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오히려 의사 과잉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 안덕선 원장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한 의대정원 증원은 10년 내 의료 현장에 과잉 문제를 초래하고, 교육의 질 저하와 부실의대 문제를 동시에 불러올 수 있다”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 원장은 또한 의사면허관리원 설립, 필수의료 강화, 전주기적 의학교육 개편 등 다각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의료계 신뢰 회복과 국민 건강권 보호를 위한 근본적 변화를 제시했다.
특히 “의료정책의 지속성과 실효성을 위해선 교육 인프라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평가 체계가 반드시 따라야 하며, 의료계 내부의 의견 수렴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Q. 의정연이 지난 1년간 수행한 주요 연구과제 중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가 궁금합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지난 1년간 우리나라 의료정책 현안과 관련해 실질적인 성과를 거둔 여러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대해 현실적 근무일 수와 국내외 데이터를 반영한 의사인력 추계 연구를 진행해,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의사 과잉을 초래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에 게재됐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 등에서 인용됐으며, 정부와 국회가 정책의 과학적 근거를 재검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의정연은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의 필요성을 연구해 자율규제와 전문직업성 강화를 지속적으로 제안해오고 있으며, 이는 향후 입법 논의의 근거자료로 활용될 것입니다.
지난해 의정연의 병상수급 관리 필요성, 지역 통합의료돌봄, 회복기 의료체계 연구 등은 정책 수립에 실질적으로 기여했습니다.
Q.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수행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나 교육 환경 변화에 대한 분석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특히 교육의 질 저하와 부실 의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의료정책연구원은 의대 정원 증원과 관련해 의료인력 수급 추계와 교육 환경 변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의정연은 정부의 의대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대해, 실제 근무일수와 의료수요, 인구 전망 등을 반영한 추계 결과, 단순 증원만으로는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10년 내 의사 과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는 정원 확대가 장기적으로 의료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의정연은 의대 정원 확대가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장했습니다. 학생 수 급증에 따라 교수 1인당 학생 수 증가, 실습 인프라 부족, 임상 교육 기회 감소 등 교육 환경이 악화될 수 있으며, 이는 부실 의대 사태 재발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의대 교수들이 현재 인프라로는 증원된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교육의 질 저하와 부실 의대 방지를 위해 엄격한 의과대학 평가 및 인증 제도, 교육 인프라 기준 미달 시 강력한 제재, 정부의 실질적 교육 투자 및 지원, 그리고 현장 의견을 반영한 중장기 의료인력 정책 수립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만 교육의 질 저하와 부실 의대 문제를 예방하고, 국민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고 봅니다.
Q. 한국의학교육평가원장과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 부회장을 역임하신 의학교육 전문가로서, 현재 한국 의학교육시스템의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는 무엇이라고 진단하십니까?
가장 시급한 것은 현대화된 전공의 교육으로, 어렵지만 시작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의사 양성은 입학부터 은퇴까지 하나의 파이프라인이며 임상-환자 기반 역량 교육과 법적 뒷받침이 동시에 갖춰지지 않으면 정원 확대가 곧 ‘부실 의학교육’으로 귀결됩니다.
기본의학교육(BME) 단계에서는 교수 확보와 환자 참여를 보상하는 지원 없이는 학생들이 실제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없습니다. 전공의 수련(GME)에서는 실질적인 교육과 병원 간 교육 격차를 줄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평생교육(CPD)은 출석 위주 평점에서 벗어나 임상 결과 개선과 연결해야 됩니다.
이러한 전주기적 개편은 통합 커리큘럼으로 완성돼야 하며 의협 등 전문가단체가 이를 주도해야 그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Q. 임기 중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계신 연구 프로젝트는 무엇이며, 해당 연구를 통해 의료계와 국민이 기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변화는 어떤 것인지요?
대한의사협회 면허관리원 설립 준비와 한국형 면허관리기구 설립을 제안한지 7~8년이 됐습니다.
면허관리원 설립의 필요성에 대한 의료계 내부 공감대는 어느정도 형성됐다고 볼 수 있으나, 의료법 및 정관 개정, 대의원회, 중앙윤리위원회, 시도의사회의 협조 등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투입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면허관리원 설립 TF 위원들의 면모와 회의 내용을 보면, 의사 면허관리에 관한 필요성, 전문성 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집행부에서는 의사 면허관리에 관한 혁신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부분, 역할 등을 확립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이익단체로서 의사노조 관련 기반 연구, 다른 나라와 비교한 의사 단체행동 시사점에 대한 연구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특히 내년에는 전문가들과 협업해 ‘의료선진화를 위한 건강보험제도 개편방안 연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제도 문제의 본질을 짚어보고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미래 의료환경 변화에 대비할 발전 방안을 심도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Q. 비급여 보고 의무 강화 등 통제정책이 의료기관의 진료 자율성 및 재정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결과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비급여는 정부의 통제 영역이 아닌데, 정부가 통제하려다 보니 여러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의정연은 올해 연구과제 중 ‘정부의 비급여 관리정책 방안 검토’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반기 공론화를 위한 자리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정연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밝히고, 진정한 개혁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의료개혁 방향 연속 토론회와 좌담회를 진행했고, 이 논의는 지속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명확한 성격이 무엇인지, 무엇부터 시작해야 의료개혁이 이뤄 질 수 있는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Q. 상대가치 수가 체계의 여러 문제점 중, 의료현장 불균형을 해소∙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항목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상대가치제도 자체가 우리와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만, 가장 시급한 개선 항목은 필수의료 영역의 ‘의사업무량(인적 자원) 상대가치점수’와 가산 체계를 상향·재배분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연구원에서 진행한 많은 의사대상 조사연구들에서 필수의료 분야 강화를 위해 의사들이 필요로 하는 방안은 ‘필수의료 분야의 사고로 발생하는 민형사적 처벌부담 완화’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독 심한 의료사고 형벌과 경향은 의료진들로 하여금 방어진료를 하고, 필수의료 분야에 젊은 의사들이 진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어 의료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의료사고를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의료의 질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과도한 형사화는 의료진이 자기보호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결국 환자의 이득이 차선으로 밀리게 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의정연의 전문성과 정책역량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전문성 및 정책역량 강화 방안으로는 먼저 의정연의 주요 결과들을 국내외 저명 학술지에 논문으로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료정책연구원 소속 연구원의 역량 강화는 물론이고 의료정책연구원의 위상이 제고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정책의 신뢰성 있는 근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2023년 출발한 대한의사협회 IRB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의료정책연구원에서 생산한 연구들의 윤리성, 타당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연구결과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의료정책연구원 홈페이지, 유튜브, 페이스북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그 방식도 뉴스레터, 카드뉴스, 쇼츠 등 다양화해 보다 많은 국민이 의료정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차세대 연구인력 양성 방안으로는 의료정책을 의학교육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젊은의사의료정책아카데미도 진행했고, 올해는 의학교육학회와 의료정책 교육방안을 논의하는 세션도 진행됐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차세대 연구 인력 양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의정연 내부적으로는 하반기 연구 인력 충원과 객원연구원/전문위원제도 활성화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분야의 의사, 전문가들을 객원연구원/전문위원으로 확보해 연구역량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충원될 연구원들의 전문성 및 역량강화를 위한 멘토링, 코칭, 교육 지원 등 다양한 매칭 프로그램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정책자료 데이터 베이스 구축으로는 의정연 내 데이터실을 설치해 연구자료를 DB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의적절한 설문조사를 위해 협회와는 별도로 의정연 자체 설문조사 시스템을 도입, 조사체계를 구축·가동해 더 다양한 연구자료를 축적하고 있습니다.
Q.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의료정책포럼의 다양한 주제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사회적으로 큰 방향을 일으켰다고 평가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의료정책포럼은 현안이나 조금 멀더라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모든 주제들이 기억에 남고, 주제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논의하는 모든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 10월 의료사고 형사처벌 관련 포럼에서는 영미법 국가들의 경우 과실로 인한 피해는 기본적으로 민사의 영역으로, 피해자 손해배상에 있어서도 영국은 NHS, 뉴질랜드는 ACC라는 국가기관이 책임을 부담한다는 내용 인상깊었고, 지난 5월 의사노조관련 정책심포지움에서 우리나라 의사노조 현실과 경험, 패널들의 경험이 신선했습니다.
Q. 연구 결과의 실효성을 높이고 정책 반영률을 제고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국회, 학계 등 외부 기관과 어떤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소통하고 계신가요?
일반적으로 보건복지부, 국회 등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것은 협회와 담당이사님들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의정연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연구자료를 생산해 협회와 담당이사분들께 제공하는 것이 주된 역할입니다. 다만, 연구과정에 있어 의료계 내부를 벗어나 외부의 법학자, 경제학자 등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구자 풀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국내 기관과의 협력뿐만 아니라, 국외 기관과의 협력도 중요합니다. 세계면허관리기구연합회,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등에서 협회 및 의료정책연구원이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 한인의사들의 네트워크도 확대하고 있으며 다양한 협업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다양한 의료현안들에 대해 의료정책포럼을 다수 개최했는데, 대부분 협회 내부에서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료계 내부의 의견 수렴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국회, 보건복지부 등이 참여하는 형태로 확대 진행할 예정입니다.
Q. 의협 내부에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의정연을 십분 활용해 이용하려면 내부의 집행부, 대의원 등의 조직과 서로 통합이 잘 돼야 합니다. 의정연이 정책의 과학적 근거나 합리성을 마련해 드리면, 어떤 아젠다를 활용해 어떻게 정치화할지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나와줘야 의정연도 일을 하기가 좋습니다.
마지막 결정은 우리가 아닌 상임이사나 대의원회에서 합니다.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정연의 자료 등을 잘 이용하고 협업해야 합니다.
연구소장으로 재임할 때 의협 개선방안도 많이 내놓았습니다. 의협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등을 파악해 한 가지라도 협회의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목표를 채택해 변화를 이뤘으면 하는 방안을, 보고서로 1~2개 놨습니다.
Q. 끝으로 회원들께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의정연 홈페이지에 회원들이 언제든 연구주제를 제안하고, 자료를 요청할 수 있는 ‘회원참여’가 있습니다. 의정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언제든지 의료현장에 필요한 연구들을 제안해 주십시오. 최선을 다해 연구를 수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