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개혁특위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 긍정적

2024-07-12 18:47:03

지난 11일 열린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지속 가능한 진료체계 확립을 위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방향과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의료분쟁 제도개선 방향 관련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형사고소를 하지 못하도록 의료인에게 형사특례를 주는 방식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추진이 아닌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형사고소를 하지 않아도 울분을 해소하고 신속한 피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와 입법을 우선 추진하는 것을 계속해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도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의료과실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의사의 고의가 아닌 실수로 환자가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경우에도 의사가 충분히 의료사고의 내용과 경위를 설명하고, 사과·유감·공감 등으로 애도의 표시를 하고, 동일 또는 유사한 의료사고의 예방을 약속하고, 적정한 피해배상을 신속하게 한다면 상당수의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의사를 용서하고 그 상황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의료사고 현장에는 충분한 설명도, 애도의 표시도, 예방을 위한 환자안전사고 보고도, 적정한 피해배상도 거의 없거나 드문 것이 현실이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중상해를 입거나 가족을 잃었는데도 가해자로부터 사과받지 못하고 수년에 걸친 소송기간 동안 입증의 어려움과 고액의 소송비로 울분을 토하지만, 정부는 이들의 울분과 트라우마 치유에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이 우리나라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최후의 보루로 형사고소와 형사소송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됐던 ‘의료사고 예방 및 소통 활성화, 감정·조정 시스템 개선 방안’을 포함한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은 그동안 의료분쟁 제도개선 관련해 의료계의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 주장과 환자·소비자·시민단체의 입증책임 전환 주장이 팽팽히 맞서 한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상황에 새로운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째,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사망 등 중대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경우, 환자와 의료인 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외사례를 참고해 사고 경위 설명, 위로·유감 표시 등을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는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의 울분 해소를 위해 환단연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의료사고 설명의무법’과 ‘의료사고 유감 표시 증거능력 배제법’을 말한다.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에 대해 의사가 일정기간 이내에 사과·유감·위로 등을 표시하는 경우, 사과·유감·위로 등의 내용이 증거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의료사고를 낸 의사에게 사과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가 일정한 기간 내에 이루어진 경우 의사의 사과 내용을 검사와 판사가 수사와 재판에서 증거로 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환자의 알 권리 보호를 위해 의료법에 수술·수혈·전신마취 시 의사의 설명의무가 규정돼 있지만, 의료사고 발생 시 의사의 설명의무는 그동안 의료계의 반대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미국·영국·호주 등 일부 국가에서 입법·시행되고 있는 ‘의료사고 유감 증거능력 배제법’은 의사가 사과·유감·위로 당시에는 의료과실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했다가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부검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료과실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는 방식으로 악용할 우려도 있어서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다수의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은 이러한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에 참여한 위원 모두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점에서 국회에서 신속하게 의료법 개정을 통해 입법화해야 한다.

둘째,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분쟁조정법)에 근거한 의료감정과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조정절차 전반에 걸쳐 공정성·객관성을 높이는 혁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의료분쟁조정법에 근거해 2012년부터 의료분쟁 조정제도가 도입·시행된 이후 최대 규모의 개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하고 효율적인 감정 절차 운영, 의학적 감정 신뢰성 제고, 충실하고 수용성 높은 조정시스템 확립, 모니터링 및 정보공개·활용 강화 등” 다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환단연은 (가칭)‘환자 대변인제’ 신설과 ‘중대한 의료사고 의료감정 교차·복수 검증제도’ 도입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의료분쟁조정법상 의료감정은 의사 2인, 전·현직 검사 1인, 변호사 1인, 소비자권익위원 1인 총 5인이 참여하는 5인 감정부에서 이루어진다. 

의사 2인 중 1인은 상임 감정부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역할을 하고, 실제 의료감정은 의사인 비상임 감정위원 1인이 한다. 

이에 대해 비의료인인 전·현직 검사, 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 3인이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상임 감정부장은 회의 주재가 주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의사가 하게 되어 있어서 의료감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감정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일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임 감정부장을 비의료인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이번 혁신방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 이와 관련한 추가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의료감정 결과가 조정에서뿐만 아니라 조정 결렬 시 재판에서도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의료감정의 의학적 신뢰성을 높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혁신방안에 사망·중상해 등 감정 난이도가 높고 복잡한 사건은 의료인 감정위원을 현재 2인에서 3~4인까지 확대하는 “중대한 의료사고 의료감정 교차·복수 검증제도”가 포함된 것은 의료감정 결과에 대한 신뢰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감정부에 의료인 위원이 늘어나는 것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의료감정은 조정이나 재판에서 의사의 의료적 판단을 참조하기 위해 시행되는 것이고, 전·현직 검사, 변호사, 소비자권익위원 3인이 의료인 위원의 감정의견을 검증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의료인 위원들 간에도 서로를 의식해 의료적 판단에 더욱 신중하도록 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번 개혁방안에는 의학적 정보와 지식이 부족한 환자가 의료분쟁 조정절차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사고의 실체와 쟁점 등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의료사고 초기부터 피해자의 관점에서 전문 상담을 수행하고 감정 쟁점 선정 등을 조력하는 (가칭)‘환자 대변인제’ 신설이 논의의 대상에 포함돼 있다. 

(가칭)‘환자 대변인제’를 신설해 환자 입장에서 사건의 구체적 쟁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감정 쟁점 선정·결과 검토 및 조정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의료사고 피해자·유족 입장에서 일면 합리적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자격을 독일처럼 의사나 변호사로 제한할 경우 의사는 (가칭)‘환자 대변인’으로 거의 참여하지 않고 결국 변호사가 참여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는 사실상 ‘조정의 소송화 현상’을 초래해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마련한 취지를 반감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가칭)‘환자 대변인제’ 자격요건이 중요하다. 

의료분쟁조정법 제정 시 ‘5인 감정부’에 참여해 의료사고 피해자·유족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도록 소비자권익위원을 두었는데, 별도의 (가칭)‘환자 대변인제’를 신설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5인 감정부의 소비자권익위원을 경험이 많고 역량이 뛰어난 사람으로 위촉해 환자 대변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는 만큼,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이번 제5차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에 대해서만 논의했고, 이와 관련한 쟁점사항이나 세부사항은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에서 계속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환단연은 이번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에 대한 논의와 발표가 환자와 의료계 모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의료사고 감정과 조정‧중재의 절차 및 결과의 객관성‧공정성 등 공신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이루어졌음을 밝힌다. 

이와 같은 의료분쟁 조정제도 혁신 검토 방향은 환자와 국민이 요구하고 있는 의료사고 입증책임 전환 논의를 대체할 수 없으며, 나아가 이것이 의료계의 요구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위한 사전 조치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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