치도 알려주었다.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조용히 독화살과 독침을 날렸고, 이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1730년대 남아메리카 대륙을 관통하여 탐사를 벌였던 프랑스 탐험가 콩다민[Charles Marie de la Condamine; 1701~1774]은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서부에 사는 야오메스(Yaomes)족이 쓰는 화살독을 구해 유럽으로 가져갔다. 이 부족은 나무 대롱 안에 독침을 넣은 후 목표물의 30~40보까지 근접하여 입으로 불어 독침을 쏘았다. 사냥감은 1분 내에 숨이 끊어질 정도로 독성이 강했다.


여러 연구자들이 화살독을 연구했다. 영국 의사 브록클리스비[Richard Brocklesby; 1722~1797]는 독에 쏘여 죽은 것처럼 보인 고양이가 심장은 두 시간 가까이 뛴다는 사실을 발견했고(1747년), 미국 의사 겸 화학자 반크로프트[Edward Bancroft; 1745~1821]는 소량의 독이라도 혈류로 들어가면 치명적이란 사실을 밝혔다(1769년). 아울러 반크로프트는 직접 남아메리카로 가서(1763~1766년) 독의 원료가 되는 덩굴과 식물 ‘닙비스(nibbees)’의 껍질에서 원주민들이 ‘우라라(woorara)’ 독을 만드는 과정도 지켜보고 그 제조법도 기록했다. 이 우라라가 ‘큐라레(curare)’의 어원이 되었다.


1799~1804년에 남아메리카를 탐사한 독일 과학자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 역시 원주민들이 사냥, 전쟁, 그리고 위장병 치료제로도 사용하는 큐라레의 원료가 되는 식물을 확인했고, 독의 제조 과정도 지켜보았다. 아울러 원주민들은 찔리면 목숨을 잃는 맹독을 ‘호리병박(gourd)’이나 ‘대나무 대롱(tube)’ 속에 넣어 운반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훔볼트는 아편에서 모르핀을 얻고, 마전자 나무(Strychnos nux vomica)에서 스트리크닌(strychnine)을 얻는 것처럼 화살독의 원료인 식물에서 유효 성분이 추출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인디오의 별스러운 독을 어디다 쓸려고? 이미 활을 버리고 총으로 갈아탄 유럽인들이 총알 끝에 독을 묻혀 쓸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콜럼버스의 업보를 이어 이 역시 쓸모 없는 발견으로 묻혀버릴까?



독성 연구


여러 가지 독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던 영국의 외과의사인 브로디[Benjamin Collins Brodie; 1783~1862]는 심장마비 없이 호흡마비만 일으키는 큐라레의 성질에 관심을 가졌다. 큐라레 독침을 맞아 숨이 멎더라도, 할 수만 있다면 기관지를 열어(tracheostomy) 인공호흡(artificial ventilation)을 해주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양이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것을 입증했다(1811년).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워터턴[Charles Waterton; 1782~1865]도 큐라레 연구에 뛰어들었다. 워터턴은 남아메리카로 건너가서 화살독을 분석했는데, 그 독이 덩굴 식물뿐 아니라 독개미, 독사 등의 여러 가지 독이 포함된 복합 독물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독화살에 맞으면 독이 온몸으로 퍼지지 않도록 상처 윗부분을 묶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뱀에 물려도 그렇게 한다). 아울러 근육을 마비시키는 성질을 이용해 심한 경직(spasm)이 생기는 광견병(rabies)과 파상풍(tetanus)을 치료해보자고 주장했다(파상풍에는 효과가 있다).



약리학적 연구


독일의 식물학자이자 탐험가인 로버트[Robert Hermann Schomburgk; 1804~1865]와 리차드 [Moritz Richard Schomburgk; 1811~1891] 숌버그 형제는 1830~50년대에 현지에서 이 식물을 연구하였다. 그들은 훔볼트가 원료 채취원으로 확인한 식물에 ‘Strychnos toxifera’라는 학명을 붙였다. 하지만 이것이 속한 마전과 식물(Loganaceae)은 큐라레 이외에도 다양한 독성 알칼로이드를 지니고 있었다. 큐라레 독은 그 많은 독들과 뒤섞인 하나의 알칼로이드에 불과했다. 나중에는 다른 덩굴과 식물인 Chondrodendron tomentosum에서도 큐라레를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시 말하면 큐라레는 특정 식물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편 1855년 파리의 생리학자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는 큐라레의 특성을 정리했다.


▶ 먹어서는 중독되지 않고, 독이 혈류를 타고 들어가야 마비가 생긴다.
▶ 감각은 멀쩡하고 운동마비만 생긴다.
▶ 운동마비는 팔다리 근육, 가슴 근육, 호흡 근육의 순서로 생긴다.
▶ 사망 원인은 호흡마비다.
▶ 호흡마비 상태라도 심장마비는 한참 뒤에 오므로 인공호흡으로 소생시킬 수 있다.
▶ (역시 맹독인) 스트리크닌은 중추신경에 작용하지만 큐라레는 말초신경에서 작용한다.
▶ 독의 작용 부위는 아마도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지점일 것이다.


신경과 근육이 만나는 지점, 지금 우리는 그곳을 신경-근육 연접부(nuromuscular junction; NMJ)라 부른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운동신경을 타고 온 자극이 아세틸콜린(acetylcholine; Ach)을 이용해 근육으로 신호를 전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큐라레는 신경전달물질의 효과를 막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려면 아직 100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으니까.



신경차단독


한 세기 전인 1917년, 제1차 대전의 와중에 영국의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1945] 수상을 암살하려던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었다. 암살자들은 큐라레와 스트리크닌을 묻힌 ‘다트(dart)’로 총리를 쏘아 맞출 작정이었다. 이미 코난 도일[Arthur Ignatius Conan Doyle, 1859~1930] 경은 <4개의 서명(The Sign of Four, 1890)>에서 나무대롱으로 스트리크닌을 묻힌 독침을 불어 쏘아 맞추어 사람을 죽인 원주민을 등장시켰다. 이 암살자들은 여기에 큐라레를 추가한 셈인데, 혹시 열렬한 셜로키언(Sherlockian; 셜록 홈즈의 추종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신경 말단에서 분비되어 신경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뢰비[Otto Loewi; 1873~1961]와 데일[Henry Dale; 1875~1968]의 연구 덕분에 부교감신경 말단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의 정체가 아세틸콜린이며, 심장에 있는 무스카린성 수용체(muscarinic receptor)는 아트로핀(atropine)으로, 골격근에 있는 니코틴성 수용체(nicotinic receptor)는 큐라레로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아울러 큐라레의 해독제로 피소스티그민(physostigmine)을 쓸 수도 있게 되었다. 피소스티그민은 서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식물에서 추출한 것으로 콜린 분해 효소(cholinesterase)의 기능을 방해하였다. 유럽인들의 총포를 이겨낸 것이 큐라레였다면, 그 큐라레를 이긴 것은 서아프리카 원주민의 피소스티그민이었다!



임상 적용; 정신과 거쳐 마취과로


1930년대에 미국인 길(Richard Gill)은 자신이 진단받은 다발성 경화증에 큐라레가 특효약이란 소문을 듣고 이것을 구하기 위해 에콰도르로 가서 인디오들로부터 26종의 덩굴식물을 수집했다. 이것을 제약사가 전량 구매하여 큐라레를 추출, ‘인토코스트린(Intocostrin)’이란 제품명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1930년대 말에 인토코스트린은 제일 먼저 정신과에서 쓰기 시작했다. 정신과에서 마비제를 왜?


당시에 심한 우울증이나 조현병 환자들에게 메트라졸(metrazol)이나 전기를 이용해 경련을 유발시키는 치료를 했는데, 경련이 너무 심해 치료 중에 골절이나 탈구가 생기는 환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인토코스트린으로 미리 근육을 마비시켜 놓으면 경련 중에도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어 골절이 생기지 않았다.


1942년에는 몬트리올의 그리피스[Harold Griffith; 1894~1985]와 존슨[Enid Johnson; 1909~2001]은 마취제와 더불어 인토코스트린을 쓰면 좀 더 안전하고도 효과도 좋은 전신마취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제 정신과에서 외과 마취 분야로 쓰임새가 확장되었다.


한편 1935년에 킹[Harold King; 1887~1956]은 큐라레에서 순수한 디-튜보큐라린(d-tubocurarine)을 분리했고, 1943년에는 윈터스타이너(Oscar Wintersteiner)와 더쳐(James Dutcher)가 Chondrodendron tomentosum에서 디-튜보큐라린을 추출했다. 순도가 제각각이던 인토코스트린 대신에 이제 순도 높은 디-튜보큐라린을 쓸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영국에서 그레이(TC Gray) 등이 인토코스트린 대신에 디-튜보큐라린을 사용해 8,500명의 수술 환자를 마취했는데, 단 한 건의 사망사고도 내지 않아 이 약물의 안전성을 입증했다. 이로써 인디오의 살상무기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약품으로 온전히 귀의했다. 400년 만의 일이다.


화살독의 후손인 디-튜보큐라린을 마취에 쓰는 이유는 수술 받는 환자를 완전히 마비시키기 위해서다. 마취제가 환자를 완전히 재워 통증을 못 느끼게 하지만 움직임까지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디-튜보큐라린을 쓰면 기관삽관(endotracheal intubation)도 쉽고, 수술 부위의 근육도 이완시켜 수술시야를 넓혀준다. 대신에 호흡마비도 오므로 마취과 의사가 책임지고 인공호흡을 해주어야 한다.


1940년대가 되면 디-튜보큐라린은 외과 마취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로 큐라레와 같은 노릇을 하지만 좀 더 개선된 근육마비제인 아트라큐로니움(atracuronium), 판큐로니움(pancuronium; 마이오블락), 베큐로니움(vecuronium), 로큐로니움(rocuronium) 등이 속속 등장하여 오늘날의 수술장에서 사용된다. 모두 큐라레의 후손이란 의미로 이름에 ‘curo-’가 들어 있다.



최근 미국의 거대 제약사가 자사의 약물(판큐로니움 포함)을 독극물을 주사하여 사형을 집행하는 곳에는 판매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미 EU의 제약사들은 같은 이유로 수년 전부터 미국에 약물 수출을 금지해왔다. 덕분에 미국 내 사형 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다른 미국 내 제약사들로 확대되면 어떻게 될까?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주가 더 늘어날까(현재 사실상 사형제를 폐지한 주는 19개 주)? 아니면 다른 사형법으로 옮겨 탈까? 그도 아니면 유럽도 미국도 아닌 다른 나라에서 약을 수입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아직도 인디오들과 같은 목적으로 이 약물을 쓴다는 사실도 놀랍다. 500년이 다 되어 가도록 화살독의 명성과 독성이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구나!



[출처] 디아트리트 VOL.16, N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