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사태와 필수의료 붕괴 등 다양한 보건의료의 문제들은 시장의료의 실패 때문이라면서 보건의료 형태를 ‘시장의료 → 공공의료’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김남희·김윤 국회의원과 진보당 전종덕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의료시스템의 질적 변화’ 토론회가 7월 12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형준 정책위원장은 ‘시장중심의 한국 의료체계의 문제점과 의료민영화의 본질’을 주제로 발표하며, 우리나라의 의료의 문제점과 원인으로 ▲절대적 민간 중심의 공급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과 혼합진료 허용 ▲의료산업 복합체와 서비스 산업화 ▲개업자율권 등을 지목했다.
◆‘개업자율권’과 민간 중심의 공급 정 위원장은 1988년에 전국민건강보험을 시행하면서 수요가 폭증했는데, 당시 정부에서 공급을 전부 민간에다가 저리의 이자를 주고 시키는 무책임한 일을 벌임으로 인해서 우리나라 의료가 민간 중심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의사는 교통업에 대입하면 ‘개인택시 면허제’와 유사하다”면서 현재 의대정원 증원에 대해 의사들이 반발하는 것도 의사 면허를 받아서 개원해 잘 살려고 하는 상황에서 의사 숫자를 늘리면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이므로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통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인택시 면허를 늘리자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냐?”라고 반문하면서 “유럽처럼 공공병원 중심의 공공의사를 양성하면 동료가 늘어나고, 본인의 노동 강도가 떨어짐은 물론, 상의할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라면서 “버스 운전사나 기관사 같은 사람들을 늘려야 된다”라고 밝혔다.
◆매우 낮은 ‘건강보험 보장성’
정 위원장은 “현 정부의 제일 큰 문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보장성 강화 철회를 선언한 것”이라며, 특히 총의료비 증가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비급여’로, 대부분의 낭비는 공급자가 유발하며, 건강보험진료 영역 외에 있는 비급여에서 발생하는 바, 보편적 건강 보장을 충분히 확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우리나라가 의료제도와 관련해 2000년 전국민건강보험으로 단일보험자를 만들었으나, 이후 지불제도와 공급구조에 대한 개혁 방기 및 의료산업화에만 몰두해 동북아시아에서 일본·대만보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지는 의료제도를 가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총의료비가 215조원 중 사회적 합의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90조원 → 150조원’으로 늘려 감당하도록 하고, 나머지 60조원 정도만 국민이 직접 부담토록 한다면 통제 가능한 의료비 범위가 늘어나기 때문에 가파르게 증가하는 의료비를 잡을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혼합진료가 가능한 ‘공급 자율성’과 비대해진 ‘실손보험’
정 위원장은 “IMF 이후에 노무현 정부 들어서면서 실손보험을 허용해줬는데, 일본 같은 경우에는 혼합진료가 금지돼 있어 실손보험 상품은 있지만 거의 판매가 되지 않고 있다”면서 민간보험이 없으면 안 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최근에 벌어진 가장 최악의 사태로 21대 국회의 최악의 법안 중 하나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지목하면서 “관련 법안을 만들더라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처리할 공적기구를 만들지 않고, 무책임하게 민간보험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보험개발원에 떠넘기는 큰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비판했다.
이는 고양이한테 생선을 떠맡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강조하면서 실손보험 청구 업무를 최소한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공적기구에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재개정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의료산업 복합체와 서비스 산업화
정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자마자 건강관리 서비스 추진을 밝혔는데, 비의료 건강관리 서비스를 추진하겠다면서 고혈압과 당뇨 관리와 같은 일차의료 만성질환 관리 사업을 비의료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건강보험법에는 국민건강보험이 환자의 건강증진과 질병 예방을 다 하도록 명시돼 있는 것을 강조하며, “그동안 건강보험이 하지 않은 것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보험회사가 결탁한 곳에 팔아넘길 수 있냐?”라고 한탄했다.
또한, 정 위원장은 ‘신의료기술 先 진입 後 평가’은 ‘시장 만능주의’ 그 자체라며, 국가에서 의료기술과 약품에 대한 효과·안전성·근거·비용 대비 효과 등을 판단해주지 않고, 국민과 의료공급자·시장에게 맡긴다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보여줄 법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규제 완화로 통과된 의료기술이나 줄기세포 치료제가 일본·유럽·미국 등에서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것에서 잘 보여주고 있으며, 바이오헬스 산업 측면에서도 경쟁력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정 위원장은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 혁신 의료기기 신속 시장 진입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건강보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라면서, 혁신 의료기기를 대상으로 한시적 비급여로 先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정책 방향에 대해 건강보험 재정이 제약·의료기기업체들의 화수분이냐고 성토했다.
끝으로 정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의사 증원 외에는 시장의료를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장의료를 극복할 진정한 ‘의료개혁’이 필요하며, 선별지원을 위한 ‘필수의료’가 아니라 건강보험 확대와 공공의료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