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보건의료 정책, 의료계와 합의해 추진돼야 한다

2025-03-17 10:20:56

정부는 2025년 3월 7일, 2026학년도 전국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기존의 3058명으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1년 넘게 의료대란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무리한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정부 스스로 원점으로 되돌리는 의미를 담고 있어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한다.

작년 2월 6일,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부터 전국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단번에 2000명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2020년 9월, 정부가 대한의사협회와 약속한 ‘의대 정원 정책은 의료계와 합의해 추진하겠다’는 합의를 명백히 위반해 정부 정책의 신뢰를 스스로 훼손했다. 특히 대학 입시를 불과 수개월 앞두고 논의와 합의 과정 없이 극단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인 점은 가히 폭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의료계 석학단체로서 2024년 3월 22일 2000명의 증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00명 증원의 근거는 인구 변화만을 단편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편향적으로 선택, 왜곡한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갖추지 못한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전체 의사들, 특히 3만여 명에 이르는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에게 모욕을 주고 국민과 의사들 사이의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시킨 점은 매우 유감이다.

대한민국의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수십 년간 헌신해 온 수많은 의사들의 노력으로 구축된 값진 성과였으나, 정부의 섣부른 정책으로 인해 불과 1년 만에 공든 탑이 무너지고 있고 회복이 가능할까 절망적이다. 의학한림원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의료체계가 위기를 맞이하고, 의학교육이 흔들리면서 젊은 의사들과 학생들이 큰 희생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에 통탄한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실패로 비롯된 불신을 단지 ‘3058’이라는 숫자 하나로 해소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더구나 이 숫자마저 ‘학생들의 복귀’를 조건으로 삼아 학생들에게 각종 불이익과 시한적 압박을 가하는 정부의 태도는 놀랍다.

정부가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과정 중 중대한 잘못이 있을 수 있고, 잘못을 인정하고 변경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으며, 이번 증원 철회 결정에 대해 미흡하나마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한편,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여전히 정부 내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우려를 불식시켜 주기를 바라고 진정 국민을 위한 정책이 수립되고 집행되기를 바란다.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보건의료 정책은 철저히 재검토하고 의료계와 합의해 추진돼야 한다. 무리한 정책 추진으로 막대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정책 입안자들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책임 규명이 우선해 이뤄져야 한다. 이는 국민과 의료계에 대한 정부의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다. 이어서 의사를 적대시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부의 태도가 변화돼야 한다. 또한 정부는 향후 정책 수립 과정에서 미래 의료를 책임질 학생들과 젊은 의사를 포함하는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전제로 할 것을 굳게 약속해야 한다. 

조만간 대통령 탄핵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내려질 것이며, 탄핵의 인용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료의 핵심인 의사의 배출은 이뤄져야 하고 정원이 어떻게 결정이 되든 간에 5월 중순부터 각 대학이 내년도 신입생 모집 요강을 확정 발표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의 희생과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묵묵히 환자의 곁을 지킨 책임 있는 의사들의 노력으로 국민들과 언론의 의료현실에 대한 이해가 진일보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바로잡히는 가시적인 결과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 장기적으로 고쳐가야 할 의료시스템의 고질적인 문제를, 미래의료를 담당해야 할 의대생들과 젊은 의사들의 극단적 희생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국민건강을 지키는 대한민국 의료는 뿌리째 흔들리고 사막화될 것이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의대생이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의학에 투신한 학생들이 신중한 논의를 바탕으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을 기대한다. 의료는 정부의 것이 아니고 국민의 것이며 그 품질은 의료인이 지켜야 한다. 의대생들은 민주적 의사결정 원칙에 따라 반목과 분열 없이 앞으로 대한민국 의료를 이끌어갈 미래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당부한다. 

*외부 전문가 혹은 단체가 기고한 글입니다.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medifonews@medifonews.com
< 저작권자 © Medifonews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본 기사내용의 모든 저작권은 메디포뉴스에 있습니다.

메디포뉴스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416 운기빌딩4층 (우편번호 :06224)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서울아 00131, 발행연월일:2004.12.1, 등록연월일: 2005.11.11, 발행•편집인: 진 호, 청소년보호책임자: 김권식 Tel 대표번호.(02) 929-9966, Fax 02)929-4151, E-mail medifonews@medif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